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는 경영진을 견제하고 회사의 장기 가치를 지키라는 취지로 만들어진 선진경영 조직이다. 그런데 현재 KT 이사회는 신임 최고경영자(CEO) 후보를 선임해 놓고도, 퇴임을 앞둔 CEO의 협력을 조율해 내지 못해 KT의 경영 시계를 멈춰 세웠다.
KT 이사회의 문제는 권한과 책임의 불균형 아닐까 싶다. KT 이사회는 CEO 선임과 해임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쥐고 있다. 회사의 미래를 좌우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위치다.
그런데 그 결정의 결과에 대해 이사회가 책임지는 구조는 보이지 않는다. CEO 선임이 혼란으로 끝나도, 경영 공백이 길어져도, 책임은 늘 '개인'이나 '외부 변수'로 흩어진다. 이사회는 결정의 정점에 있으면서도 결과의 책임 무게에서는 한발 비켜 서 있다.
이런 구조는 반복되는 CEO 선임 파동 속에서 더욱 분명해졌다. 이사회는 절차를 강조하지만 시장과 주주들은 그 절차가 왜 매번 논란의 출발점이 되는지 묻고 있다. 투명하다고 했지만 이해하기 어렵고, 독립적이라고 했지만 설득력이 부족하다. 이사회가 스스로를 설명하지 않는 사이 불신이 쌓였다.
전문성에 대한 의문도 있다. KT는 통신을 넘어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디지털 인프라를 책임지는 기업이다. 산업의 변화 속도는 빠르고, 의사결정의 난도는 높다. 그런데도 이사회가 이런 변화의 방향을 주도적으로 읽고 있는지, CEO를 제대로 평가할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 객관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KT 이사회가 스스로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보이지 않는 권력'으로 몸집을 키운 것 아닌가 따져봤으면 한다. 경영의 견제 기구인 이사회가 정작 자신은 견제받지 않는 세력으로 자라나 지원도 견제도 못하는 돌연변이가 된 것 아닌가 싶다. 이사회는 KT 경영을 판단하는 역할만 하려는 듯 보인다. 잘못된 결정에 대한 성찰이나 설명은 없고, 책임을 공유하겠다는 메시지도 찾기 어렵다.
이쯤 되면 KT 이사회 쇄신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과제로 보인다. 우선 이사회는 스스로를 공개적으로 평가받는 구조를 받아들여야 한다. CEO만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이사회 역시 성과와 판단에 대해 설명하고 검증받아야 한다. 또 전문성을 기준으로 한 이사 구성 원칙을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산업에 대한 이해 없이 독립성만 강조하는 구조는 한계가 분명하다. 이사회 결정의 결과에 대해 집단적 책임을 지는 장치도 필요하다.
권한이 크다면 책임도 그만큼 무거워야 한다.
소유분산 기업에서 이사회는 최후의 안전장치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지속되고 있는 KT 이사회의 부적절한 결정과 혼란을 보면서, 그 안전장치가 통제받지 않는 권력이 될 때 기업은 더 큰 불안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확히 확인하게 된다.
KT가 다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이사회의 기능과 구조를 먼저 바꿨으면 한다. CEO 교체 시기마다, 중요한 투자와 신사업 결정 과정에서 불안과 혼란이 반복되는 KT 거버넌스 혁신의 출발점에 이사회 쇄신이 있는 것 아닌지 신중히 짚어봤으면 한다.
cafe9@fnnews.com 이구순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