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국제에너지기구(IEA)에 1년 안에 탄소중립 목표를 폐기하지 않으면 탈퇴하겠다고 공언했다. 크리스 라이트 미 에너지부 장관은 IEA의 2050 탄소중립 목표를 "파괴적인 환상"이라고 직격했다. 파리에서 열린 IEA 장관급 회의에서는 공동성명조차 내지 못했다. 기후변화 대응을 둘러싼 국제 공조 체제에 균열이 생겼다는 신호다.
물론 트럼프 행정부의 접근은 정치적 행태가 다분하다.
친환경 에너지 전환의 선도주자를 자처해온 유럽은 이미 그 비용을 치르고 있다. 특히 독일 경제가 입은 타격은 매우 크다. 독일 경제는 2023년과 2024년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며 경기침체를 겪고 있다.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과정에 에너지 비용이 급등하면서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과도한 탈탄소 드라이브 정책은 명분은 좋아도 시민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은 너무 컸다. 탈탄소 전환 과정에 전기요금이 급격하게 올랐다. 전기를 주로 쓰는 제조업들은 에너지 비용 증가로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다. 이상주의적 환경 정책이 민생 부담 및 기업의 경쟁력 약화와 충돌하는 일이 현실로 벌어진 것이다.
이에 따라 유럽 전역에서 재생에너지 일변도의 정책을 수정하고 에너지 믹스의 현실적 재편을 꾀하는 움직임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유럽내에서 원자력을 재생에너지와 동등한 저탄소 에너지원으로 인정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탈원전을 강조하던 EU가 에너지 비용에 큰 충격을 받으면서 기존의 입장을 바꾸는 분위기다.
우리나라는 지금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기후에너지부라는 새로운 부처를 신설하며 에너지·기후 정책의 컨트롤타워를 마련했다. 한국은 제조업이 GDP의 약 27%를 차지하는 제조업 강국이다. 제조업 특성상 에너지 공급이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충분한 전력을 공급하는 인프라를 갖추는 것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비용으로 기업에 공급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인공지능 시대에 접어들면서 에너지 공급 인프라는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지고 있다. AI 시장을 놓고 국가와 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면 에너지 정책도 남달라야 한다.
기후에너지부가 처음 내놓을 에너지 목표와 정책 방향은 그래서 더욱 신중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탄소중립은 포기할 목표가 아니라 유연하게 추진할 과제다. 2050 탄소중립이라는 큰 방향 자체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를 실현할 속도와 수단 및 재원에 대해서는 글로벌 환경 변화를 냉정하게 살펴봐야 한다. 미국이 IEA 체제를 흔들고, 유럽도 에너지 정책 전면 재검토에 나선 상황에서 우리만 기존 로드맵에 경직되게 매달릴 필요는 없다. 국제 에너지 질서가 요동칠수록 우리의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지킬 실용적 해법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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