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팔레비 왕정 축출한 이슬람혁명 정신의 실종
‘반(反)왕정’ 원칙 깨고 사실상 가문 통치 결정
종교적 권위 대신 군부 실리 선택, 민심 이반과 세대 갈등의 시험대
트럼프 "용납할 수 없어, 미국 승인 안 받으면 오래 못갈 것"
[파이낸셜뉴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사망 이후 이란 최고 권력 공백이 빠르게 메워졌다. 8일(현지시간) 전문가회의가 차남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새 최고지도자로 선출하면서 이란 권력 구조의 핵심 축이 다시 가동되기 시작했다. 모즈타바는 오랫동안 아버지의 측근 그룹에서 군사·정보 업무를 조율하며 영향력을 행사해 온 인물로,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긴밀한 관계로 알려져 있다. 이번 선출로 그는 종교 지도자이자 군 통수권자로서 이란의 절대 권력을 쥐게 됐다. 이란 권력 구조의 연속성과 군부 영향력을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그림자 권력'에서 최고 권력으로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알리 하메네이의 네 아들 중 차남으로, 오랫동안 이란 권력의 핵심부인 최고지도자 사무실(Beit-e Rahbari)에서 실질적인 운영을 담당해 왔다. 그는 공식적인 국가 직책을 맡기보다는 막후에서 군사와 정보 관련 업무를 총괄하며 '그림자 권력'으로 군림해 왔다. 특히 2009년 '녹색 운동' 당시 시위 진압을 배후에서 지휘했다는 의혹을 받으며 강경파의 핵심 인물로 부상했다.
그의 가장 강력한 자산은 혁명수비대와의 유착 관계다. 혁명수비대는 이란 군사력의 중추일 뿐 아니라 정치와 경제 영역 전반을 장악하고 있는 초법적 조직이다. 모즈타바는 혁명수비대 내 정보국(SAS)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해 왔다. 이는 그가 형제들을 제치고 후계자로 낙점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전문가들은 모즈타바가 아버지보다 더 군부 친화적이며 실무적인 정보 역량을 갖춘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그의 시대에는 이란 정치가 종교적 수사보다는 군사적 실리주의에 의해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혁명 정신과 '세습' 논란의 정면충돌
이번 승계의 가장 큰 쟁점은 정당성이다.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은 팔레비 왕정의 세습 체제를 무너뜨리며 시작됐다. 초대 최고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는 "이슬람 체제에 세습은 없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따라서 차남인 모즈타바의 등극은 혁명 이데올로기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이란 내부에서는 모즈타바의 등극을 두고 '신권 정치의 왕정화'라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워싱턴 근동정책연구소의 메디 칼라지 선임연구원은 과거 보고서를 통해 "모즈타바의 부상은 이란 정치 체제가 종교적 권위에서 군사적 독재로 변모하는 과정"이라고 짚은 바 있다. 이러한 비판을 의식한 듯 전문가회의는 선출 과정에서 그의 신학적 지위인 '호자톨레스람'을 '아야톨라'급으로 격상시키는 등 종교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국가 권력의 정점, 최고지도자의 무소불위 권한
이란의 최고지도자는 헌법상 국가 최고 권력자다. 대통령이 행정부 수반이지만 실질적인 최종 결정권은 모두 최고지도자에게 귀속된다. 그는 군 통수권자로서 정규군과 혁명수비대를 통제하며 정보기관과 안보 체계를 직접 지휘한다. 또한 사법부 수장과 국영 방송 책임자, 헌법감시위원회 위원의 절반을 임명할 수 있는 막강한 인사권을 행사한다.
대외 정책에서도 최고지도자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핵 프로그램의 지속 여부나 이스라엘·미국과의 관계 설정 등 국가적 명운이 걸린 전략은 최종적으로 최고지도자의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 모즈타바가 혁명수비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업고 등극한 만큼 향후 이란의 대외 정책은 더욱 공세적이고 경직될 위험이 크다. 특히 시리아, 레바논, 예멘 등 이른바 '저항의 축'에 대한 지원이 강화될 것으로 보이며, 이는 중동 정세의 불안정성을 더욱 심화시킬 요인으로 꼽힌다.
민심 이반·트럼프 견제 시험대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서방의 장기적인 경제 제재와 고질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민심은 극도로 악화된 상태다. 특히 'Z세대'를 중심으로 한 젊은 층은 종교적 규율과 억압적인 통치 방식에 강력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2022년 '마사 아미니 사건'으로 촉발된 대규모 시위는 이란 체제가 직면한 근본적인 균열을 보여주기도 했다.
대중적 지지 기반이 취약한 모즈타바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2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경제 회복을 위해 서방과의 핵 협상에 전격적으로 나서는 실용주의적 행보다. 하지만 이는 그를 지지하는 혁명수비대 강경파의 반발을 살 수 있다. 둘째는 내부 불만을 억누르기 위한 더욱 강력한 공포 정치다. 모즈타바의 전력을 고려할 때 후자의 길을 선택할 가능성이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 차기 최고지도자 선출 문제와 관련해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공개 경고했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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