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의 유예기간 동안 서울·경기 소각로 못 지어
‘결단 없는 시간’, 원정 소각이 '현실'
광역 책임 설계 필요
‘결단 없는 시간’, 원정 소각이 '현실'
광역 책임 설계 필요
[파이낸셜뉴스] 지난 1월 1일을 기점으로 시행된 수도권 생활폐기물 직매립 금지 정책이 본격적인 지방 정부 간 갈등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정책 시행 이후 우려했던 쓰레기 대란은 피했지만 수도권 쓰레기가 대거 비수도권으로 이동하면서, 쓰레기 처리를 둘러싼 책임과 비용, 환경 부담을 놓고 지방정부 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단순히 '쓰레기가 어디로 가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5년간의 유예기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안이하게 대응한 환경당국, 서울, 경기의 책임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유예기간 5년간 소각장 1개도 짓지 못한 서울·경기
7일 기후에너지환경부 등에 따르면 2026년 1월 1일부터 쓰레기 직매립을 금지하는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은 2021년에 이뤄지며, 약 5년의 유예기간을 부여했다. 정책의 전제는 명확했다.2021년 제도 확정 이후, 2022~2023년 동안 서울·경기는 소각장 신설과 증설 계획을 잇따라 내놨지만 실제 착공으로 이어진 사례는 없었다. 환경부와 국회, 전문가들은 “시설 확충 없이는 외부 위탁이 늘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지만, 정책 방향은 바뀌지 않았다.
2024년 들어서는 민간 소각장 위탁 물량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수도권 내부 처리 여력이 늘지 않자, 충청·강원권 등 비수도권 민간 소각장에 대한 의존이 구조화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2025년 시행을 앞둔 시점까지도 신규 공공 소각장은 완공되지 못했다.
시행을 불과 몇 달 앞두고 일부 지자체에서 유예 요구가 제기됐지만, 정부는 시행 유지 방침을 확정했다. 결국 2026년 1월, 시설 준비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직매립 금지가 전면 시행됐다.
이번 갈등의 책임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대목이 서울특별시와 경기도의 대응이다. 두 지역은 수도권 생활폐기물의 대부분을 배출하는 핵심 주체다. 유예기간 동안 이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가 현재 상황을 좌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의 경우 신규 광역 소각장 건설은 여러 차례 논의됐지만, 실제 착공으로 이어진 사례는 없었다. 기존 소각장은 대부분 1990년대에 조성돼 설비 노후화와 처리 한계가 동시에 지적돼 왔다. 자원회수시설 현대화와 증설 계획도 반복적으로 발표됐지만, 입지 선정 단계에서 주민 반발에 부딪혀 번번이 멈춰 섰다. 결국 서울은 유예기간 동안 “시설을 늘리겠다”는 계획은 내놓았지만, “어디에 짓겠다”는 결정은 끝내 내리지 못했다.
경기도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기도는 시·군별로 폐기물 처리 책임이 분산된 구조를 갖고 있다. 이 구조 속에서 광역 차원의 통합 전략은 사실상 부재했다. 일부 기초지자체는 직매립 금지를 중앙정부 정책으로 인식하며 소각시설 확충 논의에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결과적으로 수도권 전체 차원에서 처리 역량을 체계적으로 늘리는 시도는 이뤄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정책 실패라기보다 정치적 회피의 결과”라고 진단한다. 소각장은 대표적인 기피시설이다. 단체장 입장에서는 입지 결정을 내리는 순간 주민 반발과 정치적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유예기간 동안 이러한 부담을 떠안기보다는 결정을 미루는 것이 정치적으로는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선택의 비용은 결국 제도 시행 시점에 한꺼번에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쓰레기 대란' 피한 대신 '원정 소각'
2026년 기준으로 수도권(서울·경기·인천) 생활폐기물 중 약 47만7534t이 민간 소각장에 위탁 처리됐으며 이 가운데 약 23.1% 수준인 11만370t이 비수도권 민간 소각장에서 처리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동하는 생활폐기물의 상당수가 충청권과 강원권 등 비수도권 민간 소각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지역까지 쓰레기를 보내는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겉으로 보면 제도 취지를 충실히 따른 것처럼 보이지만, 환경정책의 기본 원칙 중 하나인 '발생지 처리 원칙'을 우회한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수도권은 규제를 피해 외부 위탁이라는 선택지를 택했고, 그 부담은 비수도권으로 이동했다.
수도권 지자체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 당장 쓰레기 처리가 멈출 경우 시민 생활에 직접적인 차질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환경정책이 환경 불평등을 낳은 사례'로 평가한다. 수도권은 인구와 소비가 집중된 지역이지만, 처리시설 확충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미루는 동안 그 부담은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고 재정 여력이 낮은 지역으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원정 소각’은 곧바로 비수도권 지역의 반발로 이어지고 있다. 충청권 일부 지자체와 주민들은 “수도권에서 발생한 쓰레기를 왜 우리가 처리해야 하느냐”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민간 소각장이 밀집한 지역에서는 트럭 이동 증가, 악취, 대기오염 우려가 겹치며 주민 반감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번 정책 시행에서 중앙정부의 책임도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각장은 전형적인 기피시설로, 입지 선정 과정에서 주민 반발을 피하기 어렵다. 중앙정부 역시 강제력 있는 조정이나 충분한 보상 체계를 마련하지 못했다. 결국 제도는 중앙에서 설계됐지만, 정치적 부담은 지방정부가 떠안는 구조였다.
이 때문에 유예기간 동안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되는 역설이 발생했다. 정책적으로는 시설 확충이 필요했지만, 정치적으로는 결정을 미룬 결과가 지금의 갈등이라는 분석이다.
남은 과제는 ‘광역 책임’ 재설계
직매립 금지 시행 이후 드러난 혼선은 단순히 소각장 숫자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수도권이라는 하나의 생활권에서 발생한 폐기물을 ‘각 지자체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둔 책임 구조가 한계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제도는 광역으로 시행됐지만, 준비와 부담은 기초·광역 단위로 흩어져 있었다. 그 결과, 시설이 없는 곳은 외부로 보내고, 받아주는 곳은 민원을 떠안는 방식으로 갈등이 전개되고 있다.
현재 구조에서는 서울·경기·인천이 각자 계획을 세우고, 문제가 생기면 협약으로 '잘해보자'는 방식이 반복된다. 실제로 수도권 3개 시·도와 정부가 직매립 금지 이행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지만, 협약은 실행력을 담보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광역계획을 ‘권고’가 아니라 ‘구속력 있는 준법정 계획’으로 격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이에 더해 불가피하게 외부 위탁이 이뤄질 경우에도 비용과 환경 부담을 투명하게 산정하고, 수용 지역에 대한 실질적 보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처리비를 지불하는 수준을 넘어, 지역 환경 개선과 연계한 보상 모델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장기적으로 쓰레기를 줄이고 재활용을 늘리는 과정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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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yb@fnnews.com 이유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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