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오키나와의 오나리가미 신앙
오키나와 기축신앙 '오나리가미'
아태 지역 섬나라 전역으로 퍼져
중국의 마조, 사모아 파티이엔도
'누이동생神' 모시는 동일한 신앙
영력으로 남자형제 지켜낸다 믿어
김정은 나팔수 역할하는 김여정
집권 초부터 일거수일투족 돌봐
평양 깊숙이 파고든 오나리가미
최근 10대공주 등장으로 이어져
오키나와 기축신앙 '오나리가미'
아태 지역 섬나라 전역으로 퍼져
중국의 마조, 사모아 파티이엔도
'누이동생神' 모시는 동일한 신앙
영력으로 남자형제 지켜낸다 믿어
김정은 나팔수 역할하는 김여정
집권 초부터 일거수일투족 돌봐
평양 깊숙이 파고든 오나리가미
최근 10대공주 등장으로 이어져
국가정보원과 그 조직의 수장을 역임했던 국회의원이 서로 엇갈린 주장을 한 적이 있었다. 평양의 공주가 앞으로 공화국의 실세로 등극할 것인지 아닌지의 문제를 두고 입씨름을 하고, 제3자도 구설을 보태었다. 평양의 움직임에 가장 관심이 많을 것으로 생각되는 통일부는 입을 다물었다. 평양의 권력구조를 보여주는 핵심 문제에 대한 나라의 정보력이 흔들리는 모습을 대하는 국민 입장에 신경이 쓰인다. 그러한 설왕설래가 누항의 점쟁이 수준으로 비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누이동생의 영혼'은 힘이 세다?
오나리가미. '오나리'는 자매(姉妹)를 지칭하는 오키나와 방언이다. 여자들이 남자형제들을 부르는 단어가 '에배리'다. '가미'는 신(神)이다. 우리말로 풀어 쓰면 '누이동생신'이다. 누이동생의 영혼이 남자형제들을 보호하는 영력(靈力)을 갖고 있다는 신앙이다. 유구열도 전체 길이가 1200㎞이기 때문에, 섬마다 말이 다르다. 오나리가미가 독립적인 연구주제의 논문으로 발표됐던 최초의 시점이 1927년이었고, 그 논문의 작성자는 오키나와 출신으로 동경제국대학 박언학과에서 공부했던 이하 후유(伊波普猷·1876~1947)다. 그야말로 문화의 깊이를 읽은 독창적인 연구 결과였다. 집을 사기 위해서 돈을 빌리는 일상생활에서부터 집안의 문중의례와 국가 차원의 종교에 이르기까지, 매사에 자매의 영력으로 남자형제들의 인생과 행복이 보장된다는 신앙이다. 유구왕국 시대에는 '노로(祝女)'라는 종교적 지도자가 국왕의 누이였다. 이러한 신앙이 왜 생겼을까? 남태평양의 사모아에서는 동일한 신앙을 '파티이엔(patieyen)'이라고 하며, 그 단어는 뉴기니의 부속도서인 애드미랄티의 마누스족을 연구했던 마가렛 미드와 리오 포츈 부부에 의해서 '자매의 영적 우월성'으로 보고됐다. 페미니즘 구축의 원조로 둔갑했던 작품 속에서 본래의 의미가 희석되어버린 점이 아쉽다. 그 개념은 과거 동인도회사의 본부가 있었던 바타비아(자카르타)에서 네덜란드 학자들에 의해서도 보고됐고, 인도네시아의 여러 섬들에 동일한 신앙이 있음도 확인됐다. 오나리가미 신앙은 동남아시아로부터 서태평양의 도서 전역, 그리고 오키나와에 이르는 광역 분포를 보인다. 일종의 해역 신앙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과 사에 관련된 신앙이라는 점에서 문화의 심층성을 직감한다.
어로와 무역으로 바다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지키는 신으로 섬겨지는 중국의 신앙 대상이 마조다. 해남도를 비롯한 광동성과 복건성의 해안과 대만에서 만나는 사찰마다 반드시 모시는 신이 천비(天妃) 또는 천상성모(天上聖母)라는 이름의 마조다. 마조신앙의 원조라고 알려진 복건성의 어촌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승된다. 아버지와 오빠들이 고기잡이를 나간 뒤, 잠을 자던 누이동생이 몽중 발작을 일으켰다. 폭풍을 만난 배가 난파되면서 아버지는 구출됐는데, 남자형제들은 수장됐다. 그 과정에 누이동생의 영력이 작동했다는 얘기다. 이하 후유가 보고했던 오키나와의 오나리가미와 동일한 내용이다. 유교가 강력한 대륙에서 발휘된 효의 개념이 오나리가미 신앙에 습합됐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연장선상에서 소중화 조선의 심청전(沈淸傳) 유래에도 관심이 간다. 베트남의 해안에도, 필리핀의 어촌에도 동일한 내용의 전설이 분포한다. 문화전파론으로 설명하면, 마조신앙은 남태평양으로부터 북상한 오나리가미 신앙의 주자학적 변형이다. 오나리가미 신앙 및 그와 관련된 현상은 남태평양으로부터 동중국해에 이르는 해역의 기축신앙(基軸信仰)이다. 대만과 오키나와 및 말레이시아의 사찰에 마조신앙이 보이는 것은 후일 화교를 따라서 역수입된 현상이다.
■김여정은 평양의 오나리가미?
오나리가미 문화권의 북한계선이 평양이다. 평양의 오나리가미로 혜성처럼 등장했던 김여정을 떠올리면 된다. 김정은 집권 초기에 김정은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했던 김여정의 모습이 평양의 오나리가미인 셈이다. 오나리가미가 평양을 지배하는 사상의 심층에 자리하고 있음을 부정하지 못한다. 장성택 총살의 문제를 문화론으로 부언하면, 권력욕에 눈이 어두워서 문화읽기와 문화실천에 실패한 사례다. 그러한 과정을 정치학으로 설명할 것인가, 경제학으로 설명할 것인가? 문학과 예술은 물론이고, 철학과 사학으로도 설명하지 못했다. 고모부를 총살한 패륜아로 김정은을 이해하는 정도의 얄팍한 정보력으로는 과녁을 제대로 맞출 수가 없다. 주체사상의 저변에 도사리고 있는 오나리가미 신앙을 읽는 눈이 필요하다. 주변으로 갈수록 원리주의적 모습을 보인다는 주변문화론의 전형적 모습을 만족시키기에 한치의 모자람도 없는 사례가 평양의 오나리가미다. 김정은의 나팔수를 그의 누이동생이 도맡아서 하고 있는 현상이 평양의 오나리가미 신앙을 설명해준다. 10대 공주의 등장은 제2의 김여정일 수도 있고, 더 나아가면, 공화국의 실세까지 연장될 수도 있다. 1393년 전 신라를 기록한 '삼국유사'는 "김씨 성골의 남자가 다하였으므로 여왕이 섰다"라고, 선덕여왕의 등극을 설명한다. 그에 합당한 존호를 성조황고(聖祖皇姑)라고 적었다. 역사는 반복한다는 얘기도 있지만, 실천력을 갖고 있는 것은 민심 흐름의 기반인 문화와 문화이해에 달렸다. 21세기 평양의 오나리가미 신앙이 현재 진행형으로 작동하고 있음이 무겁게 다가온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상황에 따라서 달라진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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