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여보, 우리 카드 해킹당했어?"... 내가 쓴 건 30만 원인데 청구서는 450만 원 [얼마면 돼]

전상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2.01 09:00

수정 2026.02.01 13:13

"내가 쓴 건 점심값 뿐인데..." 명세서 붙들고 '해킹' 의심하는 남편
범인은 '쿠팡맨'과 '배달앱'? 가랑비에 옷 젖다 '물폭탄' 맞았다
"여보,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 낭비 아니라 '생존'이라는 아내
실제 지난해 4인가구 월평군 소비 지출액 약 404만원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가 생성한 이미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가 생성한 이미지

[파이낸셜뉴스] 2월 1일 일요일 오전. 느긋하게 일요일 아침을 즐기던 직장인 A씨(42)의 휴대전화가 짧게 울린다. 카드사에서 날아온 '이번 달 결제 예정 금액' 알림 문자다.

무심코 액정을 확인한 A씨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누적 이용 금액: 4,580,000원]
순간 머릿속이 하얘진다. "잘못 본 거겠지?" 다시 봐도 숫자 '0'의 개수는 그대로다.



A씨는 급히 아내를 부른다. "여보, 카드사 고객센터 전화해 봐! 우리 카드 해킹당한 것 같아. 내가 쓴 건 용돈 30만 원이랑 주유비밖에 없는데 어떻게 400이 넘어?"
하지만 돌아온 건 아내의 한심하다는 눈빛뿐. 해킹이 아니었다. 도대체 내 월급은 어디로 증발한 것일까. 4화에서는 3040 가장들이 매달 겪는 '카드값 미스터리'를 파헤친다.

◇ '범인'은 없다, '잔챙이'들만 있을 뿐


다만, 남성들이 억울해하는 포인트는 명확하다.

"큰 거 지른 게 없는데 왜?"라는 것이다.

명품 가방을 산 것도, 해외여행을 다녀온 것도 아니다. 그런데 명세서를 까보면 기가 막힌다. 1만 원, 2만 원, 5천 원... 끝도 없이 이어지는 '소액 결제'의 향연이다.

범인은 집 문 앞에 쌓여있는 택배 상자와 배달 용기에 있다. '쿠X' 28,000원, '배달의X족' 32,000원, '마켓X리' 45,000원...

직장인 B씨(39)는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더니, 이건 가랑비가 아니라 물폭탄 수준"이라며 "퇴근하면 현관문 앞에 택배 박스가 탑처럼 쌓여 있는데, 그게 다 내 노동의 결과물이라 생각하면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온다"고 토로했다. 마치 '쿠팡맨'과 한집에 사는 기분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도 나온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만든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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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만 쉬어도 나간다"... 억울한 아내들

그렇다면 아내들은 펑펑 쓰고 있는 걸까. '해킹'을 의심하는 남편 앞에서 아내들도 할 말은 많다.

주부 C씨(38)는 "명세서 자세히 봐라. 내 옷 한 벌 산 거 있나. 다 애들 학원비, 기저귀, 쌀, 우유 산 거다"라고 반박했다. 고물가 시대, 마트에서 장 한 번 보면 10만 원은 우습게 깨진다. 주말에 가족끼리 외식 한 번만 해도 10만 원이다.

아내들 입장에서는 "남편은 자기가 쓴 30만 원(용돈)만 기억하고, 가족 넷이 먹고 사는 데 드는 '생존 비용'은 공짜인 줄 안다"며 서운함을 내비친다.

450만 원은 사치가 아니라, 4인 가족이 서울 하늘 아래서 숨 쉬고 사는 데 필요한 '기본요금'이라는 것이다.

실제 통계 자료도 그렇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4인 가구의 월평균 소비지출액은 약 404만 원이었다. 여기에 대출 이자와 세금 등 비소비지출을 더하면 가계의 월평균 지출은 500만 원을 훌쩍 넘긴다. 즉, A씨가 받은 450만 원 청구서는 낭비의 결과가 아니라, 대한민국 4인 가족이 살아가기 위한 '평균값'인 셈이다.

◇ '퍼가요~♡' 로그아웃된 통장, 다시 출근하는 가장

미스터리는 풀렸다. 해킹범은 없었고, 물가 상승이라는 거대한 파도와 가족을 먹여 살린 '생활비'만이 남았다.

의혹은 해소됐지만, 통장의 잔고가 '0원'으로 초기화됐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스쳐 지나가는 월급을 보며 가장은 허탈함을 느끼지만, 한편으론 "그래도 이번 달 우리 식구 굶지 않고 잘 버텼다"는 위안을 삼는다.


그리고 텅 빈 통장을 채우기 위해, 월요일 아침 우리는 또다시 출근길 지옥철에 몸을 실을 것이다.

여러분의 1월 카드값은 안녕하십니까. 혹시 당신도 지금 '해킹'을 의심하고 있진 않습니까?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