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값, 韓 1주일새 200원, 日 2.4엔(약 22원) 올라
"올릴 땐 선반영, 내릴 땐 한세월" 韓 정유사 비대칭 구조 도마 위
재정 쏟아부어 150엔대 묶어둔 日, 인상폭 韓 9분의 1 수준
호르무즈 해협 긴장에 항공·석화 직격탄… 한일 나란히 '비축유 방출' 만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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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해협 긴장에 항공·석화 직격탄… 한일 나란히 '비축유 방출' 만지작
[파이낸셜뉴스] 미국·이란 전쟁발 에너지 위기의 핵심 타깃인 '호르무즈 해협' 원유 의존도는 일본(약 95%)이 한국(약 72%)을 압도한다. 구조적으로 지정학적 리스크에 훨씬 더 취약하다. 그러나 이란 전쟁 발발 직후 주유소 간판에 찍힌 기름값은 정반대를 가리키고 있다. 일주일 새 한국 휘발유 가격이 L당 200원 가까이 폭등하며 2000원 선을 위협하는 동안 일본의 인상 폭은 2.4엔(약 22원)에 그쳤다. 더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는 일본의 기름값 인상 폭이 오히려 한국의 9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셈이다.
한국, 2000원 시대 오나...공급가 선반영에 '휘청'
이란 전쟁 직후 한국의 국내 휘발유 가격은 가파른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9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7일 기준 L당 1889.40원을 기록했다. 지난달 28일(1692.9원)과 비교하면 일주일새 약 200원 가까이 뛴 것이다. 서울 지역에서는 이미 1941.71원을 돌파하며 심리적 저항선인 2000원 선을 위협하는 모양새다.
국내 유가 형성 과정의 고질적인 문제인 '비대칭성'이 이번에도 도마 위에 올랐다. 한국 정유 4사(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는 싱가포르 현물 가격 변동을 국내 공급가에 즉각 반영하는 시스템을 운용 중이다. 국제 유가가 오를 때는 재고 가치 상승과 기회비용을 이유로 즉각 올리지만, 하락 시에는 고가에 매입한 재고 물량을 이유로 반영 속도를 늦추는 관행이 반복되고 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올릴 때는 광속, 내릴 때는 거북이"라는 비판이 거세지는 배경이다.
환율도 상승 압력을 키우는 요인이다. 원유는 달러로 결제되기 때문에 원화 약세가 심화할수록 수입 단가가 올라간다. 최근 국제 유가 상승과 달러 강세가 동시에 나타나면서 국내 정유사의 원가 부담이 빠르게 확대된 것이다.
정부는 유류세 인하 조치를 4월까지 연장하며 대응에 나섰지만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나드는 상황에서 세수 부족 문제와 맞물려 정책적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산업통상부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시한 가격상한(캡)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1400원대 유지... 보조금 방파제
반면 대표적인 '에너지 섬' 국가인 일본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가격 흐름을 유지하며 선방하고 있다.
일본의 실시간 주유소 가격 비교 사이트인 '고고지에스(gogo.gs)'의 최신 데이터(3월 7일 기준)에 따르면 일본 전국 휘발유(레귤러) 평균 가격은 L당 156.4엔(약 1471.86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주 대비 약 2.4엔(약 22.59원) 상승한 수준으로, 같은 기간 한국의 인상 폭이 일본의 9배 이상에 달한다.
기름값 안정세의 비결은 일본 정부의 '휘발유 보조금 제도'에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METI)은 도매가격 상승을 억제하는 '연료 가격 완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 제도는 국제유가 급등 시 정부가 정유사에 보조금을 지급해 소비자 가격 상승 폭을 줄이는 방식이다. 전쟁 여파로 수입 단가가 치솟았음에도 정부가 대규모 재정을 투입해 인위적인 완충 지대를 형성한 셈이다. 이 보조금이 가격 폭등의 방파제 역할을 수행하며 가계와 기업의 비용 부담을 자연스럽게 분산시키고 있다는 평가다.
세금 구조도 차이를 만든다. 한국의 휘발유 가격에는 교통에너지환경세와 교육세, 부가가치세 등이 포함돼 L당 약 700원의 세금이 부과된다. 일본 역시 가솔린세와 지방세, 소비세가 부과되지만 정부 보조금이 세금 효과를 일정 부분 상쇄하면서 가격 상승을 최소화한다.
다만 역대급 엔저(엔화가치 하락) 심화 상황에서 수조엔 규모의 보조금을 지속하는 것이 국가 재정에 심각한 압박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동시에 나온다. 실제로 일본의 연료 보조금 정책은 현지에서도 이미 지속 가능성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호르무즈 충격, 산업계 비명으로
최근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의 전쟁 위험 보험료는 전쟁 전 대비 최대 12배(0.25%→3%) 폭등했다.
에너지 컨설팅 업체 래피던 에너지그룹의 밥 맥널리 대표는 한 인터뷰에서 "호르무즈 해협의 장기 봉쇄는 국제 유가를 단숨에 배럴당 150달러 이상으로 밀어 올릴 수 있는 파괴력을 가졌다"며 "이 경우 동북아 국가들의 에너지 안보 시스템은 근본적인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치솟는 유가는 주유소 가격표를 넘어 한일 양국의 핵심 수출 산업을 정조준하고 있다. 연료비 비중이 30% 이상인 항공업계가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았다. 대한항공과 JAL 등 양국 대표 항공사들은 유류할증료를 역대 최고 수준으로 인상했지만 이는 곧 여행 수요 위축으로 이어져 수익성이 급감하는 추세다. 사이토 유지 JAL 부사장은 "유가 상승이 지속되면 연료비 부담이 수익성에 치명적일 것"이라며 우려했다.
석유화학 업계도 비상이다. 원유에서 추출하는 나프타 가격이 급등하면서 기초 소재 생산 라인의 가동률은 70% 이하로 주저앉았다. 이는 공급망 하단의 제조업 전반에 걸친 생산 단가 상승을 유발하고 있다.
아울러 경유 가격 상승은 화물 운송 비용을 밀어 올리며 신선식품을 비롯한 일반 소비자 물가 전반의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하는 뇌관으로 작용 중이다.
각 정부는 국제에너지기구(IEA)와의 공조를 통해 전략 비축유 방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현재 일본은 약 150일분, 한국은 약 100일분의 비축유를 보유하고 있어 물리적 공급 중단 시 버틸 수 있는 최후의 보루는 마련해 둔 상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비축유 방출이 시장에 일시적인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는 있으나 근본적인 공급망 복구 없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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