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 연휴 극장가 최후의 승자는 '왕과 사는 남자'(감독 장항준)다. 지난 4일 개봉 이후 2주 만에 4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이 영화는 단종 애사를 웃음과 눈물이 있는 희비극으로 풀어내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또 스크린 속에서 유해진(엄흥도 역)과 박지훈(단종 역)의 열연 못지않게 관객의 시선을 잡아 끈 건 강원도 영월의 눈부신 풍광이다.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와 마지막 거처 관풍헌, 슬픔을 품은 자규루, 그리고 소년왕이 잠들어 있는 장릉까지, 영화의 여운을 따라 단종의 시간을 걸어봤다.
■단종이 머물렀던 곳, 청령포
영화 속에서 청령포는 "너구리도 환장해 졸도하는 오지의 섬"으로 묘사된다.
관광지로 개발된 청령포는 영화 속 모습처럼 험준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배로만 드나들 수 있다. 오전 9시부터 운행하는 나룻배를 타고 안으로 들어가면(도선료 3000원), 소나무 숲 안쪽으로 단종이 머물렀다는 어소(御所)가 나타난다. 이는 원래부터 있던 건물은 아니고 지난 1975년 청령포 정비 때 처음 조성됐다가 2000년 '승정원일기' 기록에 따라 당시 모습을 재현했다. 어소 주변에는 영조 때 위치를 알리기 위해 세운 단묘유지비(端廟遺址碑)와 민간인의 출입을 막았던 금표비(禁標碑)가 아직도 남아있다.
또 송림 사이를 걷다 보면 수령이 6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천연기념물 관음송(觀音松)을 만날 수 있다. 단종의 비참한 모습을 지켜보고(觀), 그의 슬픈 목소리를 직접 들었다(音)는 그 소나무다. 키가 30m나 되는 이 소나무는 아랫부분에서 줄기가 두 갈래로 나뉘어져 있는데, 단종이 이 줄기에 걸터앉아 시간을 보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청령포에는 이밖에도 단종이 한양 땅을 그리워하며 돌을 쌓았다는 망향탑과 그가 해질 무렵 어머니 계신 곳을 바라보며 눈물 지었다는 노산대가 있고, 청령포가 내려다 보이는 주차장엔 단종과 그의 비(妃)인 정순왕후가 천상에서 재회하는 모습을 표현한 금빛 동상이 서있다.
■단종이 잠들어 있는 곳, 장릉
단종은 1457년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결국 세조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의 죽음과 관련해서는 여러가지 기록이 전해지지만,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연려실기술' 등 야사에 기록된 이야기를 바탕으로 여기에 상상력을 가미해 단종이 엄흥도에게 부탁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결기를 보이는 것으로 묘사한다.
단종은 사사되기 전 청령포에 홍수가 나자 영월부 관아인 관풍헌(觀風軒)에서도 두 달 가량을 더 살았다. 영월 시내로 가면 기와 지붕을 얹은 단정한 삼문 너머로 고즈넉한 분위기의 관풍헌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기록에 따르면, 단종은 관풍헌을 침전으로 사용하고, 누각인 매죽루(梅竹樓)에도 자주 올랐다고 한다. 여기서 단종은 자신의 처지와 비통한 마음을 두견새(子規)에 비유해 시를 짓곤 했는데, 이런 연유로 후대 사람들이 이 누각을 자규루(子規樓)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이 누각에는 매죽루와 자규루라는 두 개의 현판이 서로 다른 방향에 하나씩 걸려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노산군(단종)이 영월에서 죽었다"는 단 한 줄의 기록이 남아 있을 뿐이다. 단종의 죽음을 둘러싸고 다양한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하겠다"는 세조의 엄명에도 단종의 마지막을 함께한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영월 호장(戶長·책임자급 향리) 엄흥도다. 야사에 따르면, 엄흥도는 목숨 걸고 시신을 수습해 산속 깊숙한 곳에 단종을 몰래 묻었는데, 그곳이 지금의 장릉(莊陵)이다.
장릉은 오랜 시간 가묘 형태로 있다가 200여년이 지난 후 능(陵)으로 격상된 만큼, 일반적인 조선왕릉과는 모습이 확연히 다르다. 참도(參道)가 일직선이 아니라 중간 지점에서 직각으로 꺾여있고, 평지에서 능까지의 경사도 꽤 가파른 편이다.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신하들의 위패를 모신 장판옥(藏版屋)이 있는 것도 이곳만의 특징이다. 또 단종의 시신을 거둔 엄흥도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정려각도 따로 마련돼 있어 의미를 더한다.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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