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차기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후보로 지명한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가 인공지능(AI) 생산성 붐을 근거로 기준금리 인하 여력이 생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미국 경제학계의 평가는 냉담한 것으로 나타났다.
8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시카고대 클라크 금융시장센터와 함께 실시한 긴급 설문조사에 따르면, 다수의 경제학자들은 앞으로 2년간 AI가 물가와 금리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워시 후보가 내세운 ‘AI발 생산성 혁명’이 당장 통화정책의 방향을 바꿀 만큼 강력하지는 않다는 판단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말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후임으로 워시 전 이사를 공식 지명했다. 워시는 그동안 AI가 “과거·현재·미래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생산성 향상 물결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는 생산성 급등이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면서, 현재 3.5~3.75% 수준인 기준금리를 물가 자극 없이 인하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반복적으로 요구해 온 ‘공격적 금리 인하’ 논리와도 맞닿아 있다.
그러나 ‘FT-시카고대’ 설문에 참여한 45명의 경제학자 가운데 약 60%는 앞으로 2년간 AI가 물가와 차입 비용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들은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와 중립금리가 2년 동안 0.2%p 미만 하락하는 데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존스홉킨스대 경제학자이자 전 연준 관료인 조너선 라이트는 “AI 붐을 디스인플레이션 충격으로 보지 않는다”며 “그렇다고 단기적으로 강한 인플레이션 요인도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응답자의 약 3분의 1은 AI 붐이 오히려 중립금리를 소폭 끌어올릴 가능성도 있다고 답했다. 생산성 향상보다 AI 관련 투자와 수요 증가가 더 빠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연준 내부에서도 신중론이 나온다. 일부 연준 인사들은 AI가 장기적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는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수요와 물가 압력을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필립 제퍼슨 연준 통화정책 담당 부의장은 최근 브루킹스연구소 행사에서 “AI가 궁극적으로 생산 능력을 크게 확대하더라도, 데이터센터 건설 등 AI 관련 활동으로 인한 즉각적인 수요 증가는 통화정책 대응이 없다면 일시적으로 인플레이션을 높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워시의 또 다른 쟁점은 연준 대차대조표다. 그는 연준의 자산 규모를 “비대하다”고 표현하며 대폭 축소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연준은 최근 자산 규모를 약 9조달러에서 6조6000억달러로 줄여온 3년간의 양적긴축(QT)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워시가 의장에 오를 경우, 대차대조표 축소 압박이 다시 거세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투자자들은 대차대조표를 공격적으로 줄일 경우 장기 금리가 상승하고, 모기지 금리 인상으로 주택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는 주거 비용에 민감한 백악관 입장에서는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럼에도 설문 응답자의 4분의 3 이상은 “2년 후 연준 대차대조표는 6조달러 미만이 돼야 한다”고 답했다. 일부는 금융위기 이전 수준인 1조달러 미만에 근접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하버드대의 캐런 다이언 교수는 “유동성이 충분하고 단기 자금시장이 안정적이라는 조건이 충족된다면, 대차대조표를 추가로 축소하는 것도 불합리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터데임대의 제인 링게르트 교수는 “불확실성이 너무 많다”며 “지금으로서는 무엇이든 단정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존스홉킨스대의 로버트 바베라는 “AI 붐이 성장과 재정 개선, 중립금리 상승, 연준 대차대조표의 안정적 축소로 이어질 수도 있다”며 “반대로 금융시장 불안, 경기 침체, 재정 적자 급증, 제로금리 복귀, 달러 약세, 그리고 또 다른 대규모 완화로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pride@fnnews.com 이병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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