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1) 이강 기자 = 중동 정세 불안으로 글로벌 채권금리가 급등하면서 국내 채권시장 변동성이 확대되자 한국은행이 국고채 단순매입을 실시하며 시장 안정에 나섰다.
시장 안정 목적의 국채 매입은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시장 경색이 발생했던 2022년 9월 이후 약 3년 6개월 만이다.
1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0일 오전 11시부터 10분간 경쟁입찰 방식으로 국고채 10년·5년·3년물을 매입해 총 3조 원 규모를 사들였다.
국고채 단순매입은 중앙은행이 유통시장에서 직접 국채를 매입해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채권 금리 상승 압력을 완화하는 공개시장운영 수단으로 당국의 가장 강도 높은 시장 안정 조치로 평가된다.
한은 "유가 쇼크에 채권시장 투자 심리 위축, 안정화 필요했다"
이번 긴급 개입의 배경에는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사이클이 사실상 종료됐다는 시장 인식과 중동 무력 충돌이라는 대형 악재가 겹친 상황이 자리했다.
중동 상황이 악화하면서 국제유가는 지난 9일 한때 배럴당 120달러(브렌트유 기준)에 근접할 정도로 치솟았고. 유가발 인플레이션 장기화 우려는 커졌다. 그 결과 글로벌 채권 금리가 빠르게 상승했고 국내 국고채 금리도 단기간에 큰 폭으로 오르는 등 시장 변동성이 확대됐다.
한은 관계자는 "최근 금리가 하루 사이 상승 폭이 상당해 실제 매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유가 상승 등으로 채권시장 투자 심리가 크게 위축된 상황이라 시장 안정화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한은에 따르면 이번 조치는 레고랜드 사태로 국내 채권시장 경색됐던 2022년 9월 이후 처음으로 실시된 시장 안정 목적의 국고채 단순매입이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시장 심리가 급격히 위축된 상황에서 한은의 국고채 단순매입은 금리 안정과 심리 진정에 일정 부분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0일 오후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 3.283%로 전 거래일보다 13.7bp(1bp=0.01%p) 떨어졌다. 10년물 금리도 연 3.629%로 11.1bp 하락했다.
금리 급등 방치 땐 기업 자금조달 위기 발생…"리스크 완전 해소 아냐"
한은이 발 빠르게 시장 안정에 나선 이유는 채권 금리 급등을 방치할 경우 금융시장 전반의 자금 조달 여건이 급격히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채권시장의 금리는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때 기준금리 역할을 한다. 국고채 금리가 급등하면 회사채 금리 역시 빠르게 상승해 기업의 자금 조달 부담이 커진다.
레고랜드 사태 당시에도 투자심리가 급격히 위축되며 회사채 발행이 잇따라 무산되는 등 채권시장이 심각한 '돈 가뭄'을 겪은 바 있다.
한은의 이번 개입에도 우려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중동 무력 충돌이 확전 양상으로 치달아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는 상황이 다시 이어질 경우,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가 재차 커지며 채권금리를 끌어올릴 수 있다.
대외 변동성이 지속돼 국내 채권시장이 다시 흔들릴 경우, 자금 조달 여건이 취약한 부문부터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자금 시장 의존도가 높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나 신용도가 낮은 한계기업을 중심으로 자금 조달 위기가 불거질 수 있다.
윤 연구원은 "전쟁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금융시장 변동성이 다시 확대될 경우 정책 대응이 추가로 필요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향후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따른 국채 추가 발행 여부 역시 채권시장을 흔들 수 있는 변수로 꼽힌다. 다만 정부는 추경을 추진하더라도 적자국채 발행은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채 금리가 높은 상황에서 정부 채권 물량이 늘어나면 회사채들이 시장에서 밀려나는 구축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며 "전반적으로 지금 상황이 우려스러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중동 사태 전개와 채권시장 변동성 추이에 따라 추가 국고채 단순매입이나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등 공개시장운영을 통해 시장 안정 조치를 이어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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