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대 권우성 교수팀, 고효율 탄소양자점 개발
택배 상자를 열 때의 설렘, 기억하시나요? 대학 연구실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삶을 바꿀 놀라운 발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다만 '논문'이라는 두꺼운 포장지에 쌓여있을 뿐이죠. '언박싱 연구실'에서는 복잡한 수식과 이론 대신, 여러분이 알고 싶은 알맹이만 쏙 골라 담겠습니다. 자, 그럼 첫 번째 상자를 열어볼까요? 오늘 언박싱할 주인공은 바로 이 연구입니다.
■이 알맹이, 우리 삶 어디에 쓰일까?
이번에 개발한 탄소 알갱이는 우리 생활의 질을 높이는 두 가지 혁신을 가져온다. 먼저 우리가 매일 보는 TV나 스마트폰의 화면이다. 디스플레이에서 가장 구현하기 까다로운 색이 붉은색인데, 이 알갱이는 아주 적은 전력으로도 역대 최고 수준의 밝은 빨간색을 낸다. 덕분에 배터리는 오래 가고 화면은 훨씬 선명한 차세대 디스플레이를 만들 수 있다.
또 다른 쓰임새는 의료 현장이다. 이 알갱이가 내뿜는 '눈에 안 보이는 빛(근적외선)'은 우리 피부나 조직을 투명하게 통과하는 성질이 있다. 이를 활용하면 몸속 깊은 곳에 숨은 암세포에만 딱 달라붙어 빛을 내게 할 수 있다. 의사들이 암의 위치를 정확히 찾아내 수술하는 일종의 '몸속 내비게이션' 역할을 하는 셈이다. 탄소로 만들어져 인체에 안전하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요리보다 쉬운 연구 과정 "섞고 기다리면 끝"
기존에는 이런 첨단 소재를 만들려면 섭씨 수백 도의 뜨거운 가마와 엄청난 압력이 필요했다. 장비도 복잡하고 시간도 며칠씩 걸렸다. 하지만 연구팀은 마치 '시원한 음료를 섞는 것'처럼 쉬운 방법을 찾아냈다.
연구팀은 특정 탄소 재료를 액체에 넣고 방 안 온도에서 가볍게 저어주었다. 별도의 가열 장치 없이 섞기만 해도 화학 반응이 일어났다. 단 1시간이면 세계 최고 수준의 효율을 가진 탄소 알갱이가 탄생한다. 제조 과정이 획기적으로 짧아진 덕분에 앞으로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것도 훨씬 수월해졌다.
■세계를 놀라게 한 결과
연구 결과는 놀라웠다. 빨간색 빛을 내는 효율이 무려 86%에 달했다. 이는 전 세계 과학자들이 지금까지 발표한 비슷한 소재들 중 가장 밝은 수준이다. 연구팀은 1000조 분의 1초를 포착하는 특수 현미경으로 이 알갱이가 왜 이렇게 밝은지 그 비밀도 알아냈다.
연구팀은 알갱이가 하나일 때는 빨간색을 내고, 이 알갱이들이 층층이 쌓여 '단짝'을 이루면 근적외선을 낸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이렇게 입자가 겹쳐져 새로운 빛을 내는 구조를 '엑시머'라고 부른다.
이번 연구는 숙명여대와 한국전자기술연구원, KAIST가 함께 진행했으며, 삼성디스플레이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았다. 복잡한 과정을 단순하게 바꾼 이 기술은 우리 집 거실과 병원의 풍경을 바꿀 강력한 동력이 될 것이다. 오늘 언박싱한 이 작은 알갱이가 그려갈 밝은 미래를 기대해 본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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