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국제질서 무너뜨린 트럼프… 제국주의 환영을 불러내다[김관웅의 픽(pick)]

김관웅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2.22 19:06

수정 2026.02.23 08:03

세계의 수호자 美는 더이상 없다
'마가' 외치며 2025년 돌아온 트럼프
동맹국에도 관세 칼날 휘두르며 공격
그린란드·加에는 영토 점령 야욕까지
새로운 안보·경제 블록 만드는 세계
中 견제하던 서방 국가들 동맹에 균열
英·캐나다 총리는 시진핑과 마주 않고
태국·인니 등 동남아도 中구애에 흔들
자국 우선주의 부메랑은 다시 美로
관세 후폭풍에 채권금리 빠르게 치솟아
물가상승 부추기면 소비 줄고 경기침체
결국 금리인하 위해 연준의장 바꾸기도
국제질서 무너뜨린 트럼프… 제국주의 환영을 불러내다[김관웅의 픽(pick)]

국제질서 무너뜨린 트럼프… 제국주의 환영을 불러내다[김관웅의 픽(pick)]

【파이낸셜뉴스 하노이(베트남)=김관웅 특파원】"미국이 미국스럽지 않다. 미국의 시대가 저무는 것 같다."

최근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많은 전문가들의 느끼는 한결같은 시각이다. 무엇이 미국스럽고, 지금의 미국이 왜 미국스럽지 않은 것일까.

미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제국이다. 고대에 로마 제국이 있었고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등이 근대에 제국의 모습을 보였지만 미국만큼 제국의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나라는 없었다.

1945년 브레튼우즈 체제를 열며 세계 무대의 주인공으로 올라선 미국은 세계 안보와 자유로운 무역체제의 수호자였다. 1991년에는 세계를 양분하던 소련 제국마저 무너뜨리고 세계 유일의 패권국가로 올라섰다. 그럼에도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조지 부시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가 아닌 '팍스 유니버셜스(Pax Universalis)'를 추구하겠다고 했다. 세계 유일의 패권국이지만 자국의 이익만 우선하지 않고 세계 시민과 공동 번영을 위해 나아가겠다는 것이었다. 미국스러움은 바로 이런 '자애로운 패권국'이었다.

그런 미국이 트럼프를 만나면서 허둥대고 있다.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를 외치며 2025년 재 등장한 트럼프는 세계 질서를 통째로 흔들고 있다. 동맹을 가리지 않는 관세정책이 그렇고, 인접국인 캐나다와 그린란드 등 자유진영에 대한 영토 야욕까지 드러내고 있다. '온리 아메리카 퍼스트(Only America First)'다. 이런 미국의 행보에 영국을 비롯한 유럽 나토국과 한국, 일본 등 동맹국이 더 놀라고 있다.

■동맹에 칼 휘두르는 미국..흩어지는 동맹들

지난 1월 트럼프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두 장의 사진은 전세계에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다. 덴마크 령 그린란드에서 성조기를 펄럭이며 서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가상의 이미지는 이미 수차례나 병합 야욕을 드러냈던 자신의 의지를 재차 표명한 것이었다. 또 캐나다와 베네수엘라 영토를 미국 성조기로 뒤덮은 지도 이미지는 지난해 8월 유럽 정상들과의 회담 사진을 활용한 것이었지만 해당 주권국에 대한 결례를 넘어 이들에게 당장 직면한 위협으로 다가왔다.

이 두 이미지는 트럼프가 동맹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실제로 트럼프는 인접한 동맹국 캐나다 총리를 향해 "미국의 51번째 주가 될 수 있다"며 발언한 데 이어 상호관세 100%를 부과했다.

미국의 맹방인 영국과도 예전같지 않다. 유럽과 계속 부딪히는 트럼프가 돌연 나토군의 아프가니스탄 참전 폄하 발언을 하면서부터다. 아프간 전쟁에 나토군으로 참전해 미국에 이어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영국이 발끈했다. 영국 스타머 총리는 트럼프에 즉각 사과를 요구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데 이어 지난 1월 중국 땅을 밟았다. 영국 총리로 중국 방문은 8년만의 일이었다. 앞서 미국과 정면 충돌하는 캐나다 카니 총리도 중국을 찾아 시진핑과 마주 앉았다.

아시아의 전통적 우방인 한국과 일본, 대만도 트럼프에 홀대받기는 마찬가지다. 상호관세 외에 미국 제품의 대량 구매 약속에 이어 엄청난 규모의 직접 투자까지 강요받았다. 우리나라는 3500억 달러, 일본은 5500억 달러, 대만도 5000억 달러에 달했다.

■"트럼프가 미국이 아닌 중국을 이롭게 한다"

트럼프는 바이든 정부를 거쳐 더욱 독해져 돌아왔다. 모든 사안을 장삿꾼의 협상 전략으로 풀어낸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지만 동맹을 가리지 않는다. 바이든 정부가 자유진영을 활용한 정교한 블록주의로 중국을 봉쇄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이 때문에 동맹들은 엄청난 혼란에 빠지고 있다.

앞서 바이든 정부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을 나누고, 반도체 등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신뢰가치사슬(TVC)'이라는 이름으로 블록화해 중국을 공급망 지도에서 도려냈다. 쿼드(QUAD), 오커스(OUKUS),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IPEF)이 그것이다. 중국은 트럼프의 관세협박보다 바이든의 치밀한 봉쇄정책에 더 휘청거렸다. 실제로 이 시기에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나이키, 아디다스, 테슬라, 현대차 등 많은 글로벌 기업이 중국에서 이탈해 동남아와 인도 등으로 옮겨갔다.

2기 트럼프는 바이든의 블록화 정책을 폐기하고 관세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세계 각국은 "중국을 견제하던 서방 동맹에 균열이 생기고 있고, 이는 결국 중국을 이롭게 할 것"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지난해 4월 5일자 사설에서 "미국 관세가 시진핑의 날을 만들었다(U.S. Tariffs Make Xi Jinping's Day)"며 "You make my day(당신이 나에게 최고의 날을 만들었어)"라는 운율을 인용해 트럼프를 비꼬았다.

또 영국 주간지 더 이코노미스트는 같은 날 "Make China Great Again"이라는 제목의 머릿기사를 통해 미국이 국수주의로 망가지고 있고, 중국이 그 틈을 타 국제사회의 리더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지적은 현실이 되고 있다. 서방 자유진영의 핵심이던 유럽의 각국은 중국과 다시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고, 서방 진영에 섰던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각국은 중국의 구애에 다시 흔들리고 있다.

■채권시장에 발목 잡히고, 이민정책으로 인재 내쫓는 미국

트럼프의 관세 전쟁은 연방대법원의 위법 판결에도 멈추지 않을 전망이다. 실제로 트럼프는 무역법 등 다른 법안에 근거해 곧바로 임시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관세폭탄은 미국 서민층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4월 트럼프가 상호관세를 꺼내들자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미국 채권시장이었다. 특히 장기채 금리가 급격하게 올랐다. 장기 채권 금리가 올랐다는 것은 시장이 미국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고 있어 채권을 사지 않는다는 의미다. 채권금리가 오르면 은행금리가 오르고, 이는 물가상승으로 이어져 소비가 줄고 경기 침체로 이어진다.

트럼프는 이를 가장 경계하고 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과 대립하며 결국 기소 사태까지 간 것도, 차기 의장으로 금리인하를 약속한 케빈 워시를 선택한 것도 연준이 선제적으로 금리를 내려 관세전쟁이 초래할 경기침체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트럼프가 이토록 집요하게 금리인하를 주장하는 데는 미국의 고질적인 국가부채가 있다. 미국 부채는 지난 1월 기준 38조4000억 달러로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의 124%에 달한다. 그러나 부채비율은 미국이 기축통화국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이자 비용이다. 미국은 이자로만 올 한 해 1조1000억 달러(1470억원)을 내야 한다. 이는 미국이 연간 국방비로 사용하는 8000억 달러를 훨씬 웃도는 금액이다. 이런 상황에서 채권 금리가 계속 오른다는 것은 재앙이나 다름없다. 일각에서는 막대한 채권 이자로 인해 미국이 세계 각국에서 운영하고 있는 미군을 철수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꺼내든 게 스테이블 코인이다. 미국은 지난해 7월18일 스테이블 코인을 법적 테두리로 끌어들여 육성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스테이블 코인은 가치를 달러에 고정시키고, 거래할 때마다 미 국채를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연동시킨 게 특징이다. 시장에서 미 국채를 사주지 않으니 화폐 거래를 할 때마다 자동적으로 일정액의 국채를 매입하게 만든 것이다. 트럼프는 천재적 발상이라 환호하며 이 법안을 '지니어스 법'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기축통화를 가진 미국이 달러를 대체할 가능성도 있는 새로운 화폐를 육성한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어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이른바 '비자 장사'로 불리는 좌충우돌 이민정책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순혈주의'를 강조하며 세계 0.1%의 인재들을 밀어내고 있다. 능력을 존중하고 포용하는 사회에서 순혈주의를 강조하며 장벽을 두른 고립사회로 가고 있다.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압도적인 자신감에서 나오는 개방성과 포용성 그리고 관용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아메리칸 드림은 사라졌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제국의 시대 저물고, 제국주의 시대 오나

제국의 힘은 존경과 존중에서 나온다. 제국은 주변국의 존경과 주변국에 대한 제국의 존중이 있을 때 제국으로 존재했다. 로마 제국이 그랬다. 기원전 211년 카르타고의 영웅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어 무려 16년간 로마제국 전역을 유린했지만 로마를 점령하지 못하고 패퇴한 것도 로마가 보여준 신뢰에 보답한 동맹들 때문이었다. 그러나 로마 제국은 나중에 스스로 자신들의 기축통화를 파괴한 시뇨리지로 무너졌다. '금본위제'를 채택했던 영국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결국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기축통화국 지위를 미국에 반납하고 세계 무대에서 내려왔다.

제국주의 시대는 압도적인 제국이 사라지고 열강이 합종연횡하며 블록을 이뤄 경쟁하는 시대를 의미한다. 미국이 잠시 흔들리는 사이 중국은 로봇,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을 순식간에 일으키고 주변국을 규합해 다자무역망 확장에 본격 나서고 있다.

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어 유럽 주변국에 대한 위협을 갈수록 노골화하고 있다. 위기감을 느낀 나토는 최근 발트해에서 대규모 상륙작전을 실시하며 미국의 도움없이 비상상황에 대응하는 방어 전략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세계대전의 추축국이던 독일과 일본도 달라지고 있다. 독일은 우크라전쟁 이후 국방비를 GDP의 2% 이상으로 증액하고 군 현대화를 시작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방위비를 사상 최대 수준으로 확대하며 기존의 방어중심 전략에서 벗어나 공격 능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사실상 재무장에 나선 것이다.

미국이 흔들리면서 유럽과 아시아 각국에서 과거 제국주의의 환영이 다시 어른대기 시작했다.
미국 중심으로 수십 년 간 꽉 짜여졌던 국제질서가 조금씩 다시 움직이고 있다.

kwkim@fnnews.com 김관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