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사례를 생각해 보자. 세상물정을 모르는 어린아이가 동네 가게에 물건을 사러 왔다. 가게 주인은 값을 부풀려 팔 수도 있지만, 정가대로 판매한다.
인류사를 돌아보면, 인간은 늘 욕망과 이성의 대립을 겪어왔다. 사회가 급변할 때 이 대립은 더욱 커진다. 전통과 근대가 급속하게 교차하던 18세기 후반 유럽이 그랬다. 물질과 정신이 서로 대립하던 이 시기에 칸트가 등장했고, 그의 철학은 인간의 도덕성과 품위를 깊게 다루었다. 그는 이성이 주도하는 사회, 즉 도덕법칙을 따르는 자유로운 개인들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꿈꿨다. 이성이 지향하는 최종의 관심은 도덕법칙에 따라 스스로를 규정하는 자율적 의지에 있는데, 이것은 행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가 아니라 그 자체로 선한 의지를 중시한다. 결과가 아니라 동기를 더 중요시한 것이다.
자유란 자의(恣意)가 아니다. 자의의 배후에는 욕망이 존재하고, 이에 따른 이기적인 선택이 그 본질이다. 칸트는 자의가 외부에서 주어지는 원인에 따를 경우 타율성의 산물이고, 자유는 스스로 도덕원칙을 세우고 지켜나가기에 자율적이라고 말한다. 자율성에 토대를 두고 선한 의지에서 출발하는 능력이 자유의 본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칸트가 모든 사람의 인격을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고 결코 수단으로만 대하지 말라고 역설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타인을 나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지 않는 태도, 그것이 바로 이성적 인간이 지녀야 할 최소한의 품격이다. 독일 관념론의 정점에 서 있는 헤겔이 인간은 보편적 이성의 의지에 따를 때 진정으로 자유롭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칸트가 제시한 첫 번째 정언명령, "그대가 따르는 원칙이 동시에 보편적 법칙이 되기를 원할 수 있는 경우에만, 그 원칙에 따라 행동하라"라는 의미가 새삼 소중해진다. 인간의 품위는 스스로에게 부과한 도덕의 원칙을 지켜내려는 자율적 자유 속에서 성립한다.
김길웅 성신여대 인문융합예술대학 명예교수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