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평성 vs 산업 경쟁력 충돌
산업용 적용 검토에 물가 인상 압박 우려
송전·배전 형평성 논쟁 가열
전기위원회 독립 공약과도 충돌 가능성↑
산업용 적용 검토에 물가 인상 압박 우려
송전·배전 형평성 논쟁 가열
전기위원회 독립 공약과도 충돌 가능성↑
[파이낸셜뉴스]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이하 지역차등제)를 둘러싼 논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정부는 발전소가 밀집한 비수도권과 전력 소비가 집중된 수도권 간 비용 구조를 요금에 반영하겠다는 취지지만, 제도 설계 단계로 들어가면서 갈등은 훨씬 복잡해졌다. 형평성 논쟁은 송전과 배전 문제로 갈라지고, 산업 경쟁력 우려는 지역 균형발전 논리와 충돌한다. 여기에 권역 설정이라는 정치적 변수까지 얽히면서 지역차등제는 단순한 요금 개편을 넘어 국가 전력 체계의 방향을 묻는 정책으로 비화하고 있다.
수도권 책임론 vs 선택적 형평성
21일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 도입을 준비 중이다.
차등요금제의 출발점은 ‘수도권 책임론’이다. 국내 발전소 대부분은 비수도권에 위치해 있고, 수도권은 장거리 송전에 의존한다. 이 과정에서 송전선 건설, 변전 설비 확충, 계통 보강, 전력 손실 비용이 발생한다. 지금까지는 전국 단일요금제 아래에서 이 비용을 전국이 공동 부담해 왔다.
비수도권에서는 '전력 생산 부담과 송전 갈등은 지방이 떠안고, 소비 혜택은 수도권이 누린다'는 인식이 강하다. 차등요금제는 이러한 거리 비용을 가격에 반영해 형평성을 회복하자는 시도다.
그러나 수도권과 일부 전문가들은 이를 ‘선택적 형평성’이라고 반박한다. 전력망 비용은 송전만이 아니다. 최종 소비자에게 전력을 공급하는 배전 역시 상당한 비용이 들어간다. 배전 비용 구조는 송전과 정반대다. 인구와 산업이 밀집한 수도권은 배전 효율이 높지만, 농어촌·산간 지역이 많은 비수도권은 같은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더 많은 설비를 유지해야 한다. 배전 단가만 보면 비수도권이 더 비싸다.
현재 전국 단일요금제는 이 배전 비용을 전국이 공동 부담하는 구조다. 송전 부담은 비수도권이 상대적으로 더 지고, 배전 비용은 수도권이 일부 떠안는 교차 구조가 형성돼 있다.
이 때문에 송전만 차등화하는 것은 형평성을 부분적으로만 반영한 제도라는 비판이 나온다. 반대로 배전까지 지역별로 반영하면 농어촌 지역의 요금이 오를 수 있어 정치적 부담이 커진다. 배전은 차등요금제 논쟁에서 가장 말하기 어려운 변수다.
산업용만 적용 시 물가인상 압박↑
지역차등제의 목적이 수도권에 몰린 기업들의 지방 이전을 유도하기 위함이라는 설명도 나왔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지난 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전기요금을 지역별로 차등하자는 것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라며 “기업들이 인재 문제 때문에 수도권에만 몰리는 구조를 어떻게 완화할지가 정책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앞서 언급된 송배전 비용과 관련 형평성이 문제가 되자 내놓은 절충안으로 풀이된다. 산업용에만 적용할 경우 가계 요금 인상을 피할 수 있어 민생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고, 배전 문제도 일정 부분 비켜갈 수 있다. 산업은 대용량 직접 수전 구조가 많아 배전 구조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업계의 반발은 더욱 피할 수 없게 된다. 차등이 산업에만 적용될 경우 정책 부담이 특정 집단에만 집중된다는 불만이 제기될 수 있다. 경제단체와 대기업의 조직적 반대가 예상된다. 이와 함께 산업 경쟁력 악화 및 물가 인상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전력비 비중이 높은 업종에서는 몇 퍼센트의 요금 차이도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다. 특히 수출 제조업은 글로벌 가격 경쟁에 노출돼 있다. 일반 소비재의 경우에도 가격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실질적 산업 이동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규모 금액을 투자한 기존 설비의 이전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신규 투자에만 일부 영향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또 전기요금 차등 폭이 크지 않으면 상징적 조치에 그칠 수 있고, 차등 폭이 크면 산업 충격이 커지는 딜레마에 빠진다. 결국 산업용만 적용하는 방식은 갈등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갈등의 방향을 ‘가계 vs 산업’에서 ‘정부 vs 산업’으로 이동시키는 효과에 가깝다.
어디까지 권역을 설정할까....전기요금 독립성 공약과도 충돌
배전 문제와 함께 차등요금제의 최대 난제로는 권역 설정이 꼽힌다. 전기를 멀리서 가져다 쓰는 지역이 더 부담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공감대가 있지만, '어디까지를 하나의 권역으로 묶을 것인가'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과제다. 정부가 지난해 수도권·비수도권·제주도로 권역을 나누는 방안을 검토했다가 철회한 것도 이 때문이다.
2024년 기준 전력자급률을 보면 서울은 10.4%, 경기는 62.5%, 인천은 186.3%다. 수도권을 하나의 권역으로 묶을 경우, 인천은 전력 자급률이 높음에도 송전 비용 부담으로 요금 인상을 감수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비수도권 역시 예외는 아니다. 광주와 대전의 전력자급율은 각각 9.3%, 3.1%에 불과하다. 이들 광역시들은 인근 전남과 충남에서 전력을 끌어다쓰고 있다. 이들 광주와 대전이 전남, 충남과 같은 권역으로 묶일 경우 요금 인하가 가능하겠지만, 수도권과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밖에 없다.
전라북도의 전력자급률은 71.7%로, 이를 그대로 반영할 경우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 새만금을 중심으로 기업 유치를 추진 중인 전북 입장에서는 전기요금 상승이 투자 유치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때문에 정부가 차등요금제 도입을 언급하면서도 구체적인 권역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권역 설정은 곧 요금 인상·인하 지역을 실명으로 공개하는 것과 같아, 지자체와 정치권, 산업계의 반발이 동시에 터져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차등제는 설계 방향에 따라 '전기위원회 독립'이라는 이재명 정부의 또 다른 공약과도 충돌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전기위원회 독립은 요금 결정을 정치적 판단에서 분리해 원가와 시장 원리에 따라 산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역차등제는 단순한 원가 반영을 넘어 산업 분산, 수도권 집중 완화, 균형발전 같은 정책 목적을 담을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요금은 경제적 신호가 아니라 정책 수단으로 활용되며, 독립 규제 원칙과 정면으로 맞물릴 수 있다.
특히 차등 폭이 순수 송전·계통 비용 범위를 넘어설 경우, 독립된 전기위원회가 이를 승인할지 여부가 쟁점이 된다. 정부가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요금 구조를 설계하려 할 때, 독립 규제기관이 제동을 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대로 정부가 위원회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독립성 자체가 훼손됐다는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결국 지역차등제는 전기요금의 탈정치화 원칙과 긴장 관계를 형성할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다.
기후·환경과 에너지는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입니다.
에너지의 생산 방식에 따라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하거나, 반대로 기후나 환경의 변화가 에너지 수요와 공급에 영향을 줍니다. [이유범의 에코&에너지]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인 기후·환경 및 에너지 이슈를 들고 매주 토요일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leeyb@fnnews.com 이유범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