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일 다 끝냈는데 눈치를 왜 보죠?" vs "동료 돕는 게 최소한의 예의"
퇴근 10분 전 '화장실행' 후 가방 싸기... 6시 정각 엘리베이터 잡는 '칼각'
퇴근 10분 전 '화장실행' 후 가방 싸기... 6시 정각 엘리베이터 잡는 '칼각'
[파이낸셜뉴스] 토요일 아침이다. 지난주 '에어팟'으로 귀를 막았던 이 사원, 이번에는 퇴근 시간의 풍경이다. 직장인에게 퇴근은 성역이라지만, 상황에 따라 그 성역은 전쟁터가 되기도 한다.
◇ 오후 5시 50분, '부스럭' 소리가 들린다
금요일 오후 5시 50분. 마케팅팀 사무실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다음 주 월요일 임원 보고를 앞두고 프로젝트 막바지 수정 작업이 한창이었기 때문이다.
그 적막을 깨는 소리가 들렸다. '지이익- 탁.' 가방 지퍼 잠그는 소리였다.
막내 이 사원(27)의 자리는 이미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다. 5시 55분이 되자 이 사원은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돌아와 핸드크림을 발랐다. 그리고 6시 정각, 컴퓨터 오른쪽 하단 시계가 '18:00'으로 바뀌는 찰나.
"팀장님, 저는 오늘 업무 다 마쳐서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해맑은 인사와 함께 이 사원은 바람처럼 사라졌다. 사무실에 남겨진 김 부장과 최 대리는 멍하니 닫힌 문을 바라봤다. 김 부장은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아니, 지금 우리 다 비상 걸려서 끙끙대는 거 안 보이나? 진짜 눈치가 없는 거야, 아니면 뻔뻔한 거야?"
◇ 김 부장의 한탄: "회사는 '팀' 아닌가? 최소한의 의리가 없다"
김 부장에게 '칼퇴'는 죄가 아니다. 하지만 '상황'을 무시한 칼퇴는 '동료애의 부재'다.
그는 자신의 일이 끝났더라도, 팀 전체가 위기 상황이라면 최소한 "제가 도울 건 없을까요?"라고 물어보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
김 부장은 "누구는 집에 가기 싫어서 야근하나. 다 같이 고생하는데 혼자 쏙 빠져나가면 남아있는 사람들은 허탈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어 "회사는 혼자 일하는 곳이 아니라 팀워크로 굴러가는 조직"이라며 "자기 밥그릇만 챙기고 동료의 고충을 외면하는 건, 쿨한 게 아니라 지독한 이기주의"라고 비판했다.
그는 덧붙여 "5시 50분부터 가방 싸고 퇴근 카운트다운 하는 걸 보면, 일하러 온 건지 시계 보러 온 건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
◇ 이 사원의 반론: "계약 시간 끝났는데 눈치 보는 게 '구태'"
반면 이 사원의 논리는 명확하다.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근무 시간은 '9 to 6'이고, 자신에게 할당된 업무를 시간 내에 완수했으니 퇴근하는 건 당연한 권리라는 것이다.
이 사원은 "일찍 퇴근하려고 점심시간도 줄여가며 집중해서 일을 끝냈다"며 "업무 효율이 높아서 제시간에 끝낸 건데, 왜 일이 늦어 야근하는 상사들의 눈치를 보며 죄인 취급을 받아야 하냐"고 반문했다.
그는 "할 일도 없는데 상사 안 갔다고 자리에 앉아 인터넷 쇼핑이나 하는 게 더 비생산적"이라며 "도울 게 있냐고 물어봤자 어차피 잡일이나 시킬 텐데, 굳이 퇴근 시간을 반납하며 '보여주기식 야근'을 하고 싶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 '책임감'의 차이인가, '세대'의 차이인가
과거에는 '야근'이 조직에 대한 헌신이자 성실함의 척도였다. 상사가 퇴근하기 전엔 엉덩이를 떼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2030 세대에게 회사는 '자아실현의 장'이라기보다 '노동력을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 계약 관계'에 가깝다.
"팀이 힘들 땐 함께 짐을 져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김 부장)과 "내 몫을 다했으면 내 시간은 온전히 나의 것"이라는 합리적 개인주의(이 사원). 금요일 오후 6시,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두 세대의 가치관은 오늘도 엇갈린다.
바쁜 동료를 뒤로하고 칼퇴하는 신입, '합리적'인가 아니면 '야박한' 것인가.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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