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視角] 아틀라스 그 후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2.10 18:30

수정 2026.02.10 19:15

최진숙 논설위원
최진숙 논설위원
19세기 영국 중부 노팅엄 지역에서 발발한 러다이트 운동을 무지몽매한 근로자의 기계파괴 난동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눈앞의 기계만 제거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긴 노동자들의 충동적 일탈로 보는 시각은 100년 넘게 지속됐다. 하지만 주동자들의 당시 행적을 보면 그렇게만 볼 수 없다는 현대 역사학자들의 재평가도 만만치 않다.

1811년 3월의 어느 날 낮 노팅엄 시장 광장이 시발점이다. 수백명 편직 노동자들이 집결했고 일자리와 더 나은 임금에 대한 요구문 낭독이 이어졌다.

시위대는 해질녘 노팅엄 북쪽 아놀드 마을로 천천히 이동해 새벽까지 60여대 양말 직조기를 파괴한다. 주민들은 파괴자들을 돕거나 응원했다는 증언이 훗날 재판에서 나왔다. 주동자들은 자존심 강한 고숙련 노동자들이었다. 비숙련 신식 기계의 저품질과 임금 덤핑을 문제삼아 노조권이 없던 시대에 협상의 수단으로 기계에 손상을 줬다는 평가는 이런 맥락이다.

적당히 협상으로 끝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돌이킬 수 없는 거대한 운동으로 번진 것은 영국 내각의 초유의 강경 진압 탓도 분명 있다. 기계 파괴는 사형 가능 중범죄로 지정됐다. 한창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와 싸우던 영국군이 돌연 자국의 공장 지대로 향한다. 전국의 산업 현장은 사실상 준계엄 상태가 된다. 시위대 상당수는 사형, 유배형에 처해진다. 이에 맞선 방직공들의 게릴라 저항도 격렬했다. 진정되기까지 장장 6년이나 걸렸다. 결과적으로 러다이트 운동은 기계·기술을 저지하기는커녕 진입 속도를 더 재촉했다. 그 대신 노조 결성과 파업의 씨앗도 이때 뿌려졌다.

20세기 공장의 자동화도 극적인 순간의 연속이다. 미국 제조업의 상징 자동차회사 GM이 그 중심에 있다. 세계 첫 산업용 로봇 유니메이트가 투입된 곳이 바로 GM 뉴저지 공장이었다. 1961년이다. 2t 정도 무게의 로봇 팔이 150㎏의 금속 부품을 번쩍 들어올릴 때 현장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로봇이 설비나 특수장비가 아니라 노동자, 그것도 밤과 낮·피로·파업과 무관한 근로자라는 생각을 다들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즉각적인 대규모 저항은 없었다. 산업 성장기 일자리는 많았고 무엇보다 초기 로봇은 비싸고 고장이 잦았으며 범용성은 낮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GM의 로봇은 현장을 공포로 몰아갔다. 펄펄 끓는 온도의 금속을 집어 불꽃으로 용접하는 일을 도맡기 시작한다. GM의 용접라인이 전면 자동화된 것이 1970년대 중반이다. 고속 자동화 라인에 반발해 GM노조는 격렬한 파업을 벌인다. 강성 전미자동차노조(UAW)와 함께 임금, 복지 투쟁에 집중한 것도 자동화 물결과 관련이 있다. 기술 최선두에 있었지만 제품 전략에 실기했고 무엇보다 노조 관리에 실패하면서 GM은 몰락의 길을 갔다.

인공지능(AI) 혁명기 기계와 노동자의 대결은 이전과 다른 국면이 될 것이다. 지금의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은 19세기 방적기, 20세기 산업용 로봇과 차원이 다른 존재다. 육체적 몸놀림뿐 아니라 즉각적인 판단과 상호 작용이 가능한 능력자가 될 수 있다. 현대차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는 볼 때마다 진화한다. 최근엔 체조선수처럼 옆돌기와 뛰어 뒤돌기를 연달아 성공시켰다. "합의 없인 한 대도 들여놓을 수 없다"는 현대차 노조의 선언은 복잡한 심경에서 나왔을 것이다. 까다로운 현행 노동 법규대로라면 아틀라스 투입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이럴 경우 아틀라스가 일할 수 있는 나라로 공장이 옮겨질 것이다.

기술을 이긴 노조는 없다. 하지만 기술만으로 시장이 지켜지는 것도 아니다. AI로 인한 일자리 공포는 고도의 정책으로 풀어야 한다.
AI 신산업으로 이제껏 구경한 적 없는 신생 일자리가 쏟아지도록 독려할 것. 그러기 위해선 신산업 걸림돌을 획기적으로 제거하는 일이 먼저다. AI시대에 걸맞은 직무 재교육과 인력 재배치, 인재 육성은 생색만으로 안 된다.
아틀라스 그 후를 지금부터 챙겨야 한다.

jins@fnnews.com 최진숙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