인도 재벌과 손잡은 中 하이얼
현지화 전략으로 중저가 공세
'K가전 공백' 로봇청소기 독주
삼성·LG 디자인 노골적 복제도
현지화 전략으로 중저가 공세
'K가전 공백' 로봇청소기 독주
삼성·LG 디자인 노골적 복제도
지난해 12월 방문한 인도 뉴델리 인근 구루가온의 한 대형 전자제품 매장. 세탁기와 냉장고가 진열된 공간 한 쪽에는 삼성전자 제품과 외형상 구분하기 어려운 또 다른 브랜드의 제품들이 나란히 놓여있었다. 중국 브랜드 제품들이다. 조작부의 배열과 손잡이의 형태, 색상까지 거의 유사했다.
중국 가전업체들이 인도 시장 공략에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중동·아프리카 등 다른 신흥시장과 달리 인도 가전 시장에서는 K가전에 밀린 중국 업체들이 최근 전략을 수정해 다시 시장 공략에 나섰다. 이들 업체는 현지 자본과의 결합해 프리미엄·신시장 공략을 통해 돌파구를 찾겠다는 구상이다.
■中가전 로봇청소기 시장 파고들어
20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최대 가전업체 하이얼은 지난해 말 인도 법인 지분 49%를 인도 재벌 그룹 바르티 엔터프라이즈와 미국 사모펀드 워버그 핀커스에 매각했다. 중국 본사가 주도하던 기존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현지 자본과 손잡는 방식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하이얼 측은 지분 매각 배경으로 △현지 조달 확대 △생산 능력 증대 △연구개발(R&D) 및 혁신 역량 강화 △인도 전역 유통망 확대를 들었다. 이는 인도 정부가 추진 중인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정책 기조와도 맞닿아 있다. 하이얼 인도법인은 "인도에서 제조하고, 인도를 위해 봉사한다"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현지 기업 이미지를 강화하고 있다.
하이얼 외에도 샤오미, TCL, 하이센스, 메이디 등 중국 주요 가전업체들이 인도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이들 기업은 현지에 연구개발센터를 설립하고, 인도인 직원 주도로 생활습관에 맞춘 제품을 개발·생산하고 있다.
중국 가전업체들은 특히 로봇청소기를 앞세워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다. 현재는 인도 현지 업체와 중국의 에코백스 등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아직 인도 시장에 로봇청소기를 정식 출시하지 않은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수익성보다는 성장 잠재력이 큰 틈새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인도 로봇청소기 시장 규모는 2024년 기준 1억6000만 달러(약 2360억원)로 추산되며, 연평균 20% 안팎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디자인-기술 베끼기에 韓 우위 바뀔 수 있어"
현지 업계에서는 향후 인도 시장 판도 변화 여부에 대해 인도 소비자의 특성을 가장 큰 변수로 꼽는다. 한 관계자는 "인도 소비자들은 브랜드 충성도가 높지 않아 가격 대비 성능이 좋다면 금세 브랜드를 바꾸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중저가 모델 위주의 인도 가전 시장 특성상 디자인과 기술 베끼기가 쉬워 이 또한 삼성·LG의 경쟁력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이날 찾은 매장에서는 브랜드를 가리면 분간이 어려운 세탁기, 냉장고 등 제품이 즐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중저가 제품군에서는 중국 업체들이 원가 경쟁력을 앞세워 가격 전쟁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며 "성장하는 인도 중산층을 겨냥한 프리미엄 전략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날 기자가 찾은 매장에는 할인 적용 후에도 725만 루피(약 1억1800만원)에 달하는 삼성전자의 마이크로 LED TV가 전시돼 있었고, 일부 1억원이 넘는 고가 제품에는 '마지막 1대'라는 안내 문구가 붙어 있었다. 인도 소비시장이 빠르게 양극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상반기 인도 TV 시장에서 출하량 기준 23.8%의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다. 2017년 처음 1위에 오른 이후 9년 연속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LG전자는 지난해 5월 스리시티에 인도 내 세 번째 공장을 착공하며 생산능력 확대에 나섰고, 같은 해 10월에는 현지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며 시장 공략을 강화했다. LG전자는 전자레인지와 세탁기 등 주요 품목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rejune1112@fnnews.com
rejune1112@fnnews.com 김준석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