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사람 죽이고 뉴스 나온다"…예고된 전화, 그리고 지옥의 밤[사건의재구성]

뉴스1

입력 2026.02.13 06:00

수정 2026.02.13 06:00

ⓒ 뉴스1 윤주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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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1 김지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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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전경.(뉴스1 DB)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전경.(뉴스1 DB)


(동해·강릉=뉴스1) 윤왕근 기자 = "사람을 죽이고 교도소에 갈 거야. 뉴스에 나올 거다."

2024년 7월 9일, A 씨(48)는 지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술김의 과장이나 허세처럼 들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한 통의 전화는, 이튿날 그대로 현실이 됐다.



다음 날인 7월 10일 새벽 2시 51분. 강원 동해시 송정동의 한 노래주점 문이 열렸다. 모자를 깊게 눌러쓴 남성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안으로 들어섰다. A 씨였다.

가방 안에는 미리 준비한 흉기가 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준비한 흉기조차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주점 안에 있던 다른 흉기들까지 가방에 챙겼다.

곧 공격이 시작됐다. 목표는 주점 주방 종업원 B 씨(40대·여)였다. 주점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깨진 소주병과 맥주병, 바닥에 흩어진 흉기, 뒤엉킨 혈흔. 흉기는 여러 차례 바뀌었고, 공격은 끊이지 않았다.

B 씨는 맨손으로 흉기를 붙잡으며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그러나 끝내 힘이 빠졌다. 상대가 저항 불능 상태에 이르렀지만, A 씨는 멈추지 않았다.

한 차례 공격이 끝난 뒤, 그는 현장을 벗어났다. 구호 조치는 없었다. 그리고 잠시 뒤, 다시 돌아왔다. 분이 풀리지 않았다는 듯, 움직이지 않는 피해자에게 또다시 공격을 이어갔다.

결국 B 씨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검안 결과, 그녀의 몸에는 자상 66곳이 남아 있었다. 상처는 일정한 부위에 머물지 않았다.

범행 직후 A 씨는 차량을 몰고 달아났다. 면허는 없었고, 술에 취한 상태였다. 도주는 오래가지 않았다. 2시간 30분 뒤, 사건 현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동해시 북평동의 한 공원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동이 틀 무렵, 광란의 밤은 그렇게 끝났다.

연인이었던 두 사람, 그리고 이별

사건의 시작은 평범했다. B 씨는 동해시 송정동의 노래주점 주방에서 일하던 종업원이었고, A 씨는 손님이었다. 두 사람은 알게 됐고, 2023년 10월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무슨 이유였는지 이들의 관계는 9개월 만에 끝났다. 범행 하루 전인 7월 9일, B 씨는 이별을 통보했다. 이후 연락은 닿지 않았다.

A 씨는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분노는 곧 증오로 바뀌었다. 그리고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람을 죽이고 뉴스에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공소장에는 살인 혐의 외에 무면허 음주운전 혐의도 추가됐다. 한국 성인 범죄자 재범위험성 평가(KORAS-G) 결과, A 씨는 강력범죄 재범위험성 '높음'으로 분류됐다.

"우발적 범행" 주장, 법원 판단은 달랐다

“사람을 죽여 교도소에 가고, 뉴스에 나올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A 씨. 그러나 재판이 시작되자 그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는 재판 내내 자신의 범행을 '우발적 범행'이라고 주장했다.

2024년 11월 14일, 춘천지법 강릉지원 형사법정에서 열린 1심 결심공판. 최후진술에 나선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었다.

"어리석은 죄인의 잘못으로 유가족께 큰 상처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결코 계획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검찰의 판단은 달랐다. 지인과의 통화, 사전 흉기 준비, 얼굴을 가린채 이동, 재차 이어진 공격까지. 검찰은 "충동으로 보기에는 과정이 치밀하다"며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A 씨는 결심공판이 끝난 뒤 퇴정을 명령하는 재판부를 향해 "절대 계획적인 범행이 아닙니다"라고 소리쳤다. 법원 경위에 이끌려 재판정을 나섰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은 한동안 법정 안에 남아 울렸다.

1심 재판부는 이 사건을 우발 범행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징역 25년과 전자장치 부착 15년을 선고했다. A 씨는 항소했지만, 2심 역시 "범행 수법이 극도로 잔혹하고 피해 회복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를 기각했다.

대법서 징역 25년 '확정'…교제폭력 일 평균 26건

대법원도 같은 결론을 내렸다. A 씨의 상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징역 25년과 전자발찌 부착 15년이 최종 확정됐다.

이 사건 최종심이 끝날 때까지 A 씨는 '계획범행'이라는 표현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법원은 예고된 전화와 준비된 흉기, 돌아온 시간과 멈추지 않은 공격. 이 모든 흐름을 충동이 아닌, 되돌릴 수 있었던 선택들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로 봤다.

사랑도 '생로병사(生老病死)'를 겪는다고 했다. 만남으로 태어난 사랑은 한때 뜨겁게 타오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빛을 잃고 끝을 맞는다.
끝이 온다는 사실은 피할 수 없지만, 그 방식만큼은 선택할 수 있다.

지난해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전국에서 연인 등을 상대로 발생한 강력·폭력범죄는 2만 8527건. 하루 평균 26건꼴로, 사랑이라는 이름 뒤에서 폭력이 반복되고 있다는 뜻이다.


사랑의 광기어린 집착과 이별의 잔혹한 결과를 만천하에 보여주고 이 사건은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