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패배 후 골키퍼 황재윤 향한 악플 테러
황재윤, 결국 "죄송합니다" SNS 사과
'무계획' 승부차기 방치... 코칭스태프 책임은 없나
이운재 등 베트남 코치진에 철저히 농락당한 이민성호
황재윤, 결국 "죄송합니다" SNS 사과
'무계획' 승부차기 방치... 코칭스태프 책임은 없나
이운재 등 베트남 코치진에 철저히 농락당한 이민성호
[파이낸셜뉴스] "지시받은 건 전혀 없었다. 온전히 제 잘못이다"
베트남전에서 승부차기를 막지 못한 22세 골키퍼 황재윤(수원FC)이 결국 고개를 숙였다. 쏟아지는 악성 댓글을 견디다 못해 SNS에 올린 사과문이었다.
하지만 이 사과문은 도리어 우리 사회의 씁쓸한 민낯을 드러냈다. 경기에 졌다고 해서 20대 초반의 청년 하나를 '역적'으로 몰아세우는 집단적 광기, 그리고 그 뒤에 숨어버린 '어른들의 무책임'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민성호는 24일 사우디 제다에서 열린 U-23 아시안컵 3·4위전에서 베트남에 승부차기 끝에 패했다. 문제는 승부차기 과정이었다.
선발 출전한 황재윤은 6번 연속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다. 키커의 킥 방향을 읽고 반응하기보다, 확률적으로 한쪽을 노리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베트남 키커들은 보란 듯이 반대편을 찔렀고, 황재윤이 처음으로 방향을 바꾼 7번째 킥에서 키커는 다시 반대로 찼다. 결과적으로 7번 모두 방향을 읽지 못했다.
경기 직후 황재윤의 SNS는 아수라장이 됐다. "승부 조작 아니냐", "눈감고 막아도 한 번은 막겠다", "베트남 스파이냐" 등 입에 담기 힘든 인신공격이 쏟아졌다. 집중포화가 계속되자 결국 선수는 "비난과 비판을 겸허히 받겠다"며 사과했다.
패배의 분노를 해소할 '희생양'을 찾아 물어뜯는 전형적인 마녀사냥이었다.
그런데 황재윤의 사과문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은 따로 있다. 바로 "감독님, 코치님께 지시받은 건 전혀 없었다"는 말이다.
현대 축구에서 승부차기는 '운'이 아닌 '과학'이다. 상대 키커의 습관, 킥 방향 등을 데이터로 분석해 골키퍼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코칭스태프의 기본 의무다. 일본과 중국은 이번 대회 승부차기에서 철저한 데이터 분석으로 승리를 챙겼다.
무엇보다 베트남에는 한국을 가장 잘 아는 레전드 골키퍼 코치 이운재가 있었다. 이는 당연히 고려해야할 변수였다.
그런데 한국은 어땠나. 토너먼트의 가장 중요한 순간, 골키퍼에게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은 채 "네가 알아서 막아라"라며 방치했다. 그것도 황재윤은 주전도 아닌 이번 대회 거의 출전하지 않은 '제 2옵션' 골키퍼였다.
황재윤의 '6연속 같은 방향 다이빙'은 데이터 부재 상황에서 선수가 택할 수 있는 가장 절박하고도 외로운 도박이었다.
그런데도 비난의 화살은 오직 선수 혼자 맞고 있다. 전술적, 데이터적 준비를 소홀히 한 코칭스태프와 협회의 책임은 '선수의 사과' 뒤로 묘하게 가려졌다.
물론, 국가대표로서 경기력에 대한 비판은 감수해야 한다. 승부차기 7번을 모두 놓친 판단 미스는 뼈아픈 실책이다. 하지만 그것이 선수 개인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킬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경기에 패배했다고 해서 한 선수를 희생양 삼아 패배의 분노를 방출하는 행위는, 우리가 비웃었던 '훌리건'과 다를 바 없다. 더구나 시스템의 실패를 개인의 무능으로 몰아가는 것은 비겁하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린 선수에게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왜 데이터 분석이 없었는지, 왜 승부차기 대비가 안 됐는지, 선수 선발은 공정하게 된 것인지 '시스템'을 묻고 따져야 한다.
축구는 졌어도, 우리 사회의 품격마저 져서는 안 된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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