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건강

"수술실 없습니다"... 고관절 골절 환자도 '뺑뺑이' 시작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3.13 10:00

수정 2026.03.13 10:50

[서울=뉴시스] 의료계에 따르면 고관절 충돌 증후군은 대퇴골과 비구 사이에 비정상적인 충돌이 반복되면서 발생하는 질환이다. (사진= 유토이미지 제공) /사진=뉴시스
[서울=뉴시스] 의료계에 따르면 고관절 충돌 증후군은 대퇴골과 비구 사이에 비정상적인 충돌이 반복되면서 발생하는 질환이다. (사진= 유토이미지 제공)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 집 안에서 낙상으로 고관절 골절을 입은 89세 고령 여성 환자가 수술 가능한 의료기관을 찾지 못해 치료가 지연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환자는 고혈압, 천식, 치매, 심부전, 신부전 등 다수의 기저질환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난해 4월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은 이력이 있는 고위험 환자다. 극심한 통증으로 거동이 불가능한 상태임에도 즉각적인 수술을 받지 못했다.
환자는 최초로 지역 중소병원 응급실로 이송됐으나, 해당 병원은 복합 기저질환과 심장 병력으로 인한 높은 수술 위험도를 이유로 중환자실 및 다학제 협진 시스템을 갖춘 대학병원으로의 전원을 권유했다. 이후 여러 대학병원에 수용 가능 여부를 문의했으나 교수 사직 및 인력 공백으로 즉각 수술이 어렵다거나, 정형외과 수술실 배정이 축소됐다거나, 대기 환자가 많아 신규 환자 수용이 곤란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결국 환자는 골든타임 안에 수술을 받지 못한 채 치료가 지연되는 상황에 처했다.


고관절 골절은 단순 골절과 달리 조기 수술과 집중 치료가 예후를 크게 좌우하는 질환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고관절 골절 후 1년 내 사망률은 약 20% 수준이며, 수술이 지연될 경우 폐렴, 욕창, 심혈관 합병증 등의 위험이 급격히 높아진다. 이에 따라 24~48시간 이내 수술이 원칙으로 권고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저질환이 많은 고위험 고령 환자일수록 중환자 관리와 다학제 협진이 가능한 상급종합병원에서의 치료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번 사례는 의료 인력 공백과 수술실 축소 등 구조적 문제로 인해 정작 치료가 시급한 환자가 적절한 의료기관을 찾지 못하는 현실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한정형외과학회는 13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정책과 연동된 중증도 산정 체계로 인해 고령 고관절 골절 환자가 제때 수술받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관절 골절은 고령 환자에게 흔하게 발생하는 중증 질환으로, 수술이 지연될 경우 폐렴·욕창·심혈관계 합병증 등 2차 합병증 위험이 커진다. 우리나라는 2024년 노인 인구 1000만명을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으며 고관절 골절 환자는 2014년 3만1629명에서 2023년 4만1809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그러나 의료 현장에서는 고관절 골절 환자가 수술 가능한 의료기관을 찾지 못해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기저질환이 많은 고위험 고령 환자의 경우, 중환자 관리와 다학제 협진이 가능한 상급종합병원에서 치료받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일부 상급종합병원에서는 정형외과 전문 인력 부족 및 수술실 배정 축소로 인해 즉각적인 수술이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회는 그 원인으로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지원사업과 연계된 중증도 산정 구조의 문제를 지적했다. 현재 상급종합병원은 전문진료질병군 비중을 최대 70%까지 높여야 하는 기준이 적용된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암 수술은 전문진료질병군에 해당되는 반면, 정형외과의 고난도·고위험 수술 상당수는 이 분류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게 학회의 설명이다.

그 결과, 상급종합병원이 구조전환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전문진료질병군 중심으로 수술 구조를 재편하면서, 이에 포함되지 않는 정형외과 영역의 수술실은 상대적으로 축소되고 있다. 학회는 특히 고관절 주위 골절 및 악성 연부조직 종양과 같이 실제로는 고위험·고난도 수술임에도 행정적 분류상 일반진료질병군에 분류되는 사례에 대한 제도적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구조는 인력 이탈로 이어지고 있다. 2024~2025년 상급종합병원 정형외과 지도전문의 873명 중 133명이 사직해 사직률은 15.2%에 달했다. 특히 지방 사직률은 19.1%로 더 높아 지역 의료 공백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공의 대상 설문조사에서도 장기적으로 대학교수를 희망하는 비율은 27%에 그쳤다. 외상·골절 전공 희망자는 5%, 소아·종양 분야는 2%에 불과했다. 응급 수술 분야 기피의 주된 이유로는 낮은 수가, 의료소송 위험, 고난도 수술 대비 보상 부족 등이 지목됐다.

소아 정형외과 분야의 상황도 심각하다. 소아 골절 및 성장판 손상은 전문적 치료가 필요하지만, 소아 정형외과 전담 교수가 부족해 수술을 수용할 수 있는 의료기관이 줄어들고 있다.
상대적으로 낮은 수가와 높은 응급 대응 부담으로 인해 해당 분야 인력 유입이 어려운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학회는 △실제 수술 난이도와 위험도를 반영한 중증도 산정 및 평가 체계의 정교화 △정형외과 고위험·고난도 수술이 필수의료 체계 내에서 명확히 반영될 수 있도록 정책적 기준 마련 △상급종합병원이 고난도 정형외과 수술 인프라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합리적 보상 체계와 제도적 보호 장치 마련 등 세 가지 제도개선을 요청했다.


학회는 "15.2% 교수 사직이라는 수치는 단순한 인사 이동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의 신호"라며 "초고령사회에서 중증 근골격계 질환 치료 접근성이 흔들리지 않도록 제도적 정비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