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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강국, 에너지 약국? 시험대에 오른 한국의 해운탈탄소[이유범의 에코&에너지]

이유범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2.14 06:00

수정 2026.02.14 06:27

LNG 이후의 선택, 다음 연료 표준에 관심
공급망과 금융이 다음 20년 해운 산업을 결정
연료를 만드는 나라가 미래 해운을 지배


부산신항 전경. 연합뉴스
부산신항 전경. 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국제해운이 구조적 전환기에 들어섰다. 선박은 전 세계 교역량의 80% 이상을 운송하지만 동시에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약 3%를 차지한다. 국제해사기구(IMO)는 2050년 전후 국제해운의 탄소배출 제로를 목표로 설정했고, 유럽연합(EU)은 해운을 배출권거래제(ETS)에 편입했다. 이제 선박은 ‘운임 경쟁’이 아니라 ‘탄소 경쟁’을 해야 하는 시대다.

천연가스(LNG)는 그동안 선박의 주력 연료였던 벙커C유를 대체하는 '가교 역할(Bridge Fuel)'을 해왔고, 한국은 세계 1위의 LNG 선박 강국으로 수혜를 받아왔다.

하지만 LNG는 과도기의 승자일 뿐이며, 그 다음 연료를 둘러싼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전경(HD현대 제공). 뉴스1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전경(HD현대 제공). 뉴스1

LNG 1000척 시대… 한국 조선의 전성기


그동안 선박에서 벙커C유가 주력 연료였던 이유는 한마디로 '최고의 가성비' 때문이다. 벙커C유는 원유를 정제하고 남은 가장 마지막 단계의 찌꺼기 기름(잔사유)라는 점에서 휘발유나 경유보다 훨씬 저렴해, 연료비가 운영비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해운업계에 최적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벙커C유는 정제되지 않은 찌꺼기 기름이라 불순물이 매우 많다. 연소 시 발생하는 황산화물, 질소산화물, 미세먼지는 항구 도시의 공기 질을 심각하게 악화시켜왔다. 여기에 국제해사기구(IMO)는 2050년까지 선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제로'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벙커C유로는 절대 달성할 수 없는 목표다.

이에 최근 5년간 글로벌 신조 발주 시장에서 대체연료 선박이 급증했다. 2018년 전체 발주의 약 12%에 불과하던 대체연료 선박 비중은 2023~2024년 들어 전체 발주의 절반 이상으로 확대됐다. 이 가운데 약 70% 이상이 LNG 추진선이다. 사실상 대체연료 시장의 중심이 LNG인 셈이다.

전 세계 LNG 연료 추진선은 운항 중 선박과 수주 잔량을 합쳐 약 1000~1200척 규모로 추정된다. 2015년 100척 안팎이던 시장이 10년 만에 10배 이상 성장했다.

한국 조선업은 이 시장을 사실상 주도해왔다. 2022년 글로벌 LNG 운반선 발주 163척 가운데 121척, 약 74%를 한국 조선소가 수주했다. 2023년에도 한국은 LNG 운반선 발주량의 약 80%를 차지했다. LNG 신조선 수주 잔량 가치는 약 700억 달러 이상으로, 한국 조선 전체 수주잔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특히 1만5000TEU 이상 초대형 컨테이너선에서는 LNG 이중연료 비중이 60~70%에 달한다. LNG는 한국 조선의 기술력과 수익성을 동시에 끌어올린 핵심 동력이다.

LNG는 기존 벙커C유 대비 이산화탄소를 약 20~25% 감축하고, 황산화물은 90% 이상, 질소산화물은 약 80% 줄인다. 미세먼지 배출은 사실상 제거된다. 이러한 환경 성능이 LNG를 ‘과도기의 승자’로 만든 배경이다.

그러나 LNG는 완전한 탈탄소 연료가 아니다. 메탄 슬립까지 고려하면 실질 온실가스 감축 효과는 10~15% 수준으로 낮아질 수 있다. IMO의 넷제로 목표를 고려하면 LNG는 2030년대 중반까지의 브릿지 연료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지난 2023년 7월 울산항에서 세계 최초로 그린 메탄올 1천 톤이 컨테이너 선박에 성공적으로 공급됐다. 사진은 울산항 8부두 100% 바이오디젤 벙커링. 연합뉴스
지난 2023년 7월 울산항에서 세계 최초로 그린 메탄올 1천 톤이 컨테이너 선박에 성공적으로 공급됐다. 사진은 울산항 8부두 100% 바이오디젤 벙커링. 연합뉴스

메탄올·암모니아·SMR, 다음 표준은 누구

차세대 연료 경쟁은 이미 본격화됐다. 메탄올은 상대적으로 취급이 안전하고 기존 선박 개조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일부 글로벌 해운사는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을 상용화 단계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재생에너지로 생산하거나 가축분료 등에서 생산하는 ‘그린 메탄올’의 생산량은 아직 제한적이고 가격도 높다.

암모니아는 연소 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이론적 장점이 있다. 하지만 독성 문제, 안전 규제, 저장·운송 기술 표준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엔진 기술과 연료 탱크, 항만 벙커링 인프라까지 전면적인 재설계가 필요하다.

한국 조선업은 암모니아 추진 기술에서도 선도적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 우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어느 연료가 국제 표준으로 굳어질지에 따라 향후 20년간 수주 판도가 재편될 수 있다.

보다 근본적인 대안은 선박용 소형모듈원자로(SMR)다. 이론적으로는 장기간 연료 교체 없이 운항 가능하고 CO₂ 배출이 없다. 그러나 원자력은 규제·안전·보험·입항 문제라는 거대한 장벽에 직면한다. 상용화까지 최소 10~20년 이상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SMR이 거론되는 이유는 연료 공급망 불확실성 때문이다. 암모니아·수소 공급이 충분치 않을 경우, 원자력은 탈탄소의 급진적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다. 한국은 조선과 원전 기술을 동시에 보유한 몇 안 되는 국가다.

연료 경쟁이 불확실해지면서 보조 기술로 '바람'이 주목받고 있다는 점도 흥미로운 점이다. 로터 세일, 윙 세일, 카이트(연) 추진 시스템이 유럽을 중심으로 상용화 단계에 들어섰다. 이들 기술은 주 추진이 아니라 보조 동력이다. 연료 소비를 5~15% 줄일 수 있고, 탄소집약도지수(CII) 점수를 즉각적으로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LNG·메탄올·암모니아 선박과 병행 적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과도기적 해법으로 주목받는다.

그러나 풍력 보조 추진 기술의 핵심 장치는 유럽 기업들이 선도하고 있다. 한국 조선은 선박 통합 설계에는 강점이 있지만, 해당 장치 분야에서는 아직 후발주자다.

글로벌 연료 패권 지도에 대한 생성형 이미지. 챗GPT
글로벌 연료 패권 지도에 대한 생성형 이미지. 챗GPT

연료 패권의 본질은 공급망·금융·규제

해운 탈탄소는 엔진 경쟁이 아니라 공급망 경쟁으로 흘러가고 있다. LNG는 이미 글로벌 공급망이 구축돼 있었다. 카타르·미국·호주 등 생산국이 장기 계약 구조를 형성했고, 해운사는 가격과 물량을 예측할 수 있었다. 그 안정성이 LNG 확산의 기반이었다.

반면 그린 암모니아·그린 메탄올은 재생에너지 기반 생산이 필수다. 태양광·풍력 발전 능력이 곧 연료 생산 능력이다. 연료는 20~30년간 공급돼야 한다. 해운사는 연료가 ‘있느냐’보다 ‘계속 있느냐’를 묻는다. 공급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표준이 될 수 없다. 결국 연료 패권은 생산지와 항만 허브가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로테르담, 싱가포르, 휴스턴 등은 차세대 벙커링 허브 경쟁에 돌입했다. 연료 저장·운송·안전 기준을 먼저 구축한 항만이 지역 표준을 만들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중동과 호주는 대규모 재생에너지 기반 암모니아 생산을 추진 중이며, 유럽은 규제를 통해 시장을 설계하고 있다. 중국은 제조 역량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다.반면 한국은 조선 기술이 강하지만 연료 생산 기반은 약하다.

연료 경쟁의 또 다른 축은 금융과 규제다. 해운은 자본집약 산업이다. 선박 한 척 가격은 수천억 원에 이른다. 금융이 움직이지 않으면 전환도 없다.

EU ETS는 고탄소 연료에 비용을 부과한다. 탄소 가격이 톤당 80~100유로 수준일 경우, 고탄소 선박은 연간 수십억 원의 추가 부담을 질 수 있다. 이는 연료 선택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국제 금융권은 포세이돈 원칙에 따라 선박의 탄소 성능을 대출 조건에 반영한다. 탄소 집약도가 낮은 선박은 금리가 낮아지고, 고탄소 선박은 금융 접근성이 떨어진다. 결국 향후 연료 선택은 시장의 자율이 아니라 정책과 자본 설계의 결과물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해운 탈탄소는 환경 이슈가 아니라 공급망과 금융, 규제가 얽힌 연료 패권 전쟁"이라며 "한국이 연료를 만드는 나라가 될 것인지 아니면 연료를 사서 선박을 만드는 나라에 머물 것인지 앞으로의 선택에 좌우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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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yb@fnnews.com 이유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