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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의 본초여담] 단종을 몰아낸 왕, 세조는 피고름 병에 시달렸다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3.21 06:00

수정 2026.03.21 06:00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주>

조선의 세조는 어린 단종을 폐위시킨 후 왕위에 올랐지만,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면증에 시달렸고, 온몸의 통증과 더불어 피부에 피고름이 나는 풍습병(風濕病)을 앓았다. 결국 세조는 평생을 알 수 없는 병마와 싸우다가 죽었다. 챗GPT에 의한 AI생성 이미지.
조선의 세조는 어린 단종을 폐위시킨 후 왕위에 올랐지만,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면증에 시달렸고, 온몸의 통증과 더불어 피부에 피고름이 나는 풍습병(風濕病)을 앓았다. 결국 세조는 평생을 알 수 없는 병마와 싸우다가 죽었다. 챗GPT에 의한 AI생성 이미지.


1417년 음력 9월 29일,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 사이에 둘째 왕자로 수양대군(훗날 세조)이 태어났다. 세종 이후 왕위에 오른 문종(첫째 아들)은 병약하여 39세의 젊은 나이에 승하했다. 뒤이어 문종의 어린 아들 단종이 만 10세의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그런데 수양대군은 결국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를 차지했다.



세조는 젊은 시절에는 매우 강건했다. 그런데 재임 3년 후부터 이상한 병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세조는 단종을 폐위하고 죽인 것에 대한 심리적 죄책감으로 고통을 받아왔다.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불면증과 악몽에도 시달렸고, 극심한 스트레스와 함께 온몸에 통증이 나타났다. 이러한 질병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심해졌다.

세조는 의관에게 “내 병이 무엇이냐?” 하고 물었다. 의관은 “풍습병(風濕病)이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세조는 “왜 이리 차도가 없는 것이냐?” 하자, 의관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의관들도 세조의 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풍습병은 한의학에서 풍(風)과 습(濕)의 사기가 몸에 침입하여 기혈의 운행을 막아서 생기는 병증을 말한다. 온몸에 통증이 생기고, 저리고, 붓는 증상이 나타난다. 비가 오거나 습한 날씨에 통증이 심해진다. 요즘으로 치면 류마티스 관절염, 혈관염, 자가면역질환 등을 포함할 수 있다. 피부에 종기와 궤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세조는 승정원과 사관들에게 자신의 병세를 자세히 기록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내의원에도 입단속을 시켜서 신하들이 의관들에게 물어도 단지 “전하는 편치 못하십니다[상불예(上不豫)].”라고 답할 뿐이었다. 이는 자신의 병약한 모습이 밖으로 알려져 왕권의 권위가 흔들리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세조는 자신의 증상에 온천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고 여겼다. 특히 온양온천에 자주 갔다.

세조 10년 음력 3월 초하루, 그날도 세조의 어가가 온양의 행궁에 이르렀다. 당시 행궁 뜰에는 옛 우물이 있었는데, 우물이 말라 있었다. 세조는 그 우물을 더 깊게 파도록 했다. 그랬더니 그곳에서도 뜨거운 물이 솟아났다.

세조는 그 우물물도 효험이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이 우물의 근원이 깊고 맑으므로 주필신정(駐蹕神井)이라고 부르도록 하라.”라고 했다. 임금의 행차가 머물렀던 신령한 우물이라는 의미다.

행궁에서 돌아온 세조는 무척 만족했다. 그래서 어찰(御札)을 통해 의관에게 ‘백성들에게도 온천을 풍습병의 좋은 처방으로 삼도록 하라.’라고 명했다.

그러나 그해 여름에는 다시금 여러 날 동안 조회(朝會)를 보지 못할 정도로 악화되었다. 온천욕이 풍습병에 도움이 될지언정 완치는 어려웠던 것이다. 세조의 병은 단순한 관절통에만 그치지 않았다. 이제는 피부에 종기가 생기고 고름이 흐르는 증상까지 있었다.

세조 12년 음력 2월, 세조의 둘째 딸인 의숙공주는 더 이상 고통받는 아바마마를 지켜볼 수 없었다. 그래서 부처님께 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남편 정현조와 함께 발원해서 오대산 상원사에 문수동자상 불상을 조성했다. 몇 년 전 세조가 상원사에서 관음보살의 화현(化現)을 본 적이 있었고, 게다가 그 다음해에 상원사 스님이 요청한 문수동자 불상을 거절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의숙공주는 상궁을 통해서 세조의 피고름이 묻어 있는 비단 속적삼을 하나 얻었다. 그리고 피고름 묻은 속적삼과 함께 다양한 경전과 서적들을 문수동자 상 안에 넣어서 불상을 만들었다.

그해 가을, 세조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에서 누군가에 쫓기면서 산속을 헤매다가 길을 잃었다. 배와 가슴에는 통증이 심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앞에 잎은 국화잎처럼 생겼고 보라색 꽃줄기가 기다랗게 달린 풀이 보였다. 세조는 그 풀을 먹으면 자신의 증상이 좋아질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그 풀을 씹어 먹었더니 정말 흉복통이 진정되는 것이다.」

세조는 다음 날 신하들에게 꿈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꿈 속에 본 풀은 무엇이냐?”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문관 직제학 한계희가 대답하기를 “성상께서 꿈속에서 보신 풀은 현호색(玄胡索)입니다.”라고 했다. 세조가 “그럼 내 증상에 현호색을 처방하라.”라고 했다.

내의원에서는 한 의관이 “어찌 왕의 꿈이라고 해서 변증에도 맞지 않는 처방을 한단 말이오?”하고 역정을 냈다. 그러자 다른 의관이 “그럼 어쩌자는 말이오. 의관들의 처방을 믿지 못하시니 이제는 꿈 속의 약을 처방하라 하시는 것 아니겠소. 주상께서는 현재 극심한 노심초사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흉복통이 심하시니 칠기탕(七氣湯)에 가미하겠소.”라고 했다.

의관은 칠기탕에 현호색을 가미해서 처방을 했다. 칠기탕은 희노우사비공경(喜怒憂思悲恐驚)이란 일곱가지 감정인 칠정(七情)의 울결을 푸는 처방이고, 현호색은 어혈(瘀血)을 치료하고 흉복통을 멎게 하는 약재다. 이 처방으로 세조의 증상은 약간 좋아지는 듯했다.

그러나 세조의 풍습병(風濕病)은 끝내 낫지 않았다. 온몸에 통증이 있었고 피부에는 피고름이 뒤덮였다. 고통스러운 불면의 나날이 이어졌다. 말년의 세조는 이러한 알 수 없는 병세로 점점 쇠약해졌다.

어린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군주는 결국 병마에 시달리는 비참한 말년을 맞았다. 세조는 결국 세조 14년(1468) 음력 9월 8일, 52세의 나이로 수강궁 정침에서 훙하였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세조실록> ○ 세조 8년 11월 5일. 以上幸上元寺, 時有觀音現相之異. (임금이 상원사에 거둥할 때에 관음 보살이 현상하는 기이한 일이 있었다.)

○ 세조 9년 9월 27일. 謂孝寧大君曰: “予少時壯氣凌厲, 年來疾病纏綿, 嘗欲沐于溫泉. 然予平生立志, 不欲爲一己勞民, 故終不爲此行也. 言不可必, 若病且甚, 則未可知. 然予志則如此耳.” (효령대군에게 말하였다. “나는 젊었을 때 기운이 장하고 매우 사나웠습니다. 근년에는 질병이 얽히듯 오래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찍이 온천에서 목욕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평생 뜻을 세워 한 몸을 위하여 백성을 수고롭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끝내 그 일을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말이라는 것이 반드시 그대로 되는 것은 아니니, 만약 병이 더욱 심해진다면 어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의 뜻은 이와 같을 뿐입니다.”라고 했다.)

〇 세조 10년 3월 1일. 夕車駕至溫陽行宮. (저녁에 거가가 온양의 행궁에 이르렀다.)

〇 세조 10년 3월 5일. 行宮庭有古井, 命開井, 有泉湧出. 源深而淸, 賜名駐蹕神井. (행궁 뜰에 옛 우물이 있었는데, 우물을 파게 하니 샘물이 솟아 올라왔다. 물의 근원이 깊고 맑으므로, 주필 신정이라고 사명하였다.)

○ 세조 10년 4월 16일. 御札下醫院曰: “溫湯之有効無効, 世談紛紜, 皆曰 我是, 由此. 莫適所從, 訖無有定, 此世間之巨弊也. 予今驗之, 其効如神, 風濕之病, 無不愈者. 후략” (어찰을 의원에게 내리기를, “온탕이 효력이 있는지 효력이 없는지는 세상의 이야기가 분분한데, 모두 말하기를, ‘내가 옳다는 것은 이 때문이다.’고 하나, 곧이곧대로 따를 수가 없고 끝내 정한 설이 없으니, 이것이 세간의 큰 폐단이다. 내가 지금 이를 시험하여 보니, 그 효력이 신통한 것 같아서 풍습의 병이 낫지 않는 것이 없었다. 후략.”하였다.)

○ 세조 10년 7월 19일. 上不豫, 累日不視朝. (임금이 편찮았으므로, 여러 날 동안 조회를 보지 않았다.)

○ 세조 12년 10월 2일. 上召韓繼禧、任元濬、金尙珍曰: “夢, 予意食玄胡索則病愈, 服之, 果胸腹之證少減, 此何藥耶?” 繼禧對曰: “玄胡索者, 治胸腹痛之藥也.” 乃進加玄胡索七氣湯, 果平愈. (임금이 한계희·임원준·김상진을 불러서 말하기를, “꿈속에 나는 생각하기를, 현호색을 먹으면 병이 나을 것이라고 여겨서 이를 먹었더니 과연 가슴과 배의 아픈 증세가 조금 덜어지게 되었으니, 이것이 무슨 약인가?”하니, 한계희가 대답하기를, “현호색이란 것은 흉복통을 치료하는 약입니다.”하였다.
이에 현호색을 가미한 칠기탕을 올렸더니 과연 병환이 나았다.)

○ 세조 14년 9월 8일. 太上王薨于壽康宮之正寢. (태상왕이 수강궁의 정침에서 훙하다.
)

<상원사 문수동자상 발원문> 成化二年丙戌二月, 世祖大王第二女懿淑公主, 駙馬鄭顯祖, 發願造文殊童子像. (성화 2년 병술년 2월. 세조 12년. 세조대왕의 둘째 딸 의숙공주와 부마 정현조가 발원하여 문수동자상을 조성하였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