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視角] 캄보디아 송환, 개운치 않은 승전보

정지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1.25 19:07

수정 2026.01.25 19:07

정지우 사회부장
정지우 사회부장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출발한 대한항공 KE9690편 전세기가 인천국제공항 활주로에 멈춰 서고 고개를 꺾은 스캠(사기), 인질강도 등 범죄단체 한국인 조직원 73명이 줄지어 내린다. 마스크 위로 드러난 눈동자들을 향해 카메라들은 연이어 플래시를 터트린다. 송환자 수보다 많은 경찰들이 도열하듯 이들을 감시하고, 이 장면을 보도하는 화면 위에는 '역대 최대 규모의 송환 성과'라는 자막이 붙는다. 때마침 "여러 부처가 공조했고 기내에서 전격 체포했다"는 잘 짜인 첩보영화 같은 무용담이 앵커의 정제된 목소리로 흘러나온다.

하지만 매끄럽게 편집된 화면을 보고 있어도, 마음이 마냥 편하진 않다.

정부 부처가 설계한 이 완벽한 '승전보' 앞에서 박수를 쳐야 할지, 아니면 이 이질적인 풍경의 정체를 의심해야 할지 망설여진다. 이 화면은 캄보디아발 비극의 종결인가, 아니면 거대한 빙산의 일각이 수면으로 잠시 튀어오른 것에 불과한 것일까.

캄보디아의 악명 높은 범죄단지들은 결코 갑작스러운 재난이 아니다. 인터넷의 구석진 게시판, 각종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통되는 경험담 사이에서 위험신호는 오래전부터 비릿한 냄새를 풍기며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국가는 그 위험이 '배경'이 되어가는 긴 시간 동안 방관자로 머무르는 데 그쳤다. 잘 봐줘도 '관찰자' 수준이었다. 이 과정에서 위험은 특정 사례가 아닌 일상이 됐고, 범죄는 기괴한 질서를 갖추고 한국인들을 소모품으로 집어삼켰다.

이들이 수년에 걸쳐 한국인 869명으로부터 편취한 금액은 486억원이다. 이 가운데 70명은 로맨스 스캠이나 투자 리디방 운영 등 스캠범죄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3명은 인질강도와 도박 등의 혐의를 받는다. 투자 전문가를 사칭해 사회 초년생과 은퇴자들에게서 약 194억원을 받아 가로챈 사범도 있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뒤 캄보디아로 도주해 사기를 도운 도피사범, 스캠단지에 감금된 피해자를 인질 삼아 국내에 있는 가족을 협박하고 금품을 갈취한 조직원 등 역시 송환됐다. 가상인물로 위장하는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해 104명에게 약 120억원을 편취한 로맨스 스캠 부부 사기단은 성형수술로 얼굴을 바꿨지만 검거망을 피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청와대까지 나서 이처럼 성과를 자랑해도 개운하지는 않다. 이번에 비행기에 태우지 못한 이들이 여전히 많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수치 때문이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해 10월 "캄보디아의 온라인 사기 산업에 가담한 한국인은 약 1000명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했다. 국가정보원이 밝힌 한국인 수는 최대 2000명이다. 현지 범죄단체 관계자나 교민들은 "범죄단지 50여곳에서 수천명이 일하고 있다"는 증언을 한다. 이미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있고, 여전히 갇힌 채 이름 없이 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정부가 추정하고 있는 것은 80여명이 실종 상태라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사회의 반응은 지나칠 정도로 간결하다. '누가 가라고 등 떠밀었나' '쉽게 돈 벌려다 자초한 일' 등의 댓글이 기사마다 달린다. 반면 정부는 '단죄하는 국가'의 유능함을 증명하기 위해 수갑 찬 손목만을 클로즈업하기를 바란다.

사회와 국가가 각자의 방식으로 이같이 사건을 정리하는 동안 근본적인 문제는 자연스럽게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위험이 오래도록 방치됐던 시간, 경고가 신호로 작동하지 못했던 구조, 국경 밖이라는 이유로 미뤄졌던 개입의 책임은 그 어느 쪽에서도 온전히 다뤄지지 않는다. 사건을 개인의 일탈로만 치부하는 것은 또 다른 출발이다.
다음 구인 글, 다음 메신저 초대, 다음 항공권은 여전히 유통된다. 사태를 끝내려고 한다면, 다음 송환 장면을 준비할 것이 아니라 이런 장면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조건부터 만들어야 한다.
아니라면 오늘의 승전보는 또 하나의 시작에 불과하다.

jjw@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