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속에 한국, 캐나다, 독일 같은 중견국(middle power)들이 생존을 위한 협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들은 무역부터 안보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세계 질서에서 두 강대국 사이에 끼어 “새우 등 터지는 희생양(roadkill)”이 되지 않기 위해 서둘러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식탁에 못 앉으면 메뉴가 된다”
특히 ‘다보스포럼’이라고도 부르는 세계경제포럼(WEF)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상징적인 인물로 부상하고 있다.
카니 총리는 “중견국들은 함께 행동해야 한다”면서 “우리가 식탁에 앉지 못하면 (강대국들의) 메뉴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캐나다, 유럽 대부분 국가, 일본, 한국, 호주, 인도, 브라질, 튀르키예 등이 뭉쳐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중 갈등에서 중견국들이 독자 목소리를 내지 못하면 결국 강대국들의 이익을 위해 희생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배경이다.
이런 위기감의 중심에는 미국이 있다.
미국은 스스로 구축했던 2차 대전 이후의 세계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자국 중심의 공급망을 재편하면서 중국은 물론이고, 동맹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있다. 관세 전쟁은 이런 공급망 재편의 핵심이다. 관세로 무역장벽을 쳐 미국 안에 새로운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의도다.
트럼프는 또 자국 안보를 지킨다며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인 덴마크령 그린란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자국의 경제적, 군사적 이익 앞에서는 적성국이건, 동맹이건 다를 것 없이 모두 희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 트럼프 행정부의 일관된 원칙이다.
그렇다고 중국이 대안이 되지는 못한다.
중국은 스스로 새로운 대안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국제 규칙을 무시하는 독재 국가라는 한계로 인해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자립과 협력, K방산
중견국들은 연대와 협력은 물론이고, 자립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공급망, 에너지, 기술 분야에서 자립 가능한 분야는 발전시키고, 연대가 필요한 분야는 다른 나라와 협력에 나서고 있다.
프랑스는 독자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고, 캐나다는 에너지 자급을 확대하고 있다. 스스로 설 수 있으면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다. 과거 비교우위론에 입각해 잘하는 것에 집중하고, 다른 분야는 외국에 의존하면 된다는 생각에 큰 변화가 생겼다.
동시에 미국에 대한 의존을 줄이기 위해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최근 남미 메르코수르, 인도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다.
군사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이 분야는 K방산이 그 중심에 있다.
폴란드가 한국산 전차와 자주포 등 무기를 대량 구매했고, 노르웨이는 한국산 K239 천무 다연장로켓을 사들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이 발을 빼는 가운데 러시아의 위협에 노출된 유럽 각국이 한국 무기에 안보를 맡기기 시작했다.
또 영국과 이탈리아, 일본은 차세대 전투기를 공동 개발하고 있고, 호주와 영국은 원자력 잠수함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한계
그러나 이런 협력은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다.
우선 미국의 핵우산을 대체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이 지적했듯 유럽은 여전히 미국의 핵우산과 항공모함 없이는 스스로를 방어하기 어렵다.
한국도 재래식 무기에서는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 북한의 핵 위협 앞에서는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무력하다.
가치관이 충돌한다는 점도 중견국의 대규모 연합을 기대하기 어려운 점이다.
민주주의 국가와 중동, 아랍 등의 권위주의적 중견국이 진정한 협력을 추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국제 질서가 근본적인 변화에 직면한 가운데 뚜렷한 한계 속에서도 한국을 비롯한 중견국들의 각자도생과 협력이 탄력을 받고 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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