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정신력이 썩었어" vs "새벽 쇼트트랙은 못 참죠"... 올림픽 '오피스 좀비' 전쟁 [김부장 vs 이사원]

전상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2.07 09:00

수정 2026.02.07 09:53

주요 경기 새벽 2~4시에 몰려... 직장인들 '수면 부족' 호소
김 부장 "2002년 땐 밤새고도 일했다" vs 이 사원 "업무 시간 폰 중계가 효율적"
직장인 58% "올림픽 기간 업무 집중 안 돼"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만든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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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으어... 부장님, 죄송합니다. 어제 쇼트트랙 결승이 새벽 3시라..."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이 개막한 첫 주말. 대한민국 사무실 곳곳에 '좀비 바이러스'가 퍼졌다. 이탈리아 현지와 한국의 8시간 시차 탓에 주요 메달 결정전이 한국 시각으로 새벽 2시에서 5시 사이에 집중된 탓이다.

졸린 눈을 비비며 커피를 수혈하는 '오피스 좀비' 신입사원과, 이를 보며 "나 때는 말이야"를 시전하는 부장님의 '정신력 전쟁'이 시작됐다.

◇ "하품이 나옵니까?" 김 부장의 '라떼 정신력'

오전 10시 회의 시간. 김 부장(48·팀장)은 꾸벅꾸벅 조는 이 사원(27)을 보며 혀를 찼다.

"이 사원, 정신 안 차리나? 올림픽 보느라 밤샌 건 개인 사정이고, 회사에선 프로답게 행동해야지."

김 부장에게 스포츠와 업무는 별개가 아니다. 그는 2002년 월드컵 때를 회상했다. "그때는 시청 앞 광장에서 새벽까지 응원하고, 사우나에서 잠깐 눈 붙이고 출근해서도 날아다녔어. 그게 정신력이야. 요즘 친구들은 체력이 약한 건지, 의지가 없는 건지 모르겠어."

김 부장은 업무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하이라이트 영상을 몰래 보는 직원들의 태도도 못마땅하다. "일할 땐 일에 집중해야지, 멀티태스킹이랍시고 폰 들여다보는 게 말이 되나? 그럴 거면 연차를 쓰든가."
◇ "새벽 3시 경기를 어떻게 안 봐요?" 이 사원의 '합리적 딴짓'

반면 이 사원은 억울하다. 4년에 한 번 오는 올림픽, 그것도 한국의 주력 종목인 쇼트트랙과 피겨 스케이팅을 '본방 사수'하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이 사원은 "부장님 말씀처럼 밤새고 출근하면 오히려 업무 효율만 떨어진다"며 "차라리 업무 중간중간 짬을 내서 하이라이트를 보거나, 유연근무제를 활용해 늦게 출근하게 해주는 게 낫다"고 항변한다. 그는 "회식 때는 '팀워크' 외치시더니, 온 국민이 응원하는 올림픽 때는 왜 이렇게 야박하신지 모르겠다"며 입을 삐죽였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만든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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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계로 본 현실: 직장인 10명 중 6명 "일 손에 안 잡혀"

이러한 갈등은 단순한 느낌이 아니다. 실제 통계가 이를 증명한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과거 직장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8.4%가 '올림픽 등 대형 스포츠 기간에 업무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답했다.

더 흥미로운 건 '업무 중 몰래 중계방송을 시청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도 47.2%에 달했다는 점이다.

사실상 직장인 2명 중 1명은 김 부장 몰래 '이 사원'처럼 행동하고 있는 셈이다.

기업 입장에서 손실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미국의 챌린저 그레이 앤드 크리스마스(CGC)사는 월드컵 기간 동안 미국 기업들이 입는 생산성 손실액이 수십억 달러(수조 원)에 달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김 부장의 잔소리가 단순한 '꼰대질'이 아니라 회사의 '리스크 관리' 차원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는 대목이다.


◇ 전문가 "스포츠 소비 방식의 차이... 유연함 필요해"

전문가들은 이를 세대 간 가치관의 차이로 분석한다.

전문가들은 "기성세대에게 올림픽은 '국위선양'이라는 집단적 목표였기에 피로를 정신력으로 극복하는 것이 미덕이었으나, MZ세대에게는 개인의 즐거움을 위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라고 진단했다.


이어 "무조건적인 통제보다는, 중요한 경기 다음 날은 출근 시간을 조정해 주는 등 유연한 조직 문화를 도입하는 것이 '오피스 좀비'를 막고 생산성을 유지하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밤잠 설친 당신, 지금 상사의 눈을 피해 스마트폰을 켜고 있진 않은가? 혹은 조는 후배를 보며 "정신 상태가 글러 먹었다"고 욕하고 있진 않은가.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