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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금가분리 '빗장' 풀어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1.22 18:23

수정 2026.01.22 18:23

<금융-가상자산 분리>
가상자산의 투기과열 막기 위해
2017년 금융과 분리한 임시조치
8년 지난 현재 상시규제로 묶여
美·EU·싱가포르 등 주요국처럼
막을 것이 아니라 규율해야 하고
분리할 것 아니라 책임지게 해야
손병두 토스인사이트 대표
손병두 토스인사이트 대표
2017년 겨울을 떠올려보자. 비트코인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았고, 잡코인들은 속속 시장에 등장했다. 출근길 지하철과 점심 식당에서까지 가상자산 이야기가 오갔다. '묻지마 투자'가 일상이었고 대학생부터 자영업자, 은퇴자까지 시장에 뛰어들었다. 거래소 서버는 연일 다운됐고, 가격 변동성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정부 입장에서는 투기 과열을 방치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때 등장한 것이 이른바 '금가분리' 원칙이다. 금융회사와 가상자산 사업자를 철저히 분리해 은행과 증권사가 가상자산 시장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막는 정책이었다. 법에 명시된 규제가 아니라 행정지도 형태였지만, 효과는 강력했다. 금융은 가상자산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섰고, 시장은 사실상 비금융 영역으로 밀려났다. 당시로서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한 응급조치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 응급처치는 시간이 지나면 정상적인 치료로 전환돼야 한다. 그러나 금가분리는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가상자산 시장은 성숙해졌고, 제도화도 진전되고 있지만 금융과 가상자산을 분리해야 한다는 원칙만큼은 성역처럼 남아 있다. 응급처치였던 임시조치가 상시 규제가 된 셈이다.

이제 가상자산은 더 이상 투기적 실험이 아니다. 글로벌 투자자산의 하나로 자리 잡았고, 결제·자산관리·토큰화 같은 금융 인프라의 핵심 요소로 진화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위험하니 금융은 손대지 말라"에 머물러 있다. 마치 동네 밖에선 자동차가 돌아다니는데도 과거 교통사고의 기억 때문에 자동차 핸들도 못 잡게 하는 완고한 어르신들 같다.

최근 네이버와 두나무의 합병 발표는 이런 변화의 상징적 사건이다. 웹2 플랫폼의 대표주자와 웹3 금융 인프라가 결합하게 되면, 디지털 생태계의 경계는 더욱 흐려지게 될 것이다. 앞으로의 금융은 은행, 핀테크, 블록체인이 각자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 사용자 경험, 데이터, 자산 흐름이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통합된다. 이런 흐름 속에서 금융과 가상자산을 억지로 떼어놓는 금가분리는 점점 현실과 괴리된다.

해외는 이미 다른 선택을 했다. 미국에서는 전통 금융기관이 디지털자산 서비스를 직접 수행하는 것이 일상이 되고 있다. BNY 멜론은 세계 최초로 은행 본체에서 가상자산 커스터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국채를 토큰화한 펀드를 출시했다. JP모건은 단순히 실험을 넘어 블록체인 기반 결제 네트워크를 직접 가동하며 기업 간 결제에 활용하고 있다. 블록체인은 더 이상 '별도의 세계'가 아니라 기존 금융 인프라의 일부가 되었다.

유럽연합(EU)은 미카(MiCA) 규제를 통해 이 흐름을 제도적으로 정리했다. 은행이 디지털자산 서비스를 제공하되, 기존 금융규제를 그대로 적용받으면서 추가적인 인가를 받도록 했다. 분리보다는 연결, 금지보다는 책임 부과를 택한 것이다.

싱가포르의 접근법도 인상적이다. DBS은행은 은행 본체에서 디지털자산 거래소를 직접 운영한다. 그 대신 거래소, 커스터디, 중개 등 각 사업영역별로 엄격한 인가요건과 내부통제, 소비자 보호 규제를 적용한다. 금융과 디지털자산을 갈라놓지 않되, 위험은 제도 안에서 관리한다는 철학이다.

금가분리를 유지한다고 해서 투자자 보호가 자동으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금융회사가 배제된 시장에서는 자본력 있는 주체의 참여가 제한되고, 리스크 관리와 내부통제도 취약해진다. 반대로 금융회사를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면, 감독과 책임을 명확히 물을 수 있다. 위험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관리 가능한 영역으로 옮기는 것이 규제의 역할이다.

이제 분명해졌다. 주요국에서는 전통 금융과 디지털자산 서비스가 단일 규제체계 안에서 작동하는 구조가 이미 현실이 되었다. 금융당국도 이런 흐름을 외면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들 역시 최근 국제적 정합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재설계하겠다는 의중을 엿보이고 있다.

미래 금융은 이미 문 앞에 와 있다. 블록체인은 전통 금융과 더 이상 따로 놀지 않는다. 이를 인정하지 않는 규제만이 뒤처질 뿐이다.
우리가 계속 과거의 공포에 묶여 있다면, 한국은 또다시 '규제는 강하면서 혁신은 느린 나라'로 분류될 것이다. 막을 것이 아니라 규율해야 하고, 분리할 것이 아니라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
미래 금융의 문 앞에서, 더 이상 자물쇠만을 고집할 일이 아니다.

손병두 토스인사이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