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미 연방항공청(FAA)이 텍사스주 엘패소 상공 영공을 전격 폐쇄했다가 수시간 만에 재개하는 이례적 조치를 단행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멕시코 마약 카르텔 드론의 영공 침입"을 이유로 들었지만, 항공업계와 의회 일각에서는 군의 대드론(anti-drone) 기술 시험을 둘러싼 FAA와 국방부 간 갈등이 배경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번 사태는 지난 1년여간 이어져 온 연방 교통 규제 당국과 국방부 간 충돌의 연장선이라는 평가다.
"카르텔 드론 침입" vs "군 레이저 시험 갈등"
FAA는 10일(현지시간) 엘패소 상공 영공을 폐쇄하며 엘패소 국제공항을 오가는 항공편 운항을 최대 10일간 중단하고, 해당 공역을 통과하는 응급의료 이송 항공편까지 제한하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수시간 뒤 조치를 해제하며 "상업 항공에 대한 위협은 없다.
션 더피 교통부 장관은 소셜미디어 X를 통해 "카르텔 드론 침입과 관련된 조치"라며 "국방부와 협력해 신속히 대응했고 위협은 제거됐다"고 설명했다. 행정부는 "멕시코 카르텔 드론이 미 영공을 침범했고 전쟁부(국방부)가 이를 무력화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복수의 관계자들은 다른 설명을 내놓았다. 뉴욕타임스(NYT), 폴리티코 등 미국 언론 등에 따르면 국방부가 멕시코와 인접한 공역에서 드론과 고에너지 레이저를 포함한 대드론 기술을 시험하면서도 FAA에 충분한 안전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레이저는 이착륙 중인 조종사의 시야를 손상시킬 수 있어 항공 안전에 심각한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한 관계자는 폴리티코에 "국방부가 대드론 시스템 배치 사실은 통보했지만 FAA가 안전성을 확신할 만큼 구체적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며 "이로 인해 FAA가 예방적 차원에서 영공을 제한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레이저 시험 대상이 자국 드론인지 멕시코 드론인지조차 명확히 공유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인근 포트 블리스에서는 미 육군이 대드론 작전을 운용하고 있다.
원래 FAA는 오는 20일 국방부와 대드론 레이저가 항공 운항에 미칠 영향과 완화 조치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었지만, 국방부가 이보다 먼저 엘패소 인근에서 레이저를 사용하려고 하는 바람에 비행 중단을 결정했다고 한다.
반복되는 FAA-국방부 충돌…의회까지 번진 안전 논란
이번 사건은 FAA와 국방부 간 잇따른 마찰의 또 다른 사례다. 양 기관은 워싱턴DC 인근 혼잡 공역에서 군 헬기 운항 안전 기준을 두고도 갈등을 빚어왔다. 지난해 포토맥강 상공에서 발생한 여객기와 육군 블랙호크 헬기 충돌 사고(67명 사망) 이후 민간·군 항공기 간 근접 비행 사례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더욱 거세졌다.
더피 장관은 사고 수개월 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이끄는 국방부가 펜타곤을 오가는 헬기 운항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았다고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갈등은 의회로도 번졌다. 지난해 12월 통과된 국방수권법(NDAA)에는 군이 워싱턴에서 훈련 비행을 할 때 핵심 위치 추적 기술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도록 허용하는 조항이 포함됐다. 이는 FAA가 앞서 발표한 안전 규정과 배치되는 내용이다.
상원 상무위원장 테드 크루즈 의원은 해당 조항이 "비행을 위험에 빠뜨린다"고 비판하며 안전 규정을 다시 강화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하원 교통위원회 간사인 릭 라슨 의원도 이번 엘패소 사태를 "법안이 허용한 권한 남용의 사례"라고 규정했다. 그는 "국방부에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부여했고, FAA에는 충분한 협의 권한을 주지 않았다"며 "국방부가 비행 대중의 안전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pride@fnnews.com 이병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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