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인대 파열 숨기고 강행군 '충격의 결말'
인공관절 수술·은퇴 번복했는데… 설원 위 처절한 절규
아버지도 차마 못 보고 오열, 코르티나담페초의 비극
인공관절 수술·은퇴 번복했는데… 설원 위 처절한 절규
아버지도 차마 못 보고 오열, 코르티나담페초의 비극
[파이낸셜뉴스] 기적은 없었다. 남은 것은 설원을 가르는 비명과 닥터 헬기의 프로펠러 소리뿐이었다.
'스키 여제' 린지 본(41·미국)의 4번째 올림픽이자, 생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도전은 불과 13초 만에 끔찍한 악몽으로 끝났다. 전방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치명상을 안고 출발대에 섰던 그의 용기는 차가운 눈밭 위에서 산산조각 났다.
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코르티나담페초 토파네 알파인스키 센터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알파인 스키 여자 활강 경기. 전 세계의 이목이 13번째 주자 린지 본에게 쏠렸다.
그녀가 누구인가. 2010 밴쿠버 금메달리스트이자, 무려 82번의 월드컵 우승을 거머쥔 전설이다. 2019년 은퇴 후 무릎에 '인공 관절'을 심고도 40세의 나이에 현역으로 복귀한 '인인간 승리'의 아이콘이었다.
하지만 신은 가혹했다. 출발 직전,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본은 힘차게 스타트를 끊었지만, 운명은 13초를 허락하지 않았다.
첫 번째 코너를 지나 두 번째 곡선 주로. 시속 100km가 넘는 속도로 질주하던 본의 오른팔이 기문에 충돌했다. 순식간에 중심을 잃은 신체는 제어할 수 없는 속도로 설원 위를 데굴데굴 구르며 튕겨 나갔다.
"아악!"
현장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헬멧 너머로 터져 나온 본의 비명은 관중석까지 생생하게 전달됐다. 고통 속에 고개를 들려 했지만, 이미 망가진 무릎은 말을 듣지 않았다. 의료진이 급히 달려들었지만, 본은 일어설 수 없었다.
현장 전광판으로 딸의 처참한 사고 장면을 목격한 아버지 앨런 킬도우는 얼굴을 감싸 쥐며 고개를 떨궜다. 관중석엔 탄식조차 나오지 않는 무거운 정적만이 감돌았다.
사실 본은 이곳에 서지 말았어야 했다. 지난달 스위스 월드컵에서 이미 왼쪽 무릎 전방 십자인대 파열 진단을 받았다. 의사라면 누구나 말렸을 상태. 하지만 본은 "끝까지 간다"며 출전을 강행했다. 이번 대회가 열리는 토파네 센터는 그녀가 12번이나 우승컵을 들어 올린 '약속의 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리한 투혼은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경기는 25분간 중단됐고, 본은 꼼짝없이 들것에 고정된 채 헬기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됐다. 2006년 토리노, 2010년 밴쿠버, 그리고 소치 불참까지. 수많은 부상을 이겨내고 돌아온 '오뚝이'였지만, 41세의 몸으로 감당하기엔 올림픽의 벽은 너무 높았고, 부상의 늪은 너무 깊었다.
돌아온 여왕의 라스트 댄스. 그 화려한 피날레를 꿈꿨던 팬들에게 2026년의 코르티나담페초는 린지 본이 실려 간 '헬기 소리'로 영원히 기억될 슬픈 역사가 되고 말았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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