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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연준·낮은 금리’ 요구받은 워시, 시험대 오른 통화정책

이병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2.01 10:48

수정 2026.02.01 10:47

케빈 워시 연준 의장 지명자. 사진=연합뉴스
케빈 워시 연준 의장 지명자.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차기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으로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를 지명하면서, 워시는 연준의 권한과 역할을 줄이라는 정치적 요구와 기준금리를 낮추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을 동시에 떠안게 됐다. 워시가 연준 의장으로 지명된 것은 연준의 역할 축소와 금리 인하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문제의식에 공감대를 형성한 결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벌써부터 "오랫동안 그를 지켜봐 왔고, 그는 분명히 금리를 내리고 싶어 할 것"이라며 공개적으로 금리 인하를 압박하고 나섰다.

대차대조표 축소 가능한가

워시는 연준의 대차대조표(자산 규모) 축소를 강력하게 주장해 왔다. 연준의 대규모 국채 매입이 결과적으로 재정 적자 확대를 부추겼다는 논리다.

그는 지난 4월 연이은 양적완화(QE) 프로그램으로 인해 정치인들이 중앙은행이 정부의 조달 비용을 보조해 준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서, 예산을 훨씬 쉽게 집행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워시의 이런 문제의식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그는 벤 버냉키 연준 의장 시절 연준 이사를 지냈는데, 당시 금융위기 대응 과정에서 연준이 대규모로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양적완화에 나서자 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연준의 자산 규모는 2008년 약 9000억 달러에서 2022년 약 9조 달러로 10배 가까이 불어났고, 이후 축소되긴 했지만 현재도 6조6000억 달러에 달한다.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 역시 그동안 연준의 '권한 확대'와 '기관 규모 비대화'를 비판해 왔다. 베선트 장관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연준의 대규모 채권 매입을 문제 삼으며 "진정한 위기 상황이 아닌 국면에서 이뤄지는 채권 매입은 경제에 왜곡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이는 워시가 연준의 현재 정책 방향과 운영 방식에서 벗어나 체제 전환(regime change)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온 문제의식과 맥을 같이한다.

에버코어 ISI의 부회장인 크리슈나 구하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워시의 의도는 연준을 재편하고, 경제를 바라보는 사고방식과 정책 모델, 그리고 실제로 사용하는 프레임워크 자체를 바꾸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연준의 자산 규모 축소는 국채 금리 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제이슨 퍼먼 하버드대 교수는 FT에 "연준이 국채 보유량을 대폭 줄이면 장기 차입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며 "워시는 대차대조표 축소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지만, 그것이 실제로 효과를 낼지는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장기 국채 금리 상승은 주택담보대출 금리 인상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인플레이션 없는 금리인하 가능한가

금리 인하 역시 워시 지명자가 떠안은 핵심 과제다. 워시는 과거 연준 이사 재직 시절 인플레이션 위험을 중시하는 매파적 성향을 보여 왔고, 시장에서도 전통적인 매파 인사로 분류돼 왔다. 그러나 최근 그의 정확한 정책 입장은 다소 불분명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그의 인플레이션과 금리에 대한 신념은 최근 들어 명확하지 않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속적으로 기준금리 인하를 요구해 왔다. 그는 차기 연준 의장 후보와 관련해 "금리를 낮추는 데 동의하는 사람"이라며, 금리 인하 필요성에 공감하는 인물을 선택하겠다는 뜻을 시사해 왔다. 워시 지명과 관련해서도 "과거 금리 인하를 지지한 적이 있고, 앞으로도 같은 방향을 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워시 역시 인플레이션 없이 금리 인하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최근 "금리를 상당폭 낮출 수 있다"며 금리 인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한편, 인플레이션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는 연준의 대차대조표 축소가 병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또 인공지능(AI) 주도의 생산성 급증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금리를 낮출 수 있는 여지를 만들 수 있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워시의 오랜 멘토인 스탠리 드러켄밀러는 "워시는 인플레이션 없이도 성장이 가능하다고 굳게 믿고 있다"며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인한 경제 성장을 유지하면서도 추가적인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도록 균형을 맞추는 것이 그의 과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생산성 기반 금리 인하 논리는 아직 실증적으로 검증되지 않았고,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일부 전문가들은 AI 주도의 생산성 향상이 거시경제 전반으로 확산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를 전제로 한 통화정책 전환은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pride@fnnews.com 이병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