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7년 음력 10월 9일 새벽. 선조는 침소에서 나가던 중 연거푸 기침을 심하게 하다가 갑자기 실신을 했다. 쿵~ 하는 소리에 내시와 하녀들이 놀라서 소리가 나는 곳을 돌아다보니 왕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왕세자까지 입시하던 중이었고, 이 소식을 들은 신하들이 놀라 급히 입시했다.
선조는 작년부터 기침, 가래와 함께 숨이 찬 증상으로 오랫동안 폐병을 앓고 있었다.
봄에 도진 감기가 낫지 않고 오래가더니 가을이 되면서 찬 공기에 기침, 가래, 발열 등의 증상이 심해졌다. 사실 감기보다는 폐열증(肺熱症)에 가까웠다. 선조는 가을 되어 시약청(侍藥廳)을 다시 설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달이 난 것이다.
기침을 하다가 실신한 선조는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 허준을 비롯한 의관들은 청심원과 소합원을 비롯해 강즙, 죽력 등 인사불성과 호흡곤란에 쓰이는 여러 가지 약들을 번갈아 올렸다. 처방이 난잡해진 것은 정확한 병증을 누구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다행히 정신이 돌아왔다. 선조는 “이것이 어찌된 일인가? 어찌된 일인가? 내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누워 있는 것이냐? 그리고 신하들은 왜 이렇게 많이 입시해 있는 것인가?”하고 소리를 지르듯이 물었다. 왕세자가 손을 저으면서 좌우에 있는 신하들을 모두 나가게 했다.
선조는 시약청에 전교하여 묻기를 “조금 전 나의 증세가 무엇 때문에 이와 같았는지 의관에게 하문하라.”라고 하였다.
시약청에서는 비상회의가 소집되었다. “주상께서 쓰러진 이유가 뭐라고들 생각하십니까?” “아무리 감기가 심하다거나 혹은 기침을 세게 한다고 해서 기절을 하거나 기억을 전혀 못하시는 것이 말이 되옵니까?” “그럼 뭐라고 회계(回啓)를 올려야 하겠습니까?”라고들 하면서 당황스러워했다.
결국 날씨 핑계를 대기로 했다. 시약청은 회계를 올리기를 “오늘은 날씨가 몹시 추운데 아침 일찍 거동하시어 한기가 밖에서 엄습한 탓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라고 했다. 선조는 다행스럽게 여기며 “감기에 걸린 이후로 전부터 번열(煩熱) 때문에 방안에 평안하게 앉아 있을 수가 없다.”라고 했다.
기침을 하다가 실신할 수 있을까? 가능한 일이다. 이를 ‘기침실신’이라고 한다. 원인은 폐의 가스교환이 원활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뇌의 혈류감소 때문이다. 대부분이 전조증상이 나타나면서 기억을 할 수 있지만 일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만약 다른 뇌혈관질환과 관련된 기질적인 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라면 더욱더 그렇다.
정신을 차린 선조는 증상이 차분해지는 듯 싶더니, 신시(申時; 오후 3~5시)경에 다시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하다가 또다시 정신을 잃었다. 도제조 이하 모든 의관들이 또다시 입시했다. 또다시 청심원 등을 번갈아 올리니 호흡이 조금씩 안정되었다.
초경(初更, 오후 7~9시경)이 되자 선조의 호흡이 다시 가빠졌다. 시약청에서는 이전의 처방을 그대로 올렸으나 거친 호흡은 가라앉지 않고 가래가 더 심해졌다. 그래서 이진탕에 천남성, 방풍, 맥문동, 박하를 가미하여 1첩을 달여 올렸는데 반쯤 진어한 후에야 가래가 조금 가라앉았다.
그러나 의관들은 도무지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음 날 선조는 수의(首醫) 허준을 불러 “의관들이 나의 병증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가?”하고 물었다. 그러자 허준은 “의관들은 전하의 병증을 중풍이라고 하기도 하고, 중풍이 아니라고 하기도 합니다.”라고 했다.
선조는 다시 “어의 허준의 소견은 어떠한가?”하고 물었다. 그러자 허준은 고개를 떨군 채 “풍증에 해당하시기는 하나 전형적인 중풍은 아닌 듯합니다.”라며 자신 없어 했다. 선조는 “내 생각에는 필시 명치 사이에 담열(痰熱)이 있는 것 같다. 나의 병에 대해서 자신하지 못한다면 함부로 처방하지 말도록 하거라.”라고 했다. 허준의 얼굴이 굳어졌다.
선조가 담열이란 단어를 꺼내자 허준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전하의 증상은 담미심규(痰迷心竅)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담탁(痰濁)이 심규(心竅)를 막아서 발생하는 병증으로 정신이 혼미해지고 심하면 정신을 잃고 깨어나지 못하며 목구멍에서 가래가 끓는 증상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 또한 확실하지 않사옵니다.”라고 했다.
선조는 자신의 증상이 이상했고 심기(心氣)가 안정되지 못하고 불안했다. 이후 실신하는 증상은 없어졌으나, 발열, 기침, 가래, 가슴이 답답함 등의 증상이 심했다. 허준을 중심으로 해서 의관들이 다양한 처방을 올렸으나 차도가 없었다. 많은 신하들이 보필하지 못한 죄로 스스로 하직하겠다고 줄이어 나섰으나 선조는 이를 윤허하지 않았다. 분위기는 그만큼 심각했다.
이런 와중에 신하들은 허준을 벌할 것으로 청했다. 신하들은 이구동성으로 “허준은 수의로서 전하의 병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고, 오랫동안 처방을 했지만 효과가 없이 지속적으로 악화가 되고 있사옵니다.”라고 했다. 당시 허준은 의관의 신분으로 무과나 문과 급제 없이 정3품 내의원(內醫院) 정(正)까지 올라 신하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아 왔다. 그러나 곁으로는 거의 1년 가까이 탕약을 진어했지만 병세를 잡지 못했다는 것이 표면상의 이유였다.
음력 12월 겨울, 선조는 폐병이 심해지고 밤새도록 기침을 하다가 잠을 이루지 못한 적도 많았다. 밤새도록 번열이 나고 기침을 하면서 고통이 심했다. 그러면서 입맛도 잃었다. 선조 스스로도 ‘일 년간 쓴 약에 위가 손상을 당했으니 혈육(血肉)의 몸이 어찌 손상된 바가 없겠는가?’라고 여겼다.
그러던 중 다행히도 다음 해, 1608년 선조 41년 음력 1월 초, 선조의 폐병은 나아졌고 약간의 경미한 증상만 남았다. 그래서 조섭하는 처방을 받고자 했으나 신하들이 하도 허준에게 죄를 물라고 하는 통에 허준 대신 박지지의 처방을 받았다. 선조는 이렇게 기운을 차렸다.
그런데 무슨 일일까? 음력 2월 1일, 미시(未時, 오후 1~3시)경에 상궁 김개시(金介屎)가 재수라로 올린 찹쌀밥을 먹던 선조는 갑자기 헉~ 하더니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찹쌀밥 덩어리에 사래가 걸린 듯했다. 목에서는 가래소리가 그르렁거렸고, 양손으로 목을 감싼 얼굴은 벌게졌다. 의관들이 급하게 강즙, 죽력, 도담탕, 용뇌소합원, 개관산 등을 진어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대신이 급히 허준 등을 데리고 들어가서 진찰했다. 진찰을 마친 허준은 침통한 표정으로 “주상의 기후는 이미 어떻게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라고 했다. 대신들이 모두 통곡을 했다. 선조는 결국 당일 훙서(薨逝)했다.
선조가 찹쌀로 만든 약밥으로 독살되었다는 소문이 궁중 안팎에 퍼졌다. 그러나 막 즉위한 광해군은 이 일을 더 이상 공론화하지 않았고, 김개시 또한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는 광해군 곁에 남아 상궁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세월이 흐른 뒤 인조반정으로 정권이 바뀌자, 김개시는 정업원에서 불공을 드리던 중 정변 소식을 듣고 민가로 도망하였다. 그러나 병사에게 발각되어 곧바로 참형을 당했다. 그러나 선조의 죽음을 둘러싼 독살설의 진위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선조의 사망원인은 혹시 병사가 아닐까? 선조는 오래전부터 기침, 가래와 숨찬 증상 등의 폐병이 있었다. 기록에는 잦은 감기로 나오지만, 요즘으로 보면 폐렴이나 만성기관지염일 수 있다. 결국 선조는 만성 폐병의 회복기에 발생한 흡인성 질식에 의한 급성 호흡부전이 사망 원인이었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조선왕조실록> ○ 선조실록. 선조 40년 10월 9일. 戊辰/平明, 王世子將問安, 出自東宮, 內人傳言上疾革. 【未明, 自上起行出房外, 因氣急顚仆云.】 王世子降輿, 疾趨入侍. 藥房都提調柳永慶、提調崔天健、副提調權憘、記事官睦取善ㆍ李善行ㆍ朴海、御醫許浚ㆍ趙興男ㆍ李命源入侍. 傳語內官、將藥醫官等, 多入寢室外大廳.【延興府院君 金悌男亦自入.】 上不興不寤, 淸心元、蘇合元、薑汁、竹瀝、雞子黃、九味淸心元、皂莢末、陳米飮等藥, 迭爲進御. 上氣候稍定後, 疾呼曰: "此何? 此何?" 王世子揮左右令出, 藥房都提調以下, 退出閤門內待令. (무진일 새벽 무렵, 왕세자가 문안하러 동궁을 나서려는 순간, 내인이 달려와 “임금의 병세가 위급합니다”라고 전했다. 아직 날이 밝기 전, 임금이 방 밖으로 나오다 숨이 몹시 가빠져 넘어졌다고 한다. 왕세자는 가마에서 내려 급히 달려가 곁을 지켰고, 약방 책임자들과 허준을 포함한 어의들이 입시했다. 임금은 의식이 없고 깨어나지 못한 상태였으며, 청심원·소합원·생강즙·죽력·달걀노른자 등 의식을 깨우는 약을 번갈아 올렸다. 한참 뒤 숨이 조금 안정되자, 임금이 갑자기 “이게 어찌된 것이냐? 이게 어찌된 것이냐?” 하고 외쳤다. 왕세자는 좌우를 물리고, 대신들과 의관들은 물러나 대기했다.)
○선조실록. 선조 41년 1월 8일. 政院啓曰: "聖體違豫, 自春徂夏, 大小臣民, 憂惶度日, 及至十月之初, 感傷增劇, 侍藥設廳, 出於倉卒, 朝野遑遑, 悶迫之情, 有難盡言. 幸賴祖宗之默佑、神祇之扶護, 曾未數日, 勿藥有喜, 式至今日, 漸至和平. 此實聖上敬德寅畏以來陰騭之致, 我國家祈天永命之休, 宗社萬世之慶. 중략. 竊聞, 近日寢睡旣已穩, 水剌旣已加進, 感冒旣已和解, 咳嗽旣已差解. 雖未至於快復, 聖候之康寧, 比冬初不啻萬萬, 中外歡抃之心, 何可量也? (정원이 아뢰기를, "성상의 편찮으신 것이 봄부터 여름까지 계속되어 대소 신민들이 걱정과 두려움으로 나날을 보냈었는데, 10월 초에 이르러 감기가 더욱 심해져 별안간 시약청을 설치하니 어쩔 줄 모르고 허둥지둥하며 민망스러워하는 조야의 정은 다 말하기 어려웠습니다. 다행히도 조종의 도우심과 신기의 보살핌을 힘입어 며칠이 되지 않아 회복하였고, 지금에 이르러 점차 화평하시니 이는 실로 성상께서 하늘을 경외한 이래 하늘이 도와주신 것이니 우리 국가가 영원할 휴징이고 종사 만세의 경사입니다. 중략. 삼가 듣건대 근일 수면도 이미 평온을 되찾고 수라도 이미 증가하셨으며 감기도 이미 나았고 해수도 이미 차도가 있다고 하니 비록 쾌차되지는 않으셨더라도 성후의 강녕은 초겨울에 비해 만 배만 좋아졌을 뿐이 아닙니다. 중외가 기뻐하는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으며 경사를 치하하고 축수하는 예를 어찌 폐할 수 있겠습니까. 치하할 만한 일이 무엇이 이보다 더 큰 것이 있겠습니까.)
○광해군일기. 광해 즉위년 2월 1일. 未時, 上進糯米飯, 猝患氣窒危急. (미시에 찹쌀밥을 진어했는데 상이 갑자기 기가 막히는 병이 발생하여 위급한 상태가 되었다.)
○광해군일기. 광해 15년 3월 13일. 誅尙宮金介屎. 介屎, 方設佛供于淨業. 聞變逃匿民間, 軍人取而斬之. (상궁 김개시를 베었다. 개시가 정업원에서 불공을 드리고 있다가 사변이 일어난 것을 듣고 민가에 숨어 있었는데, 군인이 찾아내어 베었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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