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視角] 옷장 속의 교복

안승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3.02 18:42

수정 2026.03.02 20:34

안승현 전국부장
안승현 전국부장
큰아들이 중학교 입학할 때 교복을 맞추러 갔더니 재킷 하나에 15만원이었다. 이것저것 세트를 다 갖추니 30만원이 훌쩍 넘었다. 하지만 교복 매장을 찾은 부모들의 표정은 대부분 비슷했다. 좀 비싸긴 했지만 아이의 첫 교복을 사면서 느끼는 기대와 설렘을 모두가 공유하는 듯했다. 그런데 그 재킷이 졸업식 날까지 옷장에만 있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우리나라에 교복이 처음 생긴 건 1886년 이화학당이 여학생에게 다홍색 치마를 입힌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식 가쿠란이 장악했고, 1983년 교복 자율화로 한 번 사라졌다가 1985년 되살아났다. 그리고 1990년대부터 교복은 변모했다. 스마트 학생복, 엘리트, 아이비클럽 같은 브랜드들이 당시 최고 인기 아이돌을 내세워 교복을 팔기 시작했다. 교복이 '제복'에서 '10대의 패션 아이템'이 된 것은 그즈음이다.

문제는 패션이 되면서 가격도 패션을 따라갔다는 것이다. 지금 대부분 학교는 정장형 교복과 생활복을 함께 쓰고 있다. 그런데 아이들은 학교에서 하루 종일 앉아 있고, 뛰어다니고, 급식을 먹는다. 흰 셔츠에 재킷을 입고 이 모든 것을 소화하기란 쉽지 않다. 재킷은 교실 의자 등받이에 걸쳐지거나 사물함 속에서 시간을 보낸다. 입학식과 졸업식, 학교 행사 날 몇 번을 빼면 그 비싼 옷의 실제 사용 일수는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다.

정부가 이 정장형 교복을 폐지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비싼 정장 재킷 대신 생활복과 체육복 위주로 전환하도록 권고하고, 현금과 바우처 지원으로 실질적인 무상 교복을 실현하겠다고 한다. 담합 단속도 하겠다고 했다. 정책 방향만 보면 군더더기가 없다. 비싸고 불편하고 안 입는 옷을 없애고, 입는 옷에 돈을 쓰겠다는 것이다. 학부모들이 반기는 건 당연하다. 지원금 한도 안에서 생활복과 체육복을 모두 살 수 있다면 실질적으로 가계 부담이 줄어든다. 30만원 넘는 교복이 사라진다고 해서 교육의 질이 나빠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좋은 방향의 정책도 허술하게 집행하면 엉뚱한 결과를 낳는다. 정장 재킷이 사라진 자리에 무엇이 들어올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노스페이스 패딩이 교복처럼 번졌던 시절 '등골 브레이커'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교복 업계의 억울한 사정도 일리가 있다. 매년 수요를 예측해 원단과 재고를 미리 확보해두는 업체들은 졸지에 재고를 떠안게 될 수도 있다. 정책이 내일 당장 바뀐다고 수십년 된 매장을 하루아침에 접을 수도 없다. 최소한 유예기간은 있어야 한다는 요구가 무리한 말은 아니다.

전통 있는 학교들의 반발도 이해할 수 있다. 몇십년의 역사를 가진 교복 디자인은 그 학교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교복에 애착을 갖는 졸업생들의 기부금이 학교 재정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경우도 있다. 전통을 허물 때는 그만 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교복은 경제적 형편에 따른 차별을 줄이고 학생을 보호하자는 뜻이 있었다. 그 기능이 유지된다면 교복의 형태가 바뀌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서두를 이유가 없다. 학교마다, 지역마다 사정이 다르고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도 다양하다. 충분히 듣고 충분히 따져보고 나서 바꿔도 늦지 않는다. 정책의 방향이 맞다는 것과 그것을 어떻게 실행하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다. 좋은 방향을 너무 빨리 밀어붙이다가 엉뚱한 곳에서 다시 돈이 새어나가는 일이 생긴다면 결국 피해는 또 학부모와 학생 몫이다.


아이들이 입기 불편한 재킷을 없애자는 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급히 달리려다 40년 전의 실수를 되풀이하거나, 선의의 피해자를 만들어내는 것은 막아야 한다.
학생의 편의와 학부모의 부담 완화라는 목표는 유지하되, 업계 현실을 고려한 단계적 전환과 사복 소비 과열을 막을 보완책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