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띠링! 입금되었습니다"... 성과급 꽂히자 사표 던진 '2월의 환승 러시' [김부장 vs 이사원]

전상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2.28 08:30

수정 2026.02.28 09:59

결산 성과급에 연말정산 환급금까지... 통장 두둑해지는 2월 말 '환승 이직' 러시
김 부장 "최소한의 상도덕 지켜야" vs 이 사원 "노동의 정당한 대가일 뿐"
직장인 68% "보너스 받고 퇴사 계획"... 기업은 '리텐션(인재 유지)' 비상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를 통해 만든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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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부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2월의 마지막 주말을 앞둔 금요일 오후. 김 부장(49·팀장)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입사 3년 차, 이제 막 일을 배워 제 몫을 하기 시작한 이 대리(29)가 호출했기 때문이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이 대리의 손에는 흰 봉투가 들려 있었다.



"저 다음 달까지만 다니겠습니다. 좋은 조건으로 오라는 곳이 있어서요." 김 부장은 억장이 무너졌다.

불과 며칠 전 팀 성과급이 입금됐을 때 "감사합니다!"를 외치던 그였다.

돈은 챙기고 의리는 버린 것인가. 김 부장은 배신감에 밤잠을 설쳤다.

◇ 2월 퇴사는 철저한 '금융 공학'... 성과급에 13월의 월급까지 싹쓸이

이 대리의 퇴사 타이밍은 충동적인 결정이 아니라, 철저히 계산된 '금융 공학'의 결과다.

대한민국 기업들의 결산 구조상, 12월에 장부를 마감하고 회계 감사를 거쳐 이듬해 1월 말에서 2월 초중순에 굵직한 결산 성과급이 지급된다. 여기에 직장인들의 '13월의 월급'이라 불리는 연말정산 환급금까지 2월 급여(보통 25일 지급)에 얹혀서 나온다.

즉, 1년 중 직장인의 통장이 가장 두둑해지는 시기가 바로 2월 말이다.

실제 현장의 목소리도 이와 다르지 않다. 최근 판교 IT 업계에서 만난 한 4년 차 개발자는 "성과급은 지난 1년 내 피땀 눈물의 영수증인데, 이걸 놔두고 이직하는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무 유기 아니냐"며 "오히려 2월 말 퇴사가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선 가장 스마트한 커리어 관리로 통한다"고 귀띔했다.

이들에게 내 가치를 더 높게 쳐주는 곳으로 옮기는 건 당연한 권리다.

반면 김 부장 세대에게 회사는 '평생직장'이자 '의리'의 공간이다. 그는 "가르쳐 놓으니 나간다는 말이 딱 맞다"며 "중요 프로젝트가 한창인데, 성과급만 쏙 빼먹고 인수인계도 없이 떠나는 건 '먹튀'이자 상도덕 위반"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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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터로 본 현실: '대퇴사'는 가고 '대환승'이 왔다

이러한 현상은 2월의 여의도나 판교, 강남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거대한 흐름이다.

HR테크 기업 인크루트가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8.3%가 '성과급이나 연말정산 환급금을 받은 직후 퇴사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답했다.

실제로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데이터를 보더라도 매년 2월 말과 3월 초에 상용직 근로자의 이동이 가장 활발하다.

무작정 사표부터 던지는 '조용한 퇴사'는 옛말이다. 이제는 두둑하게 실탄(보너스)을 챙긴 뒤, 연봉을 높여 곧바로 갈아타는 '환승 이직'이 대세가 됐다.


◇ 전문가 "충성심 호소는 끝... '리텐션' 전략 없으면 인재 유출 못 막아"

전문가들은 이를 '평생직장 신화의 완벽한 붕괴'로 해석한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이 정년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2030 세대는 뼈저리게 알고 있다"며 "이들에게 맹목적인 애사심을 강요하는 것은 넌센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기업들도 '우리가 남이가'를 외칠 게 아니라, 확실한 보상 체계와 커리어 성장 기회를 제공하는 구체적인 '리텐션 전략'을 짜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매년 봄마다 빈 책상을 보며 뒷목 잡는 김 부장들이 속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스마트폰에 연말정산 환급금 입금 알림이 울리는 요즘. 당신 옆자리의 동료는 모니터에 기획안을 띄워놓고 있는가, 아니면 채용 플랫폼을 띄워놓고 있는가.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