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장비 공급망 해외의존도 높아
기업·정부 국내 생태계 육성 시급
관련분야 국가 핵심전략기술 지정
실증·상용화 계획 정책사업 추진
수요기업 참여 ‘시장형성’ 나서야
HBM 생산확대·기술고도화 가능
기업·정부 국내 생태계 육성 시급
관련분야 국가 핵심전략기술 지정
실증·상용화 계획 정책사업 추진
수요기업 참여 ‘시장형성’ 나서야
HBM 생산확대·기술고도화 가능
HBM은 세대가 바뀔수록 대역폭과 집적도가 급격히 상승한다. HBM3E는 12단 적층을 기반으로 1.2TB/s 수준의 대역폭을 구현하고, HBM4는 16단 적층과 2.0TB/s 수준을 목표로 한다. 이후 HBM4E는 더 많은 적층과 더 높은 대역폭을 요구할 것이다. 이를 위해 D램 공정은 12~10㎚급으로 빠르게 미세화되고, AI 가속기 패키지 높이 제한에 맞추기 위해 D램 다이 두께도 30㎛대에서 20㎛ 수준으로 얇아지는 추세다. 결과적으로 HBM 경쟁은 단순히 '칩을 더 많이 찍어내는' 문제가 아니라 초박형 다이의 신뢰성, 적층·본딩 정밀도, 열·전기적 특성을 모두 만족시키는 제조기술의 경쟁으로 전환되고 있다. 또한 AI 가속기 원가에서 HBM이 차지하는 비중이 60%로 크기 때문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메모리 업체 간 기술선점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HBM의 핵심 제조기술 자체는 국내 기업이 글로벌 리더십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소재·장비 공급망은 해외 의존도가 매우 높다는 점이다. HBM 제조는 가접합(temporarily bonding) 관련 공정, 웨이퍼 박막화(thinning) 및 후처리, 범프·솔더볼 형성, 디본딩 및 세정, 적층·본딩, 불량 검사·계측 등 여러 공정 기술로 구성되며 이 가운데 열 압착 본딩장비 기술 등 일부를 제외하면 주요 장비와 소재를 미국·일본·네덜란드 등 해외에 의존하는 구조가 여전하다. 만약 특정 국가의 수출통제나 공급차질이 발생할 경우 국내 HBM 생산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구조적 리스크가 존재한다. 특히 차세대 HBM4·HBM4E에서 요구되는 하이브리드 본딩(칩 수직 적층 본딩) 장비 등은 특정 해외 기업 의존도가 높아 국내 대체 기술·장비의 조속한 확보가 필요하다.
따라서 HBM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기업과 정부의 장기전략이 병행돼야 한다.
첫째, 정부는 HBM 제조에 필수적인 핵심 공정·장비·소재 분야를 국가 핵심전략기술로 체계적으로 지정하고, 연구개발(R&D)과 양산 전환 단계에서 국내 기업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법적·제도적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 반도체 소재·장비는 '세계 최고 수준'만이 실제 양산라인에 적용될 수 있는데, 국내 업체들은 글로벌 대기업 대비 매출과 R&D 규모에서 열세인 만큼 초기 위험부담을 민간에만 떠넘기기 어렵다.
둘째, 국산화 목표를 수치로 제시하고(예: 30% 이상), 연도별 로드맵과 실증·상용화 계획을 정책사업으로 추진해야 한다. 생태계 고도화에는 시간이 걸리므로 단기 성과 중심이 아니라 중장기 목표와 단계별 검증체계를 갖춘 접근이 필요하다.
셋째, 정부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수요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기술자문, 테스트베드 제공, 공동개발, 초기 구매 등 실질적 시장 형성에 나서야 국내 공급망이 성장할 수 있다. 선행기술과 양산 경험을 보유한 수요기업의 참여 없이는 국내 장비·소재 업체가 글로벌 수준의 품질과 신뢰성을 단기간에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글로벌 AI 산업의 성장으로 2030년까지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기대되는 지금, 한국의 경쟁력 중심에는 HBM이 있다. 그러나 HBM의 지속 가능한 우위는 '메모리 제조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소재·장비 공급망의 안정성이 확보돼야만 생산 확대와 기술 고도화가 흔들림 없이 이어질 수 있다. 기업과 정부가 역할을 분담하고, 국내 HBM 소재·장비 생태계를 장기적으로 육성하는 전략이 지금 반드시 필요하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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