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와 위와 장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또 하나의 생리학 이론이 있다.
처음 밝혀낸 것은 ‘파블로프의 개 실험’으로 잘 알려진 이반 파블로프이다. 조건 반사 이론을 발견하기 훨씬 전인 1904년, 그는 동물의 소화과정 연구에 전념하고 있었다.
소화액이 분비되는 과정을 알고 싶었던 그는 개의 식도와 위에 구멍을 뚫었다. 이 방법으로 음식이 위에 도달하지 않고 몸 밖으로 나오게 하면서 동시에 위에 뚫은 구멍을 통해 분비되는 위액을 채취할 수 있었다. 놀랍게도 음식이 위에 도달하지 않았는데도 소화액은 그대로 분비되었다. 음식을 씹는 순간 뇌에서 위로 소화액을 분비하라고 명령을 내리는 채널이 있다는 것이 처음으로 증명된 것이다.
1980년대에 뇌 영상 촬영기술이 발전하면서 이 축의 신호전달이 뇌에서 위와 장으로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쌍방향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소화관이 팽창하면 뇌가 반응하며 주요 신경 경로가 활성화되는 것이 영상을 통해 확인되었다. 특히 과민대장증후군 환자의 경우는 이러한 반응이 더 격렬하게 일어나는 것이 관찰되었다.
2004년 일본에서 ‘장-뇌 축’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이번에는 거꾸로 장의 미생물군이 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보았다.
장에 세균이 전혀 없는 무균 쥐와 특정 균만 제거한 쥐, 그리고 단일 균만 가진 쥐에게 억제스트레스(restraint stress·쥐를 금망으로 고정해서 위점막에 얕은 궤양을 유발시키는 실험법)를 가하자 무균 쥐에게서 부신피질자극호르몬과 부신피질호르몬의 수치가 가장 높게 치솟았다.
또한 무균 쥐는 특정균만 제거한 쥐에 비해 피질과 해마에서 분비되는 ‘뇌 유래 신경영양인자’(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뇌신경세포의 발생과 성장, 기능 유지에 관여하는 아미노산 119개로 만들어진 단백질)의 수치가 현저히 낮았다.
이것은 장내 세균이 균형 있게 발달하지 않으면 정신적인 문제는 물론 뇌 발달과 기능 유지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장과 뇌가 서로 신호를 보내며 소통하는 데 미생물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미생물이 면역세포를 자극하여 분비하게 하는 사이토카인, 미생물이 다당류를 분해하여 만들어내는 지방산, 그리고 위장벽의 신경세포가 분비하는 40여 가지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 역시 뇌에 전달되는 신호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세로토닌은 앞서 과민대장증후군과 간헐적 폭발장애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울증을 비롯한 여러 신경질환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장-뇌 축의 미생물군과 세로토닌의 불균형이 알츠하이머, 자폐 스펙트럼 장애, 다발성 경화증, 파킨슨병과도 관련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영어 표현 중에 ‘have the gut to do something’이라는 표현이 있다. 직역하면 “뭔가를 해낼 위와 장이 있다”는 뜻인데 위험한 일을 해낼 용기나 배짱이 있다는 뜻으로 쓰인다. 또한 본능적 직감을 느낄 때에도 ‘have a gut feeling’(위와 장에 느낌이 있다)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사람들은 복부에도 뇌가 있다는 것을 아주 오래전부터 몸으로 느껴온 것인지도 모른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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