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視角] 지도 반출 허가가 던진 질문

조윤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3.05 18:29

수정 2026.03.05 18:29

조윤주 정보미디어부 부장
조윤주 정보미디어부 부장
정부가 결국 구글의 고정밀 지도 데이터 국외 반출을 조건부로 허가했다. 1대 5000 축척 지도는 실제 거리 50m를 지도상 1㎝로 표현하는 수준의 정밀도로, 그동안 군사·보안상의 이유로 해외 반출이 제한돼 왔다. 좌표 제한, 영상 보안처리, 긴급차단 장치 등 여러 조건이 붙었지만 이번 결정이 갖는 의미는 단순한 기술·행정 판단을 넘어선다. 지도는 더 이상 길을 찾는 서비스가 아니라 디지털 경제의 핵심 인프라가 됐기 때문이다.

사실 지도 서비스는 겉보기보다 훨씬 중요한 플랫폼이다.

식당을 찾고, 택시를 부르고, 여행 일정을 짜고, 물건을 주문하는 일상 대부분이 지도 위에서 이루어진다. 온라인 서비스와 오프라인 경제가 만나는 접점이 바로 지도다. 이 때문에 네이버와 카카오는 지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검색과 커머스, 모빌리티, 광고까지 연결하는 플랫폼 전략을 구축해 왔다.

한국의 플랫폼 시장 구조는 독특한데 검색은 네이버, 메신저는 카카오, 커머스는 쿠팡이 각각 강력한 영향력을 유지하며 독자적 플랫폼 생태계를 형성해 왔다. 전 세계 대부분 국가에서 구글과 메타 같은 글로벌 빅테크가 시장을 장악한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인 풍경이다. 지도 데이터는 이런 로컬 플랫폼 경쟁력을 떠받쳐 온 중요한 기반 중 하나다. 현재 네이버지도의 월간활성이용자(MAU)는 약 2880만명에 달하며, 카카오 역시 모빌리티와 결합해 일상생활 데이터를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있다. 이번 결정이 업계에 적잖은 파장을 예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번 사안을 단순히 지도 서비스 경쟁의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지도 반출 논란의 배경에는 데이터와 플랫폼을 둘러싼 글로벌 경쟁, 그리고 통상압박이라는 또 다른 층위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지도 반출 제한을 문제 삼아 왔고, 플랫폼 규제나 망 사용료 논의와 맞물리며 통상 이슈로까지 번졌다.

이 흐름에서 보면 이번 지도 반출 조건부 허가는 하나의 사건이라기보다 일련의 협상 과정에서 나온 첫 양보라고 봐야 한다. 앞으로 망 사용료 이슈나 온라인플랫폼법(온플법) 역시 비슷한 압박 구조 아래 다시 논쟁의 중심에 설 가능성이 크다.

생각해 보면 이런 변화는 그리 낯선 일도 아니다. 반도체나 자동차가 국가 산업 전략의 핵심이 되었듯, 이제는 데이터와 플랫폼이 새로운 전략자산이 되고 있다. 실제로 유럽연합(EU)은 디지털시장법(DMA)과 디지털서비스법(DSA)을 통해 글로벌 플랫폼을 규율하면서 동시에 자국 디지털 산업을 보호하려는 전략을 펴고 있다. 미국 역시 자국 빅테크의 경쟁력과 통상 문제를 긴밀하게 연결해 움직이고 있다.

인공지능(AI) 시대가 되면서 이 흐름은 더 빨라지고 있다. AI는 결국 데이터를 먹고 자라는 산업이다. 자율주행, 로봇, 스마트시티, 물류 그리고 최근 빠르게 확산되는 AI 에이전트까지 대부분의 디지털 서비스가 위치와 공간 정보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예를 들어 AI 에이전트가 여행 일정을 짜고, 맛집을 추천하고, 차량 호출과 결제를 대신하는 서비스를 떠올려 보자. 이 모든 과정의 중심에는 지도와 공간 데이터가 있다. 지도 데이터가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AI 시대 플랫폼 경쟁의 기반이 되는 이유다.

그래서 이번 지도 반출 허가는 단순히 지도 서비스를 둘러싼 논쟁을 넘어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데이터를 지킬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데이터와 플랫폼은 글로벌 경쟁과 통상질서 속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우리는 어떤 전략을 세우고 있는가. 플랫폼 경쟁력을 어떻게 키울 것인지, 데이터 정책을 어떤 기준으로 설계할 것인지 그리고 글로벌 통상압박 속에서 산업과 규제를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AI와 플랫폼 경쟁이 격화되는 시대에 한국은 어떤 디지털 전략으로 세계와 경쟁할 것인가.

yjjoe@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