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과학

[언박싱 연구실] 산소 없어도 OK! '물'로 암세포 터뜨리는 빛의 마법

김만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2.06 07:00

수정 2026.02.10 08:40

<2>고려대-싱가포르-성균관대 공동 연구진
산소 부족 한계 넘은 '올인원' 항암 플랫폼
세계적 권위지 'JACS' 게재
택배 상자를 열 때의 설렘, 기억하시나요? 대학 연구실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삶을 바꿀 놀라운 발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다만 '논문'이라는 두꺼운 포장지에 쌓여있을 뿐이죠. '언박싱 연구실'에서는 복잡한 수식과 이론 대신, 여러분이 알고 싶은 알맹이만 쏙 골라 담겠습니다. 자, 그럼 상자를 열어볼까요? 오늘 언박싱할 주인공은 바로 이 연구입니다.
고려대학교 김종승·우한영·곽경원 교수팀이 싱가포르 국립대, 성균관대 연구진과 함께 만든 새로운 광치료 기술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인공지능으로 만든 이미지.
고려대학교 김종승·우한영·곽경원 교수팀이 싱가포르 국립대, 성균관대 연구진과 함께 만든 새로운 광치료 기술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인공지능으로 만든 이미지.
[파이낸셜뉴스] 암세포 주변의 흔한 '물'을 쪼개 강력한 무기로 변신시켜, 산소가 희박한 곳에서도 암세포를 터뜨려버리는 광치료 기술이 개발됐다. 이 기술은 암세포가 파괴되는 순간을 형광 빛으로 생생하게 중계하듯 보여주기까지 해 치료와 관찰을 동시에 가능케 할 수 있다.



■산소 부족한 암세포의 '성벽', 물로 뚫는다

이번 성과는 고려대학교 김종승·우한영·곽경원 교수팀이 싱가포르 국립대, 성균관대 연구진과 힘을 합쳐 만들어낸 글로벌 합작품이다. 연구의 핵심은 우리가 흔히 마시는 '물'을 암 치료의 원료로 재발견했다는 점에 있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항암 치료의 풍경이 180도 바뀐다.

기존의 빛 치료법인 '광역학 치료'는 암세포를 죽이는 무기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산소가 필요했다. 문제는 암 조직이 매우 영리해서, 자신들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주변을 산소가 거의 없는 척박한 환경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를 '저산소증' 환경이라 부르는데, 기존 치료법은 이 장벽에 가로막혀 암의 겉면만 공격할 뿐 깊숙한 곳까지 도달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산소 대신 몸속 어디에나 풍부한 물을 재료로 쓴다. 덕분에 산소가 없는 험난한 암세포 중심부까지 들어가 효과적으로 타격할 수 있다.

■치료와 진단을 동시에 '실시간 항암 중계'

또한 의료 현장에서 환자 맞춤형 정밀 치료가 한층 쉬워진다. 이는 이른바 '테라노스틱스(Theranostics)' 기술 덕분이다. 테라노스틱스란 치료(Therapy)와 진단(Diagnosis)의 합성어로, 병을 고치는 동시에 그 과정을 직접 관찰하는 첨단 의료 기술을 말한다.

연구팀이 개발한 물질은 암세포가 파괴되는 과정을 실시간 형광 영상으로 중계한다. 의사는 환자의 암세포가 얼마나 잘 죽고 있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치료 강도를 조절할 수 있다. 단순히 약을 투여하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전투 상황을 모니터로 지켜보며 전략을 짜는 것과 같다.

■풍선처럼 펑! 암세포의 화려한 퇴장

이제 연구실 상자 깊숙한 곳에 담긴 과학적 원리를 파헤쳐 보자. 연구팀은 암세포의 성벽이라 할 수 있는 세포막에만 자석처럼 달라붙는 특수 분자 'NDI-COE'를 설계했다. 이 분자는 세포막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뒤, 특정 빛을 받으면 놀라운 반응을 시작한다. 빛 에너지를 이용해 주변의 물 분자를 쪼개서 '활성산소'라는 강력한 무기를 생성하는 것이다. 외부에서 산소를 억지로 넣어줄 필요 없이, 암세포가 기댄 물을 공격 무기로 바꾸는 역발상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활성산소는 암세포의 방어막을 즉각 무너뜨린다. 공격을 받은 암세포는 서서히 부풀어 오르다가 한순간에 펑 하고 터져버린다. 연구팀은 이를 '파이롭토시스(Pyroptosis)'라고 부른다. 이는 단순히 세포가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세포가 터지면서 주변 면역 세포들을 깨우는 신호를 사방에 보내는 '염증성 세포 사멸' 과정이다. 마치 풍선이 터지며 속에 든 반짝이 가루가 사방으로 퍼져 아군(면역세포)에게 위치를 알리는 것과 비슷하다.

■단 하나의 분자로 완성 '항암 올인원'

특히 이 과정에서 배출되는 작은 주머니들이 강한 형광 빛을 내뿜는다. 연구팀은 이 빛을 포착해 암세포가 무너지는 찰나의 순간을 고해상도로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실험 결과, 이 물질은 산소가 거의 없는 환경에서도 정상 환경과 똑같은 치료 효과를 보였다. 기존 치료법의 결정적 약점이던 산소 부족 문제를 완벽하게 극복한 셈이다.

이번 연구는 복잡한 여러 약물을 섞을 필요 없이, 단 하나의 분자만으로 암세포를 찾고, 공격하고, 중계까지 하는 '올인원' 플랫폼을 완성했다는 점에서 전 세계 과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연구 결과는 화학 분야 최고 권위지인 '미국화학회지(JACS)'에 실리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오늘의 언박싱은 여기까지다.
우리 몸의 70%를 차지하는 물을 암 정복의 무기로 바꾼 과학자들의 아이디어가 정말 놀랍지 않은가? 과학자들의 이 작은 발견이 머지않아 암 환자들에게 빛나는 희망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다음번에도 흥미진진한 연구 결과가 가득 담긴 논문 상자를 들고 돌아오겠다.
자, 다음 상자에는 어떤 미래가 담겨 있을까? 기대해도 좋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