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살인의 추억' 끝장 낸 과학수사의 힘… "제도적 뒷받침 필수" [장기미제, 끝내지 못한 진실 (하)]

장유하 기자,

박성현 기자,

김예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3.01 18:40

수정 2026.03.01 19:23

세상 떠들썩했던 미해결 강력사건
현장서 찾은 극소량 DNA가 물꼬
"데이터베이스 체계적 관리 중요"
기술 발전이 만능 해결사는 아냐
"인력 보강 등 수사 여건 개선해야"
김장수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 중요미제·장기실종사건팀장이 '신정동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의 범행 장소인 서울 양천구 신정동 한 빌딩 지하에서 현장 검증을 하고 있다. 서울경찰청 제공
김장수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 중요미제·장기실종사건팀장이 '신정동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의 범행 장소인 서울 양천구 신정동 한 빌딩 지하에서 현장 검증을 하고 있다. 서울경찰청 제공
'살인의 추억' 끝장 낸 과학수사의 힘… "제도적 뒷받침 필수" [장기미제, 끝내지 못한 진실 (하)]
과학수사의 발전으로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극소량의 유전자(DNA) 검출이 미제사건 해결의 물꼬를 트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오히려 지나치게 기술에만 의지하는 수사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복잡한 증거 수집과 면담 과정을 감당할 수 있는 전문 수사 인력 확충 등 제도적 기반 마련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사건 해결은 일부 사례에 그칠 수 있다는 경고다.

1일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20년간 해결된 장기미제사건 대표 사례 5건 가운데 4건은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생체 내 화학물질인 DNA 감정을 통해 해결된 것으로 나타났다. DNA 감정은 개인마다 고유한 DNA형을 이용해 신원을 확인하고 동일인 여부를 판단하는 대표적인 과학수사 기법이다.

최근 기술 발전으로 과거에는 분석이 어려웠던 극소량의 DNA까지 검출이 가능해졌다.

실제 '신정동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에서도 DNA 감정이 피의자 특정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지난 2005년 6월과 11월, 서울 양천구 신정동 주택가 골목에서는 20대 여성과 40대 여성이 각각 5개월 간격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전담수사팀을 구성해 8년간 수사를 벌였지만, 별다른 진척 없이 결국 2013년 미제로 전환했다.

이후 2016년 서울경찰청이 중요 미제살인사건 수사팀을 신설하면서 재수사에 착수했고, 사건 발생 20년 만인 지난해 11월 범인을 특정하는 데 성공했다. 경찰은 피의자가 과거 치료를 받았던 한 병원에서 보관 중이던 파라핀 블록과 슬라이드를 확보했고, 이를 통해 DNA 감정에 성공했다. 이보다 앞서 2020년 해결된 '화성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역시 극소량의 DNA를 분석할 수 있는 과학수사 기술의 힘이 컸다.

권일용 동국대 경찰사법대 겸임교수(프로파일러)는 "극소량만으로 증폭할 수 있는 DNA 과학의 발전은 시료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면서 "범죄자 입장에서는 어떤 증거에서 나의 DNA가 나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범죄 억제에 심리적 영향을 주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과학수사가 모든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분석할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면 과학수사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증거로서 가치가 높은 DNA를 확보하지 못한 사건은 수사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수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과 함께 수사관들의 의지와 책임감도 중요하다"고 했다. 신정동 사건 역시 5년간 사건을 끈질기게 추적해 온 한 형사의 집념이 있었기에 해결이 가능했다는 평가가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장기미제사건 해결을 위해 인력과 제도적 기반 등 수사 여건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영식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현재 장기미제사건은 전담팀이 운영되고 있지만, 증거 수집이나 관련자들 면담하는 과정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까 그것만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인력 충원과 함께 최소한 광역자치단체별로 전문 프로그램을 통해 장기미제사건을 전담할 수 있는 전문 수사관을 양성하고, 해당 업무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임시근 성균관대 과학수사학과 교수는 "과거 증거물을 재분석해 DNA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하면서 장기미제사건이 해결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며 "과학수사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DNA 데이터베이스를 확대하고 증거물 보관·관리 시스템 등 현재 부족한 제도적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장기미제사건에 대한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사회적 지지도 필요하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국민의 신뢰와 지지 그리고 격려가 뒷받침된다면 경찰이 장기미제사건을 수사하는 데 큰 동력을 얻을 수 있다"며 "시민들이 꾸준한 관심을 갖고 수사기관을 믿고 지켜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전했다.

welcome@fnnews.com 장유하 박성현 김예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