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이 본 '트럼프 관세 폭주'
국회 입법에 발목 잡힌 한국 겨냥
대미투자 이행 지연에 인상 카드
韓, 휘둘리지 말고 심사숙고해야
국회 입법에 발목 잡힌 한국 겨냥
대미투자 이행 지연에 인상 카드
韓, 휘둘리지 말고 심사숙고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대미투자 이행 지연을 문제 삼아 관세 재인상이라는 초강수를 뒀다. 일본이나 대만과 달리 국회 입법 절차에 발목을 잡힌 한국의 상황을 타격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단순한 통상마찰이 아닌 트럼프의 정치적 조급함과 한국의 전략 부재가 맞물린 복합위기로 진단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미국 내 정치 일정과 맞물린 2월 데드라인설을 제기하며 한국 정부와 국회가 안일한 시간 끌기로 대응하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역풍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28일 파이낸셜뉴스는 박지형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이학노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명예교수, 신원규 한국경제연구원 책임연구위원 등 전문가 4인의 긴급진단을 통해 트럼프의 속내와 한국의 생존 해법을 모색했다.
"2월 대법 판결 전 '알박기' 시도"
신원규 한국경제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이번 관세 압박의 시점에 숨겨진 트럼프의 초조함을 읽어야 한다고 밝혔다. 단순히 투자를 재촉하는 수준을 넘어 미국 내 사법 리스크가 트럼프를 압박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신 연구위원은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2월 중에 나오고, 그 결과에 따라 관세 징수액 소급 절차가 바로 진행될 수 있는 상황"이라며 "국가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기반한 국가별 상호관세에 대해 대법원에서 위법 판결이 나오면 트럼프 입장에서는 상당히 난감해진다"고 했다. 그는 "법적 권한이 무력화되기 전에 한국의 투자를 확정 짓지 못하면 미국 내 투자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신 위원은 한국이 타깃이 된 이유를 '레버리지(보복 수단) 부재'에서 찾았다. 그는 "유럽연합(EU)의 경우 미국이 관세 위협을 가하자 '무역 바주카포(통상 위협 대응조치·ACI)'라 불리는 강력한 보복 수단으로 맞서 트럼프를 후퇴시켰지만 한국은 대미 수입이 크지 않아 마땅히 대응할 카드가 없는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한국을 본보기로 삼아 일본이나 대만 등 다른 동맹국들에도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진단했다. 신 위원은 "기업 입장에서는 관세 리스크보다 불확실성이 더 큰 부담"이라며 "법적 절차를 밟아 약속을 확정짓는 것이 기업 활동을 돕는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꼼수로 비치면 협상판 깨진다"
이학노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명예교수는 "미국 통상당국 시각에서 한국의 입법 지연은 명백한 약속 위반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며 냉정한 현실 인식을 주문했다.
이 교수는 "미국 입장에서 보면 일본은 이미 투자를 시행하고 있는데 한국은 국회 절차를 이유로 안 하고 있다는 것이 움직일 수 없는 팩트(사실)"라며 "미국으로서는 당연한 요구를 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치열한 논쟁 때문에 늦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국 국회가 아예 상정조차 안 하고 방치하고 있는 상황 아니냐"면서 "미국이 볼 때는 특별한 사정 없이 고의로 딜레이(연기)하고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 교수는 한국이 미국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것을 가장 큰 리스크로 꼽았다. 그는 "만약 트럼프 정부가 '한국이 대법원 무효 판결을 기다리며 없던 일로 하려고 시간을 끈다'고 오해한다면, 이는 트럼프를 극도로 자극하는 행위"라고 경고했다. 이 교수는 "꼼수를 부리는 것처럼 비치면 국익에 치명적"이라며 "오해를 사지 않으려면 정공법으로 약속을 이행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연되면 미운털 박혀 보복당해"
박지형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트럼프의 화법을 복잡하게 해석하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봤다. 트럼프가 원하는 것은 오직 '속도'와 '결과'뿐이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트럼프의 의도를 100% 알 수는 없지만 숨겨진 의도가 있다기보다는 겉으로 드러난 그대로 '빨리 법안을 통과시켜서 투자를 가져오라'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관세를 낮춰준 건 대미투자를 전제로 한 것이었는데 1년 동안 투자는커녕 법안조차 통과되지 않고 있다면 미국 입장에서는 당연히 항의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미국의 불만에 타당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박 교수도 이 교수처럼 버티기 전략의 위험성을 크게 우려했다. 그는 "우리가 협정을 이행하지 않고 시간 끌기만 한다는 인상을 주면 트럼프에게 제대로 '미운털'이 박히게 된다"며 "트럼프가 작정하고 한국을 괴롭히려면 엄청나게 괴롭힐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트럼프 이후에도 보호무역주의 흐름은 지속될 것"이라며 "단순히 트럼프 비위를 맞추는 차원이 아니라 미국 시장 내 생존을 위한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환율·플랫폼 노린 고도의 성동격서"
반면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다른 전문가들과 달리 관세 부과가 실제 실행될 가능성을 낮게 보며 트럼프의 노림수를 경계해야 한다는 신중론을 폈다.
김 교수는 "미국조차 아직 투자위원회가 구성되지 않아 투자를 받을 준비가 안 돼 있는데 한국의 법 통과 지연을 탓하는 것은 시계열상 맞지 않는다"며 논리적 모순을 지적했다. 그는 "실제로 관세를 부과하려면 양해각서(MOU) 파기 등 복잡한 절차가 필요한데 명확한 근거 적시도 없다"면서 "실제 인상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이번 조치가 다른 통상 현안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성동격서' 전술일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그는 "최근 환율 이슈나 구글 지도 반출, 망 사용료 면제 등 해결되지 않은 통상 이슈들이 있다"며 "한국의 반응을 떠보기 위해 '잽(테스트용 펀치)'을 날려보는 것일 수 있다"고 전했다. 다만 김 교수는 "트럼프가 엉뚱한 소리를 하더라도 분명히 뭔가를 뜯어내려는 의도는 확실하다"며 "관세 공포에 떨기보다 진의 파악이 우선"이라고 덧붙였다.km@fnnews.com 김경민 홍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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