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기자로 살다 요가 강사로 변신한 배선영 씨]
출산 후 차가워진 시선…"내가 민폐 된다는 사실 견디기 힘들어"
요가 가르치며 제2의 삶... 치유학·뇌인지과학 전공하는 ‘학구파’
"불안하다면, 오늘 하루는 가만히 앉아 숨 한 번 잘 쉬어보세요“
[파이낸셜뉴스] 10년 넘게 경제부터 영화, 패션까지 다양한 현장을 누비며 워커홀릭으로 살아온 베테랑 기자 배선영씨는 어느 날 갑자기 숨이 턱 막혔습니다. 자신이 일터에서 ‘민폐’가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이름만 대면 아는 스타들의 기사를 쓰고 산업의 트렌드를 분석하며 치열하게 살아오는 동안 배씨는 늘 ‘일 잘한다’고 자부해 왔는데요, 아이를 낳은 뒤 그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것만으로 주변에 피해를 끼치는 상황이 돼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배씨의 일상은 서른 둘, 결혼과 출산을 기점으로 완전히 다른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극내향인 기자의 고군분투, 그리고 마주한 '워킹맘'의 벽
“흘러 흘러 시작한 일이었는데, 막상 해보니까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주체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이기도 하고, 제 이름으로 기사가 나가는 데서 오는 뿌듯함도 있고요. 게다가 제가 일하던 시절이 스마트폰이 막 출시되던 역동의 시기였거든요. 콘텐츠 업계가 변화하던 시기이다 보니, 주니어 때는 정말 일에 푹 빠져서 매일 야근하면서도 즐겁게 했던 것 같아요.”
배씨는 대학 졸업 후 2009년 무렵부터 곧바로 신문사 기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름만 대면 알 법한 경제지를 시작으로 연예, 일간지 등을 거치며 매일 바쁘게 살았죠. 하지만 즐겁게 일하던 시간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MBTI로 따지면 ‘I’ 중에서도 극내향인인 그에게 끊임없이 누군가를 압박하고 취재해야 하는 환경은 내면을 갉아먹는 과정이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배씨는 그런 단점을 뒤로하고 팀장을 달 때까지 치열하게 달려왔습니다. 그렇게 버텨온 그를 멈춰 세운 건 아이러니컬하게도 언론사 내부의 보수적인 시스템과 워킹맘을 향한 차가운 시선이었고요. 자신이 내린 모든 결정이 ‘아이가 있는 기혼 여성’이라는 프레임에 갇히는 걸 견딜 수 없었던 그는 퇴사를 한참이나 고민했고, 자신이 조직을 바꿀 수 없다는 걸 깨닫자 사직서를 내기로 결심했습니다.
“구조적으로 출산을 해서 육아휴직을 하게 되면, 고스란히 내 팀 사람들한테 피해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잖아요. 저는 지금까지 사실 제가 일을 잘한다고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데 내가 그냥 육아와 일을 병행한다는 사실만으로 갑자기 ‘민폐’가 된다는 사실이 너무 견디기가 힘들었어요.”
벼랑 끝에서 만난 요가 매트…마흔 전, 삶의 길을 다시 찾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10년 넘게 쉼 없이 달려온 직장을 떠나던 날, 그에게 찾아온 감정은 막막함과 허탈함이었습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나오고, 남들이 보기에 그럴싸한 직업도 가졌으니 인생에서 더 이상의 고민은 없을 줄 알았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진로 고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으니까요. 하지만 배씨는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에게 굳게 약속했습니다. “마흔이 되기 전에 반드시 다시 삶을 세우자, 길을 다시 찾자”고요.
배씨는 고등학교, 대학교 때보다 더 치열하게 미래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그를 구원한 것은 다름 아닌 '요가'였죠. 배씨는 회사 문제로 벼랑 끝에 몰려 숨조차 쉬기 힘들 때, 요가 매트 위에서 유일하게 숨통이 트이는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언젠가 은퇴하고 나면 요가 선생님이 되어야지’라는 막연한 꿈을 꾸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는데요, 퇴사를 생각하자 자연스럽게 요가 쪽으로 진로를 고민하게 된 거죠.
방향이 정해지자 망설임은 없었습니다. 배씨는 고민하지 않고 요가 강사 자격증 과정을 등록하고, 회사를 다니면서 주말마다 수업을 들었습니다. 회사 일과 육아, 수업을 병행하면서 어느 것 하나 흠 잡히지 않도록 이를 악물어야 했죠. 그리고 퇴사 후, 본격적으로 요가 강사로서 인생 2막을 시작했습니다.
뇌파 연구하는 요가 강사, "도전 앞서 숨부터 쉬세요“
배씨가 그렇게 요가를 가르친 지 어느덧 10여년이 되어갑니다. 현재 경기 양평에서 요가 수업을 진행하고, 유튜브 등을 통해 관련 콘텐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 활동을 하며 출강까지 나가느라 기자 시절 못지않게 바쁜 삶을 살고 있죠.
심지어 최근에는 대학원에 진학해 치유학과 뇌인지과학 석사 과정까지 밟고 있습니다. 지친 현대인들을 치유하는 요가의 힘을 더 체계적으로 연구해 알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요가 호흡이 사람의 뇌파와 스트레스 양상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에 대한 연구를 할 계획이라고 하네요.
“전 후배들에게도 ‘절대로 회사 그만두지 말라’고 해요. 최대한 회사 안에서 버티면서 앞날에 대한 고민을 하라고 하죠. 사람이 경제적으로 궁핍해지면 어리석은 선택을 할 수도 있거든요. 요즘처럼 경기가 안 좋을 때는 더더욱 그렇죠. 도전에 앞서서 숙고하는 시간을 갖고,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필요해요. 도전에 대한 방향성을 세우고 시도하는 건 그 다음이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결국 기준을 남이 아닌 자신에게 맞추는 것, 내 삶의 운전대를 딱 잡고 있는 거예요.”
인터뷰 말미, 그는 퇴사를 꿈꾸며 진로를 고민하는 직장인들에게 철저하게 고민하고 결정하라는 조언을 건넸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막막한 현실에 짓눌려 무기력과 우울을 겪고 있을 누군가를 향해 진심 어린 위로를 함께 건넸죠. “그냥 자리에 가만히 앉아 '숨 한 번 잘 쉬어보자'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보내면 달라지는 것들이 분명히 있을 거예요.” 키보드 위에서 바쁘게 움직이며 기사를 쓰던 손으로, 배씨는 이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습니다.
숨 가쁘게 달려온 인생의 1막을 뒤로하고, 2막의 문을 연 사람들을 만납니다. 안정된 과거 대신 가슴 뛰는 불확실성을 택한 이들의 선택은 우리에게 '늦은 때란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직업을 바꾸고 삶의 태도를 고쳐 쓰며 마침내 또 다른 나를 발견한 사람들. [괜찮아, 다시 인생]이 전하는 다채로운 삶의 궤적이 당신에게 새로운 영감이 되길 기대합니다.
bng@fnnews.com 김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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