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링의 비극 다룬 연극 '튜링머신'…"동성애 인정, 용기 있는 선택"
관객 호흡 극대화한 '4면형 무대'…"소통 더 늘려가고 싶어"
천재수학자 연기 이상윤 "달랐을 뿐…고독한 한 인간 이야기"튜링의 비극 다룬 연극 '튜링머신'…"동성애 인정, 용기 있는 선택"
관객 호흡 극대화한 '4면형 무대'…"소통 더 늘려가고 싶어"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앨런 튜링은 당시 너무 앞섰던 사람이었기에 이상하게 취급받은 사람이었죠. 그냥 달랐을 뿐이지 결코 잘못된 사람은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영국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은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공로에도 불구하고 전후에 동성애자로 몰려 형사처벌까지 받고 끝내 목숨을 잃었다. 그의 비극적 삶을 다룬 연극 '튜링머신'에 출연 중인 배우 이상윤(45)은 자신이 연기하는 튜링을 이렇게 해석했다.
이상윤은 29일 서울 성동구 아지트 공간 튜링의 사과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튜링의 동성애에 관해 "자신을 유일하게 받아줬던 존재를 잃은 뒤 누군가와 다시 그런 교류를 하고 싶었던 마음이 조금 다르게 표현된 것이 동성애였던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암호 체계인 '에니그마'를 해독해 연합군 승리에 기여한 튜링은 1952년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나섰다가 동성애 혐의로 체포돼 화학적 거세형을 받았다. 당시 영국에서는 동성애가 범죄에 해당했다.
연극에서는 동성애 혐의로 기소된 튜링이 재판에서 모든 혐의를 인정하는 장면이 다뤄진다. 이상윤은 튜링이 혐의를 부인하는 대신 스스로 십자가를 짊어지기로 결정한 것은 자기 본연의 모습을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동성애 사실을) 부정하는 순간 자기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고 생각해 그냥 받아들인 것 같다"며 "남들의 인정을 받기보다는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그냥 인정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튜링의 태도가 굉장히 용기 있는 사회적 저항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상윤은 "튜링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세상에 저항하고 결국은 목숨을 끊어서라도 스스로를 지켜낸 사람이었다"며 "제가 당시로 돌아가면 과연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굉장히 용기가 필요한 선택이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튜링의 신념은 사후 62년 만인 2016년 영국 정부가 법적 처벌을 받은 동성애자와 양성애자 전원을 사면 복권하면서 결실을 이뤘다. 앞서 튜링도 2013년 재심 절차를 통해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명예를 되찾았다.
부당한 사회적 금기에 정면으로 저항한 특별한 인물을 다루지만, 결국은 여느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연극이라는 견해도 밝혔다. 이상윤은 "'튜링머신'도 박근형 선생님과 두 번 작품을 같이 하면서 배웠던, 인간에 대한 이야기였다"며 "자신이 찾고자 했던 모습과 그것에 닿지 못하는 현실의 차이에서 조금은 외롭고 고독했던 인물의 이야기라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이상윤은 2024년 '세일즈맨의 죽음'에 이어 지난해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에서 박근형과 호흡을 맞춘 바 있다.
'튜링머신'은 튜링이라는 논란의 인물을 다룬 것뿐만 아니라, 배우와 관객의 호흡을 극대화하고자 무대를 4면형 구조로 설계하는 등 여러 실험적인 도전에 주저하지 않은 작품이다. 4면형 무대는 배우가 정면뿐만 아니라 옆과 뒤까지 신경 쓰며 연기해야 하는 구조라 부담감이 적지 않은 방식이다.
낯선 무대 구조에 이상윤도 작품 개막을 앞두고 많이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함께 튜링으로 출연하는 이승주 배우의 움직임을 많이 참고하며 공연하고 있다"면서 "같은 구조로 공연 중인 연극 '벙커 트릴로지'도 관람하고, 친한 연출가인 오경택에게서 조언도 받고 있다"고 했다.
4면형 무대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관객과의 소통을 늘려가고 싶다는 바람도 밝혔다. 이상윤은 "4면형 무대여서 배우와 관객이 함께하는 공연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연습했는데, 실제 공연해보니 정적 속에서 집중해 관람하더라"며 "작품 속 재판 장면에서 '모두 기립해 주십시오'라는 대사가 있는데 관객이 진짜로 모두 일어선다면 재밌으면서 더 힘을 내 공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개막한 '튜링머신'은 3월 1일까지 공연된다.
h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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