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를 만들기도 하지만 문제도 만드는 게 사람이다. 사람을 끝없이 확인하는 것이 소통의 기본이다. 하지만 이른바 '대한상의 가짜뉴스' 논란 과정에서 상의, 언론, 정부 중 누구도 그 기본을 지키지 않았다.
문제의 '가짜뉴스'는 지난해 한국을 떠난 고액자산가가 2400명이고, 상속세로 자산가의 해외이탈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상의 보도자료와 이를 보도한 기사를 말한다. 상의는 이런 자료를 내면서 2400명의 근거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
해당 숫자는 원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뉴월드웰스(뉴월드)라는 자산정보회사가 추정한 것이다. 영국의 이민컨설팅업체인 헨리앤드파트너스(헨리앤)가 이 숫자를 인용해 '자산 이민 보고서'를 매년 발간해왔고, 세계 유수 언론뿐 아니라 한국 언론도 수년간 보도했다.
한국 언론은 이번에도 자료 내용을 그대로 중계했다. '슈퍼리치 대탈출' '탈조선 가속화'…. 부자들의 대이동을 기정사실화했다. 데이터의 원청인 뉴월드 등에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팩트체크에 나선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이재명 대통령이 7일 상속세 관련 가짜뉴스를 유포했다며 상의를 질타하자 산업통상부 장관, 재정경제부 장관, 국세청장이 경제단체 긴급 소집, 공개 비판, 해명자료 배포 등으로 대응했다. 다만 가짜뉴스의 근거로는 영국 언론의 비판 보도와 시민단체의 지적사항을 들었을 뿐이다. 정부 관계자는 "여러 가지 정황상 과연 이게 맞을까 하는 신뢰도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고 했다. 상의는 매년 해당 통계를 인용해온 '정황'에 따라 관행적으로 자료를 만들었고, 언론은 다들 따라 쓰는 '정황'에 안심했고, 정부도 '정황'을 비판의 근거로 댔다.
헨리앤과 뉴월드에 이메일로 직접 물어봤다. 헨리앤은 "해당 수치는 특정 정책 때문에 몇 명이 이주했다는 식의 주장을 하도록 설계된 것이 아니라 추세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했다. 헨리앤이 한국의 상속세와 자산가의 이탈을 인과관계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상속세로 자산가가 떠난다는 논리가 상의의 자의적 해석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어 뉴월드는 미국 투자이민 비자 통계, 기업등기부 자료, 국제이사 전문업체 통계를 자산가 이동을 추정하는 근거로 제시했다. 다른 통계는 다소 억지스럽지만 투자이민 비자 통계는 검토해 볼 만하다. 한국의 투자이민 수요가 높은 것으로 나오는 이 통계와 실제 자산가의 이동 상황을 대조하는 것은 지금이라도 분석할 가치가 있다.
'2400명 데이터'를 옹호하려는 게 아니다. 산업부 장관이 행시 선배가 부회장으로 있는 상의를 질타하는 장면이 설득력 있게 보이려면 반박 못할 팩트로 핵심을 짚고 대안을 제시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단지 사설업체의 추계라서 문제가 있고, 외국 언론이 비판을 했기에 검증이 됐다는 건 팩트를 체크한 게 아니라 정황만 살핀 것이다.
시계를 돌려 과연 상의는 무얼 했어야 하나. 앞으로 팩트 검증을 위해 무얼 해야 할까. 정부 관계자 A는 "경제계 대표기관으로서 더 확인했어야 한다"는 원론적인 답을 했고, B는 "상의에 물어보라"고 했다. 상의 관계자는 "지금 상황이 엄중해서 팩트체크 개선작업은 따로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대통령의 질타에 군기를 잡는 쪽이나 잡히는 쪽 모두 정신줄을 놓은 건가. 팩트가 얼마나 오염됐고, 가짜뉴스를 어떻게 씻어낼지 계획표가 없다. 책임을 묻겠다는 장관의 말이나 팩트체크를 의무화하겠다는 재계 단체의 약속이 벌써 허공으로 날아가고 있다.
syhong@fnnews.com 홍수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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