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포럼] 韓국민이 원하는 기업의 사고대응법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1.25 19:04

수정 2026.01.25 19:04

최용훈 일본 도시샤대학 상학부 학장
최용훈 일본 도시샤대학 상학부 학장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은 단순한 보안 사고를 넘어 한국 사회 전반에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수천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다는 사실 자체도 기가 막히지만, 쿠팡 측의 사후대응 방식은 불 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국회 청문회에 최고경영책임자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현지법인 대표의 불성실하고 오만한 태도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심리학의 행동식별이론(action identification theory)은 이러한 사회적 반응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어떤 행동이나 사건을 해석할 때 결과에 더 주목하기도 하고, 그 과정을 더 중시하기도 한다.

이러한 차이는 개인 간에도 나타나지만, 문화적 배경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일본인은 미국인보다 행위를 해석할 때 과정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고, 반대로 미국인은 상대적으로 결과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예를 들어 보자. 식당에서 종업원이 실수를 했을 때, 과정을 중시하는 일본 소비자에게는 정중한 사과와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태도가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반면 결과를 중시하는 미국 소비자에게는 할인쿠폰이나 금전적 보상처럼 가시적 결과를 제공하는 것이 더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한국 사회는 흔히 결과 중심적이라고 평가되지만, 실제로는 결과와 과정을 동시에 요구하는 복합적인 특성이 보인다. 결과가 좋으면 과정이 다소 미흡하더라도 비교적 관대하게 넘어가지만, 결과가 나쁠 때는 과정에 대한 엄격한 설명과 책임 있는 태도가 요구된다. 성과와 보상은 중요하지만,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그 원인이 무엇인지, 책임의 소재는 어딘지, 어떤 태도로 사과하는지에 대한 납득할 만한 대응이 필요하다. 결과만 제시하면 진정성을 의심받아 책임 회피로 비치기 십상이고, 과정에 대한 설명만 반복하면 보상 의지가 없거나 말뿐인 대응으로 여겨지기 쉽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쿠팡의 사후대응은 한국 사회의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피해자들에게 1조6900억원 규모의 보상안이 발표되었으나, 제공 형태나 복잡한 조건에 대해 실질적인 보상으로 보기 어렵다는 비판이 있다. 또한 빠른 시점에서 최고경영자가 직접 사과하고 명확한 사건 경위를 설명하는 과정적 대응이 부족했던 점은 여론을 오히려 악화시키고 말았다. 이는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결과와 과정의 동시 충족'이라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업 활동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실패나 불상사가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핵심은 문제 발생 시 기업이 어떤 태도나 방식으로 대처하느냐다.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중대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안타깝지만 많은 소비자들은 로켓배송을 계속해서 이용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선택은 어디까지나 대체재의 부재나 전환비용으로 인한 '유사 충성도 (spurious loyalty)'에 불과하다. 이를 너그러운 용서나 변함없는 성원으로 착각한다면 기업은 진정한 반성과 개선의 기회를 스스로 놓치게 된다.
이번 쿠팡 사태가 한국 기업들에 결과와 과정 모두에 책임지는 대응이 왜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최용훈 일본 도시샤대학 상학부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