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중동전쟁이 나흘째 이어지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복합적인 압박에 직면하고 있다. 국제 유가 급등과 시장 불안으로 경제적 부담이 커진 데다, 전쟁의 최종 목표와 출구전략이 명확하지 않다는 비판까지 제기되면서 장기전 우려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내 반전 여론이 고개를 들고, 핵심 지지층인 마가(MAGA) 진영에서도 입장 차가 드러나는 모습이다. 영국·스페인 등 동맹국들과의 관계도 미묘한 긴장 국면에 들어섰다.
계속 바뀌는 전쟁 명분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이란 공격의 목적은 공습 초기부터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전쟁의 네 가지 목표로 ▲이란 미사일 능력 파괴 ▲해군력 무력화 ▲핵무기 개발 억제 ▲테러 단체 지원 차단을 제시했다. 그러나 전쟁 초기에 언급했던 '정권 교체'와 관련해서는 실패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최악의 경우 우리가 이 일을 하고 나서 이전과 다를 바 없는, 혹은 더 나쁜 인물이 권력을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전쟁의 명분이 바뀌는 배경에는 이스라엘 변수도 거론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압박설을 부인했지만,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전날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고, 그 공격이 이란의 미군 대상 보복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어 선제 대응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공화당)도 이와 관련해 "이스라엘이 미국의 지원 여부와 관계없이 행동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매우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전쟁 명분이 계속 바뀌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소속 제이크 오친클로스 하원의원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지난 72시간 동안 전쟁에 대한 네 가지 다른 명분이 제시됐다"며 "정권 교체, 탄도미사일 저지, 시위대 지원, 미군 전사자 보복 등 설명이 계속 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로이터통신은 일부 보수 논객들 사이에서 "미국이 이스라엘의 요구에 따라 전쟁에 끌려 들어간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유가 급등·시장 불안 확산
흔들리는 금융시장도 트럼프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 이날 뉴욕증시는 장 초반부터 2% 넘게 하락했다. 원유 가격은 약 7% 폭등했고, 미국 국채 가격도 소폭 하락했다. 전쟁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전망과 전 세계 원유 수송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3일 "유가가 잠시 오를 수 있다"며 전쟁이 유가를 밀어 올리고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필요한 경우 미 해군이 가능한 한 빨리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 호송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히며 시장 안정에 나섰다.
올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유가 상승은 정치적으로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벌써부터 인플레이션 우려로 미국 국채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날 "상황은 여전히 매우 유동적이며 이미 불확실한 세계 경제 환경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마가 분열·동맹 갈등 확대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인 마가 진영도 이번 전쟁을 둘러싸고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신고립주의 성향이 강한 이들은 국제 문제에 미국이 개입하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보수 논객 터커 칼슨은 미군 공습 직후인 1일 ABC 방송에 출연해 이번 작전을 "역겹고 사악하다"고 비판했다. 폭스뉴스 앵커 출신의 보수 언론인 메긴 켈리는 "우리 정부의 임무는 이란이나 이스라엘을 돌보는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을 돌보는 것이다. 이번 전쟁은 명백히 이스라엘의 전쟁"이라고 지적했다.
동맹국들과의 갈등도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스페인이 미국의 이란 공격에 자국 군기지 사용을 불허하자 무역을 전면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대해 스페인은 "기지 사용을 위해 미국과 체결한 협정은 국제법 틀 안에서의 작전만 허용한다"며 반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영국에 대해서도 "만족하지 않는다"며 "우리가 상대하는 인물은 윈스턴 처칠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영국에 차고스 제도의 디에고 가르시아 기지 사용을 요청했지만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국제법 위반 소지를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이후 1일 기지 사용을 허가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스타머 총리가 기지 사용을 늦게 허가한 것에 대해 "매우 실망했다"고 말했다.
pride@fnnews.com 이병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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