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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에너지 전환 '배전반'에 선제 투자… 배당 확대도 청신호 [280조 실탄 쌓은 재계]

이동혁 기자,

김학재 기자,

강구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2.23 18:27

수정 2026.02.23 20:05

실적 호조로 현금성 자산 급증 기업들 연초부터 설비투자 가속 삼성 평택공장 증설에만 60조 전망 배터리업계는 ESS 등에 투입 늘려 정책 발맞춰 주주환원 확대 기대도
AI·에너지 전환 '배전반'에 선제 투자… 배당 확대도 청신호 [280조 실탄 쌓은 재계]
10대 그룹의 현금 급증은 단순 실적 호황의 부산물이 아니다. 인공지능(AI)과 에너지 전환이라는 구조 변화에 대응해 '배전반(배터리·전력·반도체)' 중심의 선제투자를 이어가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주요 기업들은 해당 분야에 수천억원에서 수십조원에 이르는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동시에 정부 정책 기조에 발맞춰 주주환원 확대 흐름에 대응하기 위한 움직임도 병행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장치산업 특성상 '先투자' 필수

23일 업계에 따르면 주요 배터리·전력·반도체 기업들은 연초부터 설비투자 집행과 전략적 투자 검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평택캠퍼스 P4 증설은 물론 P5(5공장) 건설에도 속도를 내며 생산능력 확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업계에선 P5 건설에만 60조원 이상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역시 충북 청주에 19조원 규모의 AI 반도체용 첨단 패키징 공장(P&T7) 구축을 추진 중이며, 내년 5월 준공을 목표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1기 팹을 건설 중이다.

배터리 업계는 전기차 수요둔화 국면을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 확대를 통해 돌파하겠다는 전략이다. 삼성SDI는 삼성디스플레이 지분 매각으로 확보한 4조원 규모의 자금을 ESS라인 투자에 투입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할 계획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4000억원 규모 회사채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을 해외법인 증자에 활용하며 전기차 배터리 공장 증설을 이어가고 있다.

반도체와 함께 AI 산업의 핵심 축으로 떠오른 전력기기 업계도 투자 확대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의 지난해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9508억원으로 전년 대비 67% 증가했고, LS일렉트릭도 같은 기간 7627억원으로 15% 늘었다. HD현대일렉트릭은 빅테크 기업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배전기기와 초고압 전력기기 사업을 확대하고 북미 시장에서 배터리에너지저장장치(BESS) 사업도 강화할 계획이다. LS일렉트릭은 LS파워솔루션 인수와 부산 초고압변압기 증축을 기반으로 연간 생산능력을 기존 대비 약 4배 늘린 8000억원 규모로 확대한다.

■배당 확대 신호 해석도

특히 반도체, 전력 등 산업은 대규모 설비투자가 초기부터 요구되는 '장치산업' 성격이 강해 일정 규모 이상의 생산능력 확보가 원가 경쟁력과 시장 지배력 증대로 이어진다. 관련 기업들의 '실탄 확보' 전략이 투자를 통한 주도권 선점의 포석으로 풀이되는 이유다.

조재한 산업연구원 산업미래정책센터 선임연구위원은 "반도체·배터리·전력 인프라는 중장기 수요 확대가 예상되는 분야로 대규모 선제투자가 필수적"이라며 "AI와 그린에너지 전환이라는 구조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투자재원을 미리 확보하는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현금성 자산 확대를 배당여력 확보 움직임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올해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이 확정되면서 국내 기업들이 특별배당과 자사주 소각 등을 포함한 주주환원 정책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어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4분기 1조3000억원 규모의 특별배당을 실시한 데 이어 총 10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해 이 중 8조4000억원가량을 소각할 계획이다. SK하이닉스 역시 12조원 규모의 자사주 전량을 소각하기로 했다.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가 배당 확대와 주가 부양을 유도하는 정책 방향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현금 보유 확대에는 배당여력 확보 목적도 일부 반영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대규모 설비투자는 회사채 발행이나 차입 등 다양한 방식으로 순차 집행할 수 있어 보유 현금은 배당과 단기자금 운용 목적이 더 클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moving@fnnews.com 이동혁 김학재 강구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