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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무역 합의 파기 현실적 아냐”…관세 무효에 전문가들 ‘단기 호재·장기 부담

이병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2.21 05:58

수정 2026.02.21 05:57

【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최근 미국과 체결된 합의를 파기하는 선택지는 현실적으로 고려되지 않는 분위기다. 그런 조치가 백악관과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를 지낸 웬디 커틀러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ASPI) 부회장은 20일(현지시간) 미국 대법원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조치를 무효화하자 이같이 평가했다. 미 대법원은 이날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부과된 광범위한 관세가 대통령의 법적 권한을 넘어섰다고 판결했다.

커틀러 부회장은 “이제 301조, 232조, 122조 등 의회로부터 명확히 관세 권한을 위임받은 조항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됐다”며 “주요 무역 파트너들도 미국이 다른 법률을 통해 관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고 협상에 나섰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무역 합의 다수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일부 합의가 영향을 받더라도 다른 합의로 대체하겠다는 입장이다.

상호관세 철폐는 미국 경제에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관세 환급으로 기업이 납부했던 자금이 시장에 풀릴 경우 사실상 재정 부양 효과가 나타나 기업 실적과 증시에 우호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반면 세수 감소와 재정 악화, 국채 금리 상승 등 부작용이 뒤따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호세 토러스 인터랙티브 브로커스 수석경제학자는 “관세 환급 가능성이 커지면서 기업 순이익이 단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권오성 웰스파고 수석주식전략가도 관세 철폐 시 S&P500 기업의 세전 이익이 전년 대비 2.4%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제임스 세인트오빈 오션파크 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 역시 “주식 시장의 소폭 반등을 촉발할 수 있는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수혜는 특히 수입 의존도가 높은 소비재 기업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원자재 가격 하락과 무역 정상화가 비용 부담을 덜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재정이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펜-와튼 예산 모델’은 관세 환급 규모가 1750억 달러(약 254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곧 세수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미 의회예산처(CBO)가 이달 초 관세 수입으로 향후 10년간 3조 달러의 재정적자 축소 효과를 전망한 것과는 상반된 흐름이다.

필 블랑카토 오자이크 수석 시장전략가는 “재무부가 기업에 상당한 금액을 상환해야 할 것이라는 우려가 채권 금리 급등을 촉발했다”며 “이는 재정적자 확대와 미국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채 금리 상승은 유동성을 채권 시장으로 흡수해 장기적으로 증시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에디 가부어 키어드바이저스 최고경영자(CEO)도 “시스템에서 유동성을 빨아들이는 효과가 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제조업과 고용시장 전망도 엇갈린다. 토러스 수석경제학자는 “관세가 사라지면 미국 내 제조시설 유치 유인이 약화될 수 있다”며 공장 투자 지연과 고용 둔화를 경고했다. 관세 부담을 피하기 위해 미국에 생산기지를 구축하려던 기업들의 전략이 재조정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마크 잰디 무디스 애널리틱스 수석경제학자는 상반된 견해를 내놨다.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관세 정책은 고용시장 부진과 경제 취약성의 주요 원인”이라며 대법원의 판결이 “고용 시장을 활성화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시장에서는 이번 판결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가 다른 법적 수단을 통해 관세를 재부과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상호관세 철폐의 경제적 효과 역시 일시적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미 대법원의 관세 위법 판결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미 대법원의 관세 위법 판결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pride@fnnews.com 이병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