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모르면 문맹이라 하듯, 디지털을 다루지 못하는 '디지털 문맹'은 오늘날 일상을 살아가기 어렵게 만든다.
다만 기술 발전의 혜택이 모두에게 고르게 돌아가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교육부가 실시한 '성인 디지털문해능력 조사'에 따르면 성인 4명 중 1명은 지도 앱 길찾기, 키오스크 주문, 은행 앱 송금 등 기본적인 디지털 활용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은 남성보다, 연령이 높을수록, 도시보다 농산어촌에서, 학력과 소득이 낮을수록 디지털 문해력이 떨어지는 경향도 확인됐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국가 차원의 기기 보급과 활용 교육이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디지털 문해력의 의미 자체가 AI 시대를 맞아 빠르게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검색 엔진으로 정보를 '찾는' 능력이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AI가 만들어낸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의심하고 걸러내는' 판단력이 더 중요해졌다. 그런데 한국은 AI 활용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동시에 AI가 대량으로 찍어낸 저품질 콘텐츠, 이른바 'AI 슬롭'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국가라는 불명예도 안고 있다. 한국의 AI 슬롭 채널 누적 조회수는 84억회를 넘어 2위 파키스탄의 1.6배, 3위 미국의 2.5배에 달한다. 압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더 우려되는 점은 이런 디지털 문해력 격차가 현실의 금전적·건강상의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AI로 만든 가짜 의사와 가짜 전문가를 전면에 내세워 소비자를 속이고 약 84억원 상당의 식품을 불법 판매한 사례를 적발했다. 흰 가운과 전문 용어로 그럴듯하게 꾸며진 AI 영상이 디지털 문해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고령층을 쉽게 현혹한 것이다.
이제 디지털 문해력 제고는 개인의 적응력에만 맡길 수 없는 사회적 과제가 됐다. 개인 차원에서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려는 의지와 비판적 사고를 키워야 한다. 동시에 국가 차원에서는 취약계층을 위한 기기 접근성 지원과 맞춤형 교육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AI 시대에 필요한 판단력과 검증 능력을 기르는 체계적 프로그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여기에 플랫폼의 허위 정보 확산 책임을 강화하는 제도적 장치까지 병행될 때, 기술 발전의 혜택은 넓히고 피해는 줄일 수 있다. 급격한 기술 변화 앞에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을 다시 떠올릴 때다.
문애리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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