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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츠와프의 쥐들' 번역 정보라 "흥미진진 좀비물 쓰고 싶어"

연합뉴스

입력 2026.01.30 10:38

수정 2026.01.30 10:38

폴란드 SF 거장의 좀비 장편소설…2년에 걸쳐 3권 번역·완간 "장르 공식에만 매달리면 독자 외면…번역 지평 더 넓어졌으면"
'브로츠와프의 쥐들' 번역 정보라 "흥미진진 좀비물 쓰고 싶어"
폴란드 SF 거장의 좀비 장편소설…2년에 걸쳐 3권 번역·완간
"장르 공식에만 매달리면 독자 외면…번역 지평 더 넓어졌으면"

정보라 작가 (출처=연합뉴스)
정보라 작가 (출처=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한국은 10년이 안 되는 기간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었습니다. 또 어떤 치명적인 신종 전염병이 등장한다면 사회가 여기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폴란드 SF 문학의 거장 로베르트 J. 슈미트의 '브로츠와프의 쥐들'(다산책방)을 번역한 정보라 작가는 30일 연합뉴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의 경험과 1960년대 폴란드와 한국 사회의 접점에 관해 이야기했다.

'브로츠와프의 쥐들'은 '카오스', '철장', '병원' 3부작으로 이뤄진 좀비 아포칼립스 시리즈로, 마지막 편이 최근 번역·완간됐다.

작품은 1963년 폴란드 서부의 대도시 브로츠와프에서 실제 일어났던 출혈성 천연두 감염 사태를 배경으로 한다.



출혈성 천연두가 유행하자 정부는 이 지역을 봉쇄하는데, 격리병동에서 '죽지 않는 시체'인 좀비가 나타난다. 이후 간호학교, 군대, 교회 등에서 좀비 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지며 묵시록적 풍경이 펼쳐진다.

정보라 작가 (출처=연합뉴스)
정보라 작가 (출처=연합뉴스)

한국 독자들이 이 작품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정보라의 번역 덕이다.

이 시리즈는 '저주토끼'로 2022년 부커상 국제 부문과 이듬해 전미도서상 번역문학 부문 최종후보에 오르고 '너의 유토피아'로 올해 필립 K. 딕상 후보에 오른 소설가 정보라가 번역한 책으로 주목받았다.

그는 미국 예일대에서 러시아 및 동유럽 지역 연구로 대학원 과정을 마친 후 인디애나대에서 슬라브 문학 박사 학위를 받은 러시아·폴란드 문학 전문가이기도 하다.

정보라는 작품을 번역하게 된 계기에 대해 "공산국가였던 시기 폴란드의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 신종 전염병의 출현을 무조건 감추고 덮는 데 급급한 공산당 고위간부들, 아무것도 모르고 위험에 맞닥뜨리는 일반 시민들의 모습이 굉장히 현실감 있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한국 독자에게도 충분히 호소력 있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인 1963년은 폴란드가 제2차 세계대전의 상흔을 안고 강제적 공산화가 이뤄진 지 15년이 되던 해다.

전쟁과 영토의 재편성, 소련의 위성국가로의 추락, 군사독재를 겪은 폴란드는 극도의 불안에 놓인 상황이었다.

브로츠와프의 쥐들 : 병원 (출처=연합뉴스)
브로츠와프의 쥐들 : 병원 (출처=연합뉴스)

이런 역사적 경험은 한국과 폴란드의 공통 분모이기도 하다. 한국 독자들에게 이 작품은 단순한 좀비물이 아니라, 역사적 현실의 은유로 다가온다.

정보라는 한국어로 옮기는 데 가장 어려움을 겪은 부분으로는 "1960년대 폴란드 군인, 경찰, 교도관 계급구조"를 꼽았다.

그는 "(계급구조가) 1권과 2권 작품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인데 제가 군 경험이 없고 한국의 군·경·교도관 계급 구조와도 달라서 편집자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설명했다.

원작의 말맛을 살리는 데도 각별히 신경을 썼다.

정보라는 "원문에서 배경이 되는 브로츠와프 시와 실롱스크 지역은 폴란드 사람도 잘 못 알아듣는 독특한 방언으로 유명하다"며 "시리즈 전체에서 이런 특이한 언어를 사용하는 인물들의 특성을 살리는 법, 방언과 지역 분위기를 전달하는 방식에 관해 많이 고민했다"고 말했다.

또 "문장은 박진감과 속도감을 최대한 전달하는 방향으로 편집과 교정 과정에서 몇 번이나 고쳤다"고 강조했다.

2년에 걸친 지난한 작업이었지만 번역을 하면서 소설가로서 배운 바도 있었다.

그는 "시리즈를 번역하면서 속도감 있게 줄거리를 전개하는 방식과 예상하지 못한 등장인물이 새로운 사건을 열어가는 방식을 배웠다"며 "좀비물을 좋아하지만 써 본 적은 없는데, 이렇게 흥미진진한 좀비물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정보라 작가 (출처=연합뉴스)
정보라 작가 (출처=연합뉴스)

번역가로서 소개하고 싶거나 눈여겨보는 작품이 있는지 묻자 폴란드 작가 나탈리아 쇼스타크의 데뷔작 '상실'이 곧 출간 예정이며, 호주에서 권위 있는 마일즈 프랭클린상을 받은 시앙 루의 작품도 번역하려 준비 중이라고 귀띔했다.

자신의 새 작품과 관련해서는 "여러 앤솔러지에 참여하게 돼 단편 원고를 마감했거나 교정하는 과정에 있다"며 "올해 안에 해외 출장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가 나올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장르문학을 파고드는 이유에 관해서도 물었다.

"장르문학은 작품 안에서 장르 공식을 강하게 나타내기 때문에 천편일률적이거나 통속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장르문학은 재미있습니다! 저는 재미있는 책이 좋아요!"
그러면서 정보라는 "장르문학 작품이 천편일률적인 장르 공식에만 매달리면 독자들에게 외면당한다"며 "장르 작가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소재와 새로운 줄거리를 발굴하고 연구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한국의 번역 문화 발전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정보라는 "번역의 지평이 좀 더 넓어지고 다양해지면 좋겠다. 현재 한국 번역 문화는 영미권과 유럽에 너무 많이 의존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양한 언어의 문학을 한국에 받아들이고, 한국 문학도 다양한 언어로 번역 수출되어 판로가 더욱 넓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kihu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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