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미국 시민권 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제시 잭슨 목사가 84세로 별세했다.
유족은 17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그는 가족뿐 아니라 전 세계 억압받는 이들을 위해 헌신한 지도자였다"고 밝혔다. 잭슨은 2017년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이후 투병해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전직 미국 대통령들은 일제히 그의 죽음을 추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제시는 보기 드문 자연 같은 존재(force of nature)였다"고 칭송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항상 제시를 돕는 게 기뻤다"며 "월스트리트 40번지의 트럼프 빌딩에 수년간 그와 그의 레인보우 연합을 위한 사무 공간을 제공했다"면서 "그는 가족을 깊이 사랑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깊은 위로와 애도를 전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출신 전직 미국 대통령들도 추모 행렬에 동참했다.
1941년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태어난 잭슨은 짐 크로 법이 지배하던 인종 분리 시대 속에서 성장했다. 대학 시절 '백인 전용' 도서관에 입장하려다 체포되며 시민권 운동에 본격 뛰어들었다.
1960년대 그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측근으로 활동했다. 1968년 킹이 멤피스에서 암살되던 날, 잭슨은 같은 건물 아래층에 있었다. 이후 남부기독교지도자회의(SCLC)에서 활동했으며 1970년대 시카고에서 '오퍼레이션 푸시(Operation PUSH)'를 창립했다. 1984년에는 '내셔널 레인보우 코얼리션'을 설립해 여성·성소수자 권리까지 의제로 확장했다. 잭슨은 1984년과 1988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했다.
1984년 경선에서는 330만표(18%)를 얻어 3위를 기록했다. 유대인을 비하하는 발언이 공개되며 동력이 약화됐지만, 흑인 후보가 전국적 기반을 구축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1988년에는 680만표(29%)를 획득하며 11개 주에서 승리했다. 최종 후보가 된 마이클 두카키스와 접전을 벌였지만 백악관 문턱을 넘지는 못했다. 그로부터 20년 뒤인 2008년 같은 시카고 출신인 버락 오바마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됐다.
잭슨은 선출직을 맡지는 않았지만 영향력은 컸다. 1984년 시리아에서 미군 조종사 석방을 이끌었고, 1990년에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만나 억류 미국인 석방을 협상했다. 1990년대에는 빌 클린턴 대통령의 아프리카 특사로 활동했다.
2000년에는 미국 최고 민간 훈장인 대통령 자유훈장을 받았다.
한편 그는 수차례 논란을 겪었다. 인종·종교 관련 부적절 발언, 혼외 자녀 스캔들, 아들의 정치자금 사건 등 개인적·정치적 상처도 남겼다. 그럼에도 수십 년간 미국을 대표하는 시민권 지도자로 자리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pride@fnnews.com 이병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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