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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판인쇄술 발명가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사망 [김정한의 역사&오늘]

뉴스1

입력 2026.02.03 06:02

수정 2026.02.03 06:02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출처: Unknown autho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출처: Unknown autho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468년 2월 3일, 독일 마인츠의 한 저택에서 인류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인물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조용히 숨을 거뒀다.

향년 70세 안팎으로 추정되는 그의 생애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가 남긴 '가동 금속활자 인쇄술'이라는 유산은 중세의 어둠을 걷어내고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도화선이 됐다.

구텐베르크 이전의 서구 사회에서 책은 수도사들이 일일이 베껴 쓰는 필사본뿐이었다. 책 한 권의 가격은 집 한 채 값과 맞먹었고, 지식은 소수 권력층과 교회만이 향유하는 전유물이었다.

구텐베르크는 세공사 출신의 정교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납, 주석, 안티몬을 혼합한 합금 활자를 제작했다. 여기에 포도 압착기에서 착안한 인쇄기와 유성 잉크를 결합해 인류 최초의 '지식 대량 생산 체제'를 구축했다.

그의 대표작인 '42행 성서'는 인쇄술이 예술적 완성도와 경제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비록 동업자와의 소송으로 인쇄소를 잃고 말년에는 빈곤과 외로움 속에 살았으나, 그가 퍼뜨린 인쇄술의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인쇄술은 루터의 종교개혁을 전 유럽으로 확산시켰고, 과학 혁명과 계몽주의의 기반이 됐다.

일반 민중이 자신의 언어로 된 책을 읽기 시작하며 문해율이 급증했고, 이는 곧 시민 의식의 성장과 민주주의의 태동으로 이어졌다. 구텐베르크의 업적은 단지 책을 많이 찍어낸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정보의 민주화를 통해 인류의 지적 성장을 가속화했으며, 인쇄기를 통해 현대 정보사회의 원형을 제시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지식 기반 사회의 뿌리는 500여 년 전 마인츠의 좁은 작업실에서 활자를 하나씩 맞추던 그의 손끝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시대의 혁명가는 떠났으나, 그가 인쇄한 활자들은 여전히 살아남아 인류의 지혜를 기록하고 전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