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탈리아는 새벽에 올림픽을 해요?" 어떤 '밈'인지 기억하시나요? 문득 떠오른 그때 그 밈을 올림픽 버전으로 살짝 바꿔보았습니다. 4년에 한 번 찾아온 동계올림픽 보느라 매일이 수면 부족인 기자가, 매주 주말 전하던 공연 이야기 대신 대회 기간 [주말엔 올림픽 한 잔]을 여러분과 나눕니다. 아무리 재미없다, 화제가 안 된다 해도 올림픽은 올림픽이니까요.
[파이낸셜뉴스] 한국시간으로 지난 13일,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 첫 금메달이 나왔다. 주인공은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의 기대주 최가온(세화여고). 1·2차 시기에서 실수한 최가온은 마지막 3차 시기를 시작하기 전까지 12명 중 11위에 불과했으나 3차 시기에서 90.25점을 획득하며 기적적인 역전 우승을 일궜다. 그가 이날 따낸 금메달은 한국 설상 종목 역사상 첫 금메달이기도 하다.
그런데 온 국민이 환호하던 바로 그 날, 온라인에서는 메달 소식만큼이나 빠르게 퍼진 사진 한 장이 화제가 됐다.
그리고 이 현수막 사진은 “솔직히 금메달보다 저 아파트 사는 게 더 부럽다”는 반응으로 이어지며 묘한 파장을 낳았다. 최가온이 국민평형(84㎡) 호가 50억원, 대형 평형 최대 150억원에 육박하는 초고가 아파트에 거주한다는 사실이 대중의 시선을 ‘금메달의 영광’에서 ‘배경의 위력’으로 옮겨놓는 순간이었다.
온라인에서는 이번 일을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금메달도 금메달이지만 금수저 자랑에 박탈감이 든다", "당연히 '있는 집 자식'이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 기분"이라며 분노를 정당화하는 이들과, "돈 있다고 누구나 올림픽 금메달을 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을 하는 것", "금메달도, 원펜타스도 자기 게 아닌데 대체 어디서 박탈감을 느낀다는 건지 모르겠다"며 반박하는 이들의 설전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동계올림픽은 태생적으로 ‘가진 자들의 무대’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육상화 한 켤레 vs 1억 원짜리 썰매
당연하게도 모든 엘리트 스포츠는 돈이 많이 든다. 하지만 대부분의 종목에 고가의 장비가 필수적인 동계스포츠는 비용의 장벽이 유난히 크고, 또 높다. 동계스포츠의 높은 진입 장벽은 숫자로 환산하면 더욱 선명해진다.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엘리트 피겨 선수 한 명을 육성하는 데 드는 비용은 연간 3만5000달러~5만달러(약 5000만원~7000만원) 수준이다. 올림픽 메달권 레벨에 도달하면 이 비용은 억 단위로 뛴다. 스케이트 날만 100만원이 넘고, 안무 비용은 프로그램 하나당 최대 1만5000달러(약 2000만원)가 소요된다. ‘빙판 위의 F1’이라 불리는 봅슬레이는 썰매 한 대 가격이 약 1억, 2억을 오가고 스켈레톤도 썰매 한 대 가격이 1500만원에 달한다.
문제는 초기 장비값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빙판 대관료, 전담 코치비, 해외 대회 출전 경비, 시즌마다 바뀌는 의상과 안무비, 그리고 전지훈련 숙박비가 매년 청구서처럼 날아온다. 여기에 눈과 얼음이 없는 계절에도 훈련을 해야 하는 만큼, 동계 종목 선수들은 눈을 찾아 지구 반대편으로 이동하는 ‘철새’ 생활을 해야 한다. 여기에 드는 항공료, 체류비, 그리고 리프트 이용료와 코스 대관료 등을 따져보면 금세 정신이 아찔해진다. 하계올림픽의 상징인 육상이 운동화 한 켤레로 시작할 수 있고, 축구가 공 하나면 충분한 것과 비교하면(물론 이 종목들도 엘리트 스포츠의 영역으로 들어서면 훈련 비용 등이 무시무시하게 뛰어오르긴 하지만) 동계올림픽은 출발선 자체가 다르다는 말을 실감할 수밖에 없다.
눈밭 위엔 ‘음바페’가 없다
이러한 ‘돈의 장벽’은 선수단의 인종 구성마저 바꿔 놓는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프랑스 국가대표팀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6일 자신의 SNS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프랑스 동계올림픽 대표팀의 사진을 올리면서 격려했는데, 누리꾼들이 '흑인이 한 명도 없는' 대표팀 구성원의 모습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유럽에서 가장 인종 다양성이 높고, 흑인이 많은 국가 중 하나로 꼽히는 프랑스지만 동계올림픽 대표팀에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누리꾼들은 프랑스 축구 대표팀 ‘레 블뢰(Les Bleus)’의 사진과 동계올림픽 대표팀의 사진에서 보이는 극심한 차이를 지적했다. 프랑스 축구대표팀은 ‘블랙-블랑-뵈르(Black-Blanc-Beur, 흑인-백인-아랍인)’라 불리며 다민족·다문화 프랑스의 상징으로 통한다. 킬리안 음바페를 비롯한 이민자 가정 출신 선수들이 주축이 됐기 때문이다. AP 역시 이번 동계올림픽에 참가하는 유럽 국가들의 대표팀이 "압도적으로 백인이 많고, 축구나 농구팀에서 볼 수 있는 이민자 출신 선수 비중은 매우 작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동계올림픽 대표팀과 축구 대표팀의 차이는 무엇일까. 축구는 흙바닥에서도 할 수 있지만, 스키는 리프트가 있는 산으로 가야만 한다는 점일 것이다. 축구공 하나로 가난을 딛고 일어선 파리의 빈민가 ‘방리유’ 아이들도 알프스 리조트 회원권과 수백만 원짜리 스키 장비가 필수인 동계올림픽에는 도전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결국 인종의 문제가 아니라 계급의 문제다. 눈밭 위에 음바페가 없는 것은 그들이 추위에 약해서가 아니라, 그 추위를 즐기는 비용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부자들의 잔치’라는 비판 뒤에 존재하는 동계올림픽의 경제학
이러한 비용 구조는 동계올림픽을 선진국, 그중에서도 부유층 백인들의 전유물로 만들었다. 역대 동계올림픽 메달 순위를 보면 노르웨이, 미국, 독일, 캐나다 등 1인당 GDP가 높은 북미와 유럽 국가들이 최상위권을 독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정부 지원금이 적어 선수 개인이 비용을 충당해야 하기에 ‘부모의 재력이 곧 메달 색깔’이라는 공식이 더욱 노골적으로 적용되곤 한다. ‘스키 여제’ 미카엘라 시프린이나 ‘스노보드 황제’ 숀 화이트 같은 슈퍼스타들 역시 든든한 가족의 지원이나 막대한 기업 후원 없이는 결코 지금과 같은 스타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금수저라서 금메달 서사가 박살났다"는 소리가 동계올림픽의 현실과 동떨어지게 들리는 이유다.
돈만으로는 결코 올림픽 금메달을 살 수 없다. 그러나 돈 없이는 그 메달을 향해 달릴 기회조차 얻기 힘든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설원을 녹이고 빙판을 내달리는 선수들의 치열한 노력 뒤에는, 재능을 꽃피우기 위해 쏟아부은 천문학적인 눈물과 그만큼의 돈이 깔려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최가온을 비롯해 모든 동계 선수들이 흘린 땀방울의 가치가 그들의 배경 때문에 폄하되어서도 안 된다. 극한의 고통을 견뎌내며 노력을 쏟아붓고 승부의 세계에 자신을 내던진 선수들의 도전은 그 자체만으로도 존중받을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래미안 원펜타스라는 '나뭇잎'만 바라보기 보다는 동계올림픽이라는 '숲'이 왜 '부자 나라들의 돈잔치'로 불리는지, 그 본질적인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직도 자메이카 봅슬레이팀의 '쿨러닝'이 전설처럼 회자되는 이유, 남미 최대 국가인 브라질이 이번 대회를 앞두고 400억원이 넘는 투자를 받아 선수단을 꾸려 사상 첫 메달을 따낼 수 있었던 이유 뒤에는 이와 같은 동계올림픽의 경제학이 작용하고 있다.
bng@fnnews.com 김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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